시사해설

개같은놈은 욕이 아니다(낙여)

오토산 2017. 11. 1. 21:45

 

 

개(犬) 같은 놈은 욕(辱)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쁜 사람을 빗대어 말하기를

개 같은 놈, 개만도 못한 놈, 개자식이라는 말을 욕(辱)으로 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이 "개같이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란 말은 지혜(知慧)가 뛰어남을 뜻한다.

지혜란 무엇인가?

사물(事物)의 도리(道理)나 선악(善惡) 따위를 잘 분별(分別)하는

마음의 작용(作用)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의 다양한 형태들을 구분하고

그 최상의 단계를 지혜(知慧)라고 하였다.

지혜(知慧)가 있다고 사람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이는 것은

억지춘향이고,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생각이다.

다른 동물들은 사람을 보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안 할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순수성(純粹性)보다

과학과 기능으로서 만물을 지배하는 능력 때문이지 생물로서의 선(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반려견(伴侶犬)"으로 지칭되는 애견들은 어느새 우리 생활에 깊숙이 밀접해 있다.

"반려(伴侶)"는 사람 사이에 상대방의 한 짝이 내 몸의 절반과 하나가 되어

평생을 같이 산다는 의미다.

사람인 인(人)자가 붙은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부부간에 반려(伴侶)라는 말은 거의 안 쓰고 오히려 개나

동물에게 "반려(伴侶)"라는 명칭을 자연스럽게 붙이고 있다.

 

우리는 TV "동물농장"에서 주인에게 충직한 개의 모습을 종종 본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사람에게 이롭게 한 "충견(忠犬)"의 개비(犬碑)가 있다.

 - 中略-

황해도 강령지방에 전승되어오는 강령탈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서

6·25전쟁 뒤 월남한 연희자들에 의해 현재 서울에서 전승되고 있다.

여기에서 개와 양반을 비꼬는 말로 개에게도 인간 못지 않는 오륜(五倫)이 있으니,

 

주인을 알아보고는 짖지 않으니(知主不吠)

군신유의(君臣有義)요

 

털색갈이 강아지와 어미개가 같으니(毛色相似)

부자유친(父子有親)이요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개가 모두 짖어대니(一吠衆吠)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새끼를 배면 절대로 다른 수캐를 가까이하지 않으니(孕後遠夫)

부부유별(夫婦有別)이요

 

작은놈이 큰놈에게 덤비지 않으니(小不大敵)

장유유서(長幼有序)라 하여 분별없는 사람과 비교하고 있다.

 

출세를 위해 인간관계를 배반하는 것을 예사로 하며,

명색이 국가의 지도층들이 각종 투기와 불법으로 치부(致富)하여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적 선(善)한 가치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우대받는 사회를 개보다 나은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사에 대한 일화가 있다.

일본이 중국까지 침략으로 제국주의적 식민 활동에 박차를 가할 무렵이었다.

조선에서도 일본에 아부하여 가짜 일본인 되기에 광분한 친일 자가 속출하였다.

하루는 지기 한 분이 만해 선생을 방문하여 격분한 어조로

"세상에 이런 일 있소! 최린, 윤치호, 이광수 등이 창씨개명들을 했습니다.

이 개자식들이 민족을 팔아먹었소!"


이 말을 듣고 난 만해 선생은 크게 실소(失笑)하고는,

"당신이 지금 실언(失言)하고 있소.

만일 개가 이 자리에 있어 당신 말을 들으면 크게 항변(抗辯)할 것이오.

'나는 주인을 알고 충성하는 동물인데 어찌 주인을 모르고 저버리는 인간들에

비하느냐'고 말이요. 그러니, 개보다 못한 자식을 개자식이라고 하면 도리어

개를 모욕하는 것이 되오."라고 말하였다.

 

조선 중기의 명신 성현(成俔) 선생은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이란 글에서

친구 사귀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人不可不擇友也!

인간은 누구나 친구를 잘 가려서 선택하여야 한다.

友也者 所以輔吾仁也 助吾德也

좋은 친구는 내 모자란 인성과 부족한 능력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與益者居 則學日明, 業日進

이익이 되는 친구를 사귀면 발전할 것이고 ,

與損者處 則名自卑, 身自賤

손해가 되는 친구를 만나면 나도 따라 점점 천박해질 것이다.

狗與狗友 引之厠

개와 개가 사귀면 똥 있는 곳으로 이끌 것이고

豕與豕友 引之圂也

돼지와 돼지가 사귀면 돼지우리로 인도할 것이다.

 

개와 개가 똥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도둑질하는 곳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중국 선승(禪僧) 중에서 공안집(公案集)을 모은 벽암록(碧巖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조주(趙州778~897) 선사에게 한 학승(學僧)이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無)"고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학승이 다시 물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위로는 부처로부터 아래로는 곤충,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중생심(衆生心)이 있기 때문이다."

 

개는 부처가 되어도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없다.

이유는 사람은 순수(純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성(佛性)은 순수(純粹)하지 못한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순수(純粹)가 곧 해탈(解脫)이기 때문이다.

 

개님(犬公)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정치인들은 얼굴 두꺼운 두꺼비보다 동네 똥개와 더 닮았다.

이웃집 개가 짖으면 덩달아 짖고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꼬리부터 흔든다.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표(票)다.

국민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으로 끝없이 짖어 댄다.

그러면서 지금 국회에서 허공을 보고 짓느라 민생을 위한 법을 통과 안 시키고 있다.

 

먹을 것을 주는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개와

표를 주는 국민을 보고 짖어대는 정치인들과 행위는 비슷하지만

주인의 먹이를 먹는 개는 주인에게 목숨까지 바치지만

국민에게 표를 얻은 정치인은 칠월의 숙주나물처럼 변하니

 

이것이 사람과 개의 차이점이다.

개 같은 놈만 있어도 신의(信義) 있는 참 좋은 인간 사회가 될 것이다.

                                   t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