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인량마을을 찾아서

오토산 2017. 12. 4. 17:23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989

 

 

거경대학에서 창수면 인량마을을 찾아서

 

 

 

11월 27일 영해시장에서 육계장으로 아침을 먹은후 옛이름仍良火로 불리다가

중종원년에 뒷산이 鶴이 날아갈 듯한 형국이라 나래골, 翼洞으로 불리다가

1610년9광해군 2)에 仁良으로 고쳤으며 숙종때 飛蓋洞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나래골, 나라골, 國洞등으로 불리어 왔던 영해지역에서 유일하게  남향으로

터를 잡은 인량마을을 찾아갔다.

 

정보화마을 예절관에서 박성식 영해향교 전교님이 마을유래를 설명하시고

현장안내를 해주셨다.

仁良里는 학문이 있는 인재가 배출되고 벼슬길에 나선 인사가 끊이지 않았고

풍속이 淳厚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文藝에 힘써 왔으며

재령이씨,안동권씨,무안박씨,함양박씨,야성정씨,대흥백씨,영양남씨,영천이씨등

八宗家라 칭하고 웅성주씨는 종실이 인량에 없으나 여러집이 살고

 수안김씨와 단양신씨, 남평문씨가 살았으나  타곳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1914.3.1, 행정구역 개편으로 仁上洞과 仁下洞을 합병하여 仁良洞으로 하였다가

현재 인량 1,2리로 분동되어 있고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어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마을이라 한다.

 

예절관을 나와서 1728년(영조 4) 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楊武原從功臣

올랐던 선산김씨 龍菴 金益重선생이 지은 용암종택

농암선생의 넷째로 1570년 걍원도 관찰사를 지낸 영천이씨 賀淵 李仲樑선생이

'중국 명사의 주선으로 싸리나무 500여개를 운반하여 서까래와 도리 일부

세웠다三碧堂을 돌아서

대흥백씨와 혼인하여 용담현령으로 지내다가 단종의 손위에 반대하여  낙향하신

 영양남씨 입향조 송정 남선생 사시던곳에 지어진 處仁堂을 답사하고 오다니

앙상한 가지에 감이 꽃피운 골목에는 김장배추를 절이는 농부들이 가을을 알려줬다.

 

인량1리를 지나 인량2리로 넘어가는 개울가에서  뒷산의 지형을 구경하면서

인량2리 입구 산기슭에 위치하고 영해향교 태화루를 개수하고 1816~7 흉년에 많은

시혜를 한 공으로 조정에서 嘉義副尉를 특사 받은 평산신씨 晩槐軒 申在洙선생이

1843년(헌종 9)에 지은 만괴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봉종택으로 갔다.

 

세상사 한마디

'운'을 뒤집으면 '공'이 되니 운을 바라거든 공을 들여라.

보듬고 아껴주면서 이해하고 배려하며

베풀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