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숙맥총각 이야기(낙여)

오토산 2018. 3. 9. 23:02



菽麥(숙맥) 총각


어리석은 바보를 일컬어 숙맥(菽麥)이라고 하는데,

숙(菽)은 콩이요, 맥(麥)은 보리입니다.


섞여 있는 콩과 보리를 따로따로 가려 내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숙맥이라고 하며,

불능변숙맥(不能辨菽麥)이라는 다섯 자가 줄어든

말이라고 하는데 재미난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석꾼 부자 최첨지는 지독한 수전노에 성격 또한 교활해

그 집에서 머슴을 살다 울고 나가지 않는 사람이 없다.


올해도 도저히 견디지 못한 머슴이 가을 추수도 마치기 전에 나가버렸다.
늦가을 찬바람은 불어오는데 머슴은 나가버리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최첨지의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 백방으로 찾아봐도 머슴 구할 길이 없다.

그때 어깨가 떡 벌어진 총각이 찾아와,
“머슴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심더.”
최첨지는 너무나 반가워 그의 손을 잡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 들창코에 사팔뜨기 숙맥이다.
최첨지의 잔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추수만 하고 나면 기나긴 겨울 동안 머슴 녀석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밥만 축낼 터.
“여보게 우리 집 추수만 좀 해주게. 넉넉잡아 한 달이면 족할 게야.”
사팔뜨기 숙맥 총각이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최첨지가 물었다.
“한 달 새경을 얼마나 주면 될까?”
바보처럼 히히 웃던 총각이
“나리, 매일매일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린가? 새경을 매일매일 달라니.”


숙맥 총각은 히죽 웃더니
“첫날은 콩 한 알 주시구요,
둘째 날은 콩 두알,
그 다음날은 전날의 두 배인 네 알,
그 다음날은 여덟 알… 이렇게요.”


최첨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녀석 좀 모자라는 숙맥이구나.’ 겉으로 태연한 척
“그러자꾸나.” 해놓고 혹시 중간에 나자빠질 새라,
지필묵을 가지고 와서 약정서 두 매를 자세히 써 각자 손도장을 찍고

한부씩 나눠가졌다.

숙맥 총각은 힘이 장사라 시원시원하게 일도 잘했다.
저녁을 먹고 문간방에 누워 있는 총각 머슴에게 최첨지는 콩 한 알을 던져줬다.
이튿날도 총각 머슴은 새벽같이 일어나 황소처럼 일했다.
최첨지가 콩 두 알을 주자 숙맥은 고맙다고 두 손으로 받았다.
최첨지는 속으로 희희낙락했지만 표정 관리하느라 애를 썼다.

11일째 되는 날 밤, 숙맥은 최첨지 앞에서
“나리, 어제 새경이 콩 512알이었으니 오늘은 1,024알입니다.


이것 보세요,

 한 홉이 넘는데 한 홉으로 치고 내일은 두 홉이 됩니다.”
18일째 되는 날은 한말 두되 여덟 홉이 되었다.


숙맥이 자루 가득 콩을 받아가자 최첨지는 뭔가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직감적으로 느껴 호롱불 밑에서 곰곰이 계산하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28일째는 콩이 256가마, 29일째는 512가마,

30일째는 1,024가마! 아이고 이놈한테 당했구나.”
최첨지가 사팔뜨기 숙맥 머슴을 불러놓고 약정서를 찢으며

사기를 당했다고 펄펄 뛰자 숙맥 머슴은 눈만 껌벅거리며

 쓰다 달다 말이 없다.

이튿날 아침도 일찍 일어나 억척스럽게 일하고 한 달 만에

추수를 다해 곳간에 곡식을 채운 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최첨지가 사또의 호출을 받고 동헌에 다다르자

동헌 마당에는 숙맥총각이 서 있었고,

대청마루의 사또는 약정서를 들고 있었다.

최첨지는 우기다 곤장까지 맞고

 숙맥 총각에게 논 열 마지기를 떼어줌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받은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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