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문화영화 "빅열"을 김희곤 교수의 토크와 함께 관람을

오토산 2018. 6. 8. 22:19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372





 김희곤 교수의 토크와 함께 영화 박열 관람을



경상북도독립기념관에서 보훈선양주간을 맞이하여 6.6~10까지 '현충시설 참좋다'

행사로 학생들과 시민들 상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중에 있었다.

안동상록자원봉사단원 20여명이 5.6. 15:00~18:00까지 진행된

김희곤 교수의 토크시네 "박열"이란  프로그램에 20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영화와 함께 독립운동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2017. 6. 28. 개봉한 이준익 감독,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주연의 영화 박열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일본내각은 '불영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박열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하자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이 '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돼줘야지'하면서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암살계획을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무릅쓰며 재판을 이어간 사건을 영화화 한것으로


박열은 1902년 문경 출생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진학하여 3.1만세운동

 적극 참여하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사회주의자들의 아나키스트들과 교유,

아나키즘 사상에 공명하면서 흑도회, 흑우회등 사상단체를 조직하여 이끌었다.


가네코 후미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 출생으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학대와

고통속에 살다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1912년부터 7년간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3.1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조선인들과 자신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동질성을

느끼게 되어 일본에서 박열과 2년간의 동거를 하다가 벅열이 검거되자

자진투옥하여 옥중에서 사망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인으로서 검사의 입회하에 결혼사진을 찍으며 재판정에서 한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 기개와 박열과 동거협약으로 감옥생활을 함께 하면서 일생을

마치는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에게도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영화가 끝나고 주연배우들이 직접 출연하여 김희곤 교수와 토크를 진행하면서

그 당시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가네코 후미코의 시신은 문경에 있고

박열의 시신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북한에 있다면서 유해를 송환하여 생시에

 못다한 사랑을 영혼이라도 이루게 해줘야 한다고 할때는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토크가 끝나고 개별적으로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오늘의 행사를 마쳤다.

오늘 행사를 주관하신 경상북도독립기념관 김희곤 관장님과 직원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함께 독립운동의 실황을 감상하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배가 고파 주린배를 움켜잡던 시절이 지나 먹거리가 해결되니

주위사람들 잘 되는것이 배가아파 아직도 배를 잡고 살고 있네

요즘 지방선거 유세전에는 내 정책을 홍보하여 알리기 보담은

상대편 헐뜯기만 만연하니 우리는 언제까지 배만 잡고 살리요~































다양한 간식들도 비치하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