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벽산 김도현 의병장의 셍가와 순국지 도해단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8. 6. 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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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 김도현 의병장의 생가와 순국지 도해단을 다녀와서



4월19일 아침 안동문화관광단지를 거닐면서 안동댐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흰물결을 이루며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면서 시작한 오늘의 첫 답사지로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 벽산 김도현 의병장의 생가와 검산성을 돌아보고

 일본을 향하여 동해에서 순국하신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도해단을 찾았다.


벽산생가는 벽산의 10대조 김응상이 1580년경 지어졌다고 하나 현재 건물은

 18세기에 중수한 건물이며 대문채에는 벽산정사(碧山精舍)란 현판이 붙어 있었고 

대문은 잠겨 있어 담장너머로 구경하고 검산성으로 갔더니 입구에는 삼청교회의

비문들이 늘어서 있었고 산봉나무에는 오디가 까맣게 익어서 우리를 반겼다.

산성(瞼山城)은 벽산선생이 마을뒷산에 개인재산으로 성을 쌓아 창의도총부

(倡義都摠部)를 설치하여 의병활동 하던 곳으로 동쪽에는 냇물이 흐르는 절벽을

 이루고 북쪽과 서쪽도 경사가 경사가 급하며 남쪽으로는 완만하여 지형조건을

잘 이용하기 위해 서쪽과 남쪽에 성벽을 쌓았는데 지금 서쪽 산 기슭에  

200m가량 돌로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둘레 500m의 작은규모이지만

실제로 의병이 주둔하였던 역사현장이라 매우 뜻이 깊다,


벽산 김도현(碧山 金道鉉 1852~1914)은 김녕김씨로 단종복위운동을 하다가

이 곳으로 입향한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의 15세손으로 천석집에서 부유하게

 살면서 경전공부에 몰두하여 1882년 마지막 과거에 갔으나 부패한 사회현실을

 비관하여 과거를 포기하고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점고지회(點考之會)를

조직하여 마을사람들을 지켜왔고

1895.11. 민비시혜와 단발령이 공포되자 영양지역 의병항쟁모색하였고

1896.2.17. 청량산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시작하여  3.18. 선성의진에 합세하여

 태봉전투(중군장)에 참여하는등 10.15까지 을미의병가운데 최장기간 활동하였다.


1905 을사늑약이 있자 서울로 가서 상소를 올리고 각국 공관에 포고문을 보내

무효를 주장하다 1906.1.21 포수를 규합하여 거의를 도모하다 체포 수감되었고

가을 다시 거병을 준비하다 발각되어 무산되고

1909년 구객사에 사립영흥학교(私立英興學校)설립하여 교육활동에 힘쓰다가

국권이 일본에 빼았기자 울분을 품으며 살아오다 부친의 고종명을 지켜 효를

다하고 1914.1.17. 동짓날 관어대 앞바다에서 자정순국하였다.


도해단(蹈海檀)은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벽산선생 순절지 의병항쟁과

계몽운동으로 구국항일 의지를 펼치던 벽산은 1896 선성의진의 중군장으로

활약하면서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와 사제의 인연 맺었고

스승의 단식투쟁을 보고 함께 자결을 결심하였으나 효를 실천하라 스승의

권유 뜻을 마루어 1914년 부친상을 치르고 1914.11.7. 절명시를 남기고

산수암 바다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하였고 1915.2.13. 비를 세웠고

1971.9. 박정희 대통령이 천추대의(千秋大義) 휘호를 내리며 중수를 하였다.


벽산선생의 활동현장을 답사하면서 고종황제의 의병활동 중지지시를 받고

의병을 해산하고 교육활동으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효를

실천하는등 충과 효를 지커오면서 경과 의를 실천한 우국지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우리는 남자현지사의 생가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我生五百來 赤血滿空腸         오백년 왕조말에 나 어이 태어나서

                                      불고붉은 의분의 피 가슴에 가득하다

中間十九載  鬚髮老秋露       국모가 시해되고 그 뒤에 십구년간

                                             머리와 수염이 늙어 가을서리 다 되었다  

國亡淚未已 親沒心更傷  나라망해 피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버이 서거하사 마음 더욱 병들었다. 

獨立故山碧  百計無一方   내고장 푸른산에 홀로서서 생각하니

                                     백가지 계책중에 내 쓸 방법 하나없다

萬里欲觀海 七日當復陽  할 수없다 넓은 만리 바다를 찾아가자

                               새 양기 돌아오는 동짓달 초이래에

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    희고도 또 흰바다 그 깊이 천장이니

                                   이 한 몸 간직하기 넉넉하고 남겠네

-벽산선생 遺詩(絶命詩) (載零 李龍兌 譯. 書)-











오디가 건강에 좋은것은 알아서~~

















답사 첫날의 아침을 열어준 태양

시골담장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