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영덕 축산 신돌석 장군의 생가와 기념관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8. 6. 28. 09:15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414



영덕 축산 신돌석 장군 생가 기념관 다녀와서



영덕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소나기가 내리느데 가믐에 내린 단비인지라

오후의 답사에 불편은 걱정 않고 모두가 반가워 하였다

 우리는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신돌석 장군의 생가를 가면서 마을입구에

주막터에서 그 당시 의병은 대부분 향교.서원 종택들지에서 많이 이루어 졌으나

신돌석 장군은 주막에서 창의 하였나 3~4백명이 참여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가에 도착하였다.


신돌석장군생가 부친 석주가 1850년 초가로 지었으나 1940년 일본관원들이

독립의지를 꺽기위하여 불태워 소실되어 1842년 기와집으로 다시지었으며

1995. 8. 19. 현재의 초가집으로 복원하였고 마당에는 유허비가 있었다.


신돌석(申乭石 1878~1908)장군은 본명은 태호로 1878년(고종 15) 외가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할 무렵 행동이 날래고 담용이 뛰어나 항상 대장으로

추앙되어 왔고 1896년 명성왕후 시혜사건이 일어나자 영해의진 종군장으로

손병희, 박상진, 이강년과 함게 구국운동에 참여하였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06년 영흥의병진을 일으켰고 1907년 일본군 편을 들던 관공서를 격파하였고

 2년8개월동안 의병장으로 청하,영덕,영해,영양,청송,의성,울진,봉화,삼척,강릉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전투를 전개하여 일본군은 장군을 태백산호랑이라 부르며

두려워 하였다고 전하며 이후 만주를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지품면 늘곡에서

김상렬 형제의 기습을 받아 숨졌다고 한다.

신돌석장군유적지는 영덕에서 축산항을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6.12~1999.11. 사당 1동, 동.서재, 기념관등을 세웠으며 우리가 방문하니

내일 110주기 추모제 준비하고 있었다.


기념관에서 김차장으로 부텨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펼쳐 우편마차를

탈취하여 군자금을 확보하고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였으며 서민의병장에게

양반들도 참여하고 각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할때 지역 양반들의 협조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30년의 짧은 삶에 아쉬움을 느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담사길을 함께 하신분들께 감사를 드림니다


 세상사 한마디

등루유자각망행(登樓遊子却忘行) 루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은채

가탄단허낙목횡(可歎檀墟落木橫) 단군의 옛터가 쇠퇴함을 한탄하네

남아이칠성하사(男兒二七成何事) 남아 스물일곱 이룬것이 무었인가

잠의추풍감개생(暫倚秋風感慨生) 추풍에 의지하나 감계만 솟는구나

<신돌석 장군이 27세때 평해 월송정에서 현실을 한탄하며 읊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