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年不滿百(생년불만백)
가슴 속에 쌓였던
世塵(세진)을 깨끗이 떨쳐 버리고 고요한 산 속을 걸으니 마음이 그렇게도 상쾌할 수가
없었다.
無我(무아)의 세계는 바로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왜 이제까지 헛된 굴레와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번뇌만 거듭하여 왔는가.
生年不滿百 (생년불만백) 백년도 다 못 사는
주제에 常懷千歲憂 (상회천세우)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던
그 산아요 그 물이건만 비어 있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새삼스럽게 아름다워 보였다.
아아, 산과 물이 이렇게도 좋은 것을 이제까지는 왜 모르고 살아 왔던가. 문득 옛詩 한 수가 머리에 떠
오른다.
水綠山無厭 (수록산무압) 山淸水自親 (산청수자친) 浩然山水裡 (호연산수리) 來往一閑人 (래왕일한인) 국역 물이 푸르러 산이 좋아하고 산이 푸르러 물이 좋아라네 시원스러운 산과 물 사이를 한가한 나그네 홀로 걸어가네.
누군가가 자기를 노래해 준 것 같았다. 산중에는 오가는 사람조차 없이 흐르는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만이 길손의 귀를 사뭇 싱그럽게 해 주고
있었다.
오늘 가다 싫으면 내일 가고, 동으로 가다 싫으면 서로 가면 그만인 無軌道(무궤도)의 旅路(여로), 물가에 털썩 앉아서 목청을 돋우어 옛 시조 한 수를 읊조려
본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그 누가 읊은
시조였던가.
自由自在 (자유자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깊이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요, 藝文館 大提學(예문관 대제학)을 지냈던 선비 仙庵 劉敞(선암 유창)의 <幽興(유흥)>이라는 제목의 시가
떠오른다.
步逐閒雲入翠林 (보축한운입취림) 松風澗水洗塵襟 (송풍한수세진금) 悠悠浮世無知己 (유유정세무지기) 只有山禽解我心 (지유산금해아심)
한가한 구름 따라 숲 속에 들어서니 솔바람 냇물소리 깃을 씻어주네 뜬 세상에이 흥취를 아는 사람 그 누구랴 다만 저 산새만이 마음을 알아
주리.
앞 사람의 時調(시조)며 뒷사람의 漢詩(한시)며, 모두가 禪味(선미)에 치는 詩歌(시가)
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산과 나무와 물 뿐이요,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뿐, 좀처럼 人家(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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