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陵桃源(무릉도원)
평화롭고 조용한 이상향을 이를 때 '무릉도원(武陵桃源)'
또는 '도원경(桃源境)'이란 말을 쓰는데
이 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말이다
.
진(晉)나라 때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사는 어부가
시냇물을 따라 무작정 올라가던 중 문득 양쪽 언덕이 온통
복숭아꽃으로 뒤덮여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복숭아 숲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숲이 끝나는 곳에 조그마한 굴이 있었다.
굴속으로 들어가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그 곳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살고 있는 별천지(別天地)였다.
오랫동안 그 곳에서 지내고 돌아왔는데 훗날 다시 찾아가려 하였으나
이후에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속세와는 떨어져 있는 별천지를 가리켜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하게 되었다 한다.
刎頸之交(문경지교)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의 신하 목현의 식객 중에 인상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 소왕에게 빼앗길 뻔 했던 천하명옥인
화씨지벽을
원상태로 찾아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에 임명되었다.
3 년 후 진나라 소왕이 혜문왕을 말로 욕보이려는 것을 인상여가 가로 막고
나서서 오히려 진나라 소왕에게 망신을 주었다.
그 공로로 인상여는 종일품 상경에 올랐다.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유명한 명장 염파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을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들어가곤 했다.
이같은 인상여의 행동에 부하들이 말했다.
우리들이 어른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은 어른의 높은
의리를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염장군을 두려워하여 도망치신다면 어리석은 저희가 부끄러워 하는 바입니다.
저희는 휴가를
얻고 싶나이다.」
인상여는 떠나는 것을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은 염파장군과 진나라 소왕과 어느 쪽이
위라고 생각하는가?」
그 부하가 대답하기를「염파장군이 진왕에 미치지 못하나이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하기를
「나는 진나라 소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혼내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모두 죽게 돼.
내가 도망쳐 피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을 앞세우고
우리의 원망은 뒤로 돌리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곧 윗통을 벗은 다음 태형에 쓰이는 가시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드디어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생사를 함께 하여
목에 칼을 찔러도 마음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친하게 사귀었다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고사성어가 문경지교(刎頸之交)이다.
문경지교(刎頸之交)란 생사를 같이 하여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마음이 변치않을 만큼 친한 교제(交際),
곧, 생사(生死)를 함께 하는 친한 사이를
말한다.
松亭(정자 솔) 朴載鎬
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