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진주성 촉석루와 의암. 의기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9. 7. 30. 15:01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207




진주성 촉석루의암, 의기사를 다녀와서



진주성을 돌아서 촉석루 루마루에 올라서 수많은 사연들을 안고 유유히 흘러가는

남강물을 바라보며 촉석루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촉석루(矗石樓)는 1241년(고려 고종28)에 진주목사 김지대(金之垈)가 창건한 후 

수차례 고쳐 지어졌으며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은 바위에 지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장수들의 공간인 남장대(南將臺), 또는 장원루(壯元樓)라부르기도 하였고

영남제일의 아름다운 루각(嶺南第一形勝)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고

전시에는 군사지휘부로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촉석루 옆의 의기사(義妓祠)는 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논개(論介)의 넋을 기리기위해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722년(경종 2) 명암 정식(鄭栻)이 지은 의암사적비를 세우고

 1740년(영조16) 의기사를 창건하고 의암사적비각이 세워졌고

이 곳은 '여자를 위하여 세워진 유일한 사당'이라고도 한다.

의기사입구에 열리는 석류를 구경하며 촉석루앞의 의암을 찾아간다.


논개(論介,朱論介 1574~1593)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왜장과 함께 남강에 투신한 열녀로

사회의 멸시를 받던 기녀의 몸으로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충성심에

감동한 유몽인(柳夢寅)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채록하여 기록이 전하고 있다.

열녀문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의암(義巖)을 돌아 본다


의암(義巖)은 3.5×3,3의 바위로 나라의 원수를 갚기위해 논개가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한 바위로 논개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고

1629년(인조 7) 진주선비 정대륭은 바위 서쪽벽면에 전서체로 '義巖'이라 새겼으며

남쪽벽면에는 한몽삼이 쓴 것으로 전하는 해서체 '義巖'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매년추모제가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촉석루와 의기사, 의암에서 해설사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촉석루의 아름다운 경관과 논개의 충절을 생각하면서 촉석루를 떠나

창렬사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내 얼굴의 주름을 얻는데 나의 평생을 바쳐 왔고

주름이든, 상처든, 흰머리든 내가 꿈꿔온 모든 기록이 담겨 있으며

이탈리아 영화배우 안나 마니냐는 늙어서 사진을 찍으며 사진사에게

주름살을 얻는데 평생이 걸렸으니 수정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