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훼철되지 않은 사액사당 창렬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9. 7. 30. 16:30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208




훼철되지 않은 사액사당 창렬사를 다녀와서


촉석루와 의암 답사를 마치고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를 찾아갔다.


창렬사(彰烈祠)는 1593년(선조26) 서울에서 물러나 부산 등지에 집결되어 있던

왜군이 제1차 진주성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7여만의 대군으로 진주성을

격하였는데 이때 끝까지 사수하다가 순절한 분들을 기리기 위하여

1607년(선조40)  건립된 사액사당으로  1871년 대원군 서원철폐 때도 존속됐으며

충무공 김시민을 멘윗자리로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경상우변사 최경회,

충의공 장윤, 효열공 고종후, 증이조판서 류복립 등 7분을

 정사(正祠)에 열향으로 모시고 있으며 

류복립은 학봉 김성일의 생질로 안동 수곡(무실)분으로 이 곳에 모셔져 있었다.


병장 이잠, 김해부사 이종인, 김천일의 아들 상건, 의병장 양산숙, 우병우후 성영달,

의병장 강희열, 거제현령 김준민, 진해현감 조경형, 첨정 윤사복, 판관 최기필,

의병장 유함, 생원 이욱, 의병장 강희복, 수문장 장윤현, 의병장 손승선, 주부 정유경,

수문장 김태백, 판관 박승남, 선무장 양제, 학생 이인민, 하계선, 박안도, 최언량 등을

동서사(東西祠)로 나누어 모두 38명을  배향하고

매년 3월 초정일에 진주시 주관으로 후손들이 제를 봉행하고 있다고 한다.


충렬사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내려오면서 '諸將軍卒之位'라는 비석도 볼수있었고

충렬사 옆의 호국사 담벽에는 무궁화가 만발하였으며

호국사 앞의 고목나무는 흔적이 사라지고 빈 자리만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진주성 사랑나무(연리근, 연리목)은 가까이 자라는 두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가는

현상을 연리, 오랜세월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어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

몸통이 만나면 연리목이라 부르며  두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람에 비유되어 사랑나무라 불리고

진주성사랑나무는 팽나무와 느릅나무가 합쳐져 있는 연리나무로

 이 곳에서 기도하면 사랑의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충렬사를 나와서 진주성 사랑나무를 돌아서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앞사람들을 보니

바쁜걸음으로 답사를 다니느라 등에는 땀이 흘러 윗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는 본토비빔밥에서 비빔밥에 진주생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며

땀을 식히고 진주향교를 찾아 갔다.


진주성을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해설사 분에게는 강구섭 외원님이 협찬하시어 사례비를 지급하였다.

옷을 땀에 적시며 함께 답사를 하신 모든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콜 독일총리가 정원 청소중 수류탄을 세개 주워 경찰서로 가던중

아내가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터지면 어떻하죠?'라고 묻자

'걱정마 경찰에게 두개를 주웠다고 말하면 되니까?'라고 하였다.

죽음을 뒷전으로 하며 우선 아내를 안심시키려는 여유로움~~

무더운 날씨에 여유로운 웃음으로 땀을 식히는 하루가 되시길~











고목이 사라진 빈자리와 호국사 앞 무궁화











본토비빔밥과 남강변 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