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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이해반에서 봉화 바래미마을을 다녀와서
안동민속축제가 중반을 넘어선 10. 4. 안동문화원 문화재이해반에서
김성규선생님의 제비원돌다리와 보릿고개 설명을 들으며
바래미마을로 답사를 떠났다.
바래미마을은 봉화읍 해저리(海底里)로 마을이 하상(河床)보다 낮은 바다였다는
뜻이라 하고 바라밋(해저의 속칭)이 바라미, 바래미로 불렸다는 설과 논(畓)보다
내(川)가 깊어 '파라'로 물을 퍼올려 파라밋이 평음화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마을입구에서 내려 영천수라 불리는 큰샘을 지나 남호구택에서 종손님으로부터
입향조이신 팔오헌 감성구(八吾軒 金聲久 1641~1707)선생과 마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1876년에 농산 김난영(聾山 金蘭永(1838~1911)선생이 마련하고 그의 아들
남호 김뢰식(南湖 金賚植(1877~1935)이 완성시킨 남호구택(南湖舊宅)과
그의 전재산을 저당하고 대부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내 놓은
공으로 1977년 건국훈장을 받았다는 집안의 내력를 설명을 하면서
선조들이 건물을 물려주시어 고택체험을 하여 현재의 생활할수있어
선조님들께 고마움을 항상 느낀다고 하였다.
남호구택을 나와서 1919년 심산 김창숙선생이 파리장서운동을 전개할때
사랑채를 지방유림들의 연명장소로 활용되었던 김건영가옥을 지나
학록서당을 찾아갔다.
학록서당(鶴麓書堂)은 팔오헌 김성구선생이 팔오(八吾)를 실천하면서 후손을
가르치던 곳으로 경오전(耕吾田 내 밭을 갈고), 음오천(飮吾泉 내 샘물을 마시고)
채오전(採吾巓 내 산에 나물캐고), 조오천(釣吾川 내 강에 고기낚고),
무오현(撫吾絃 내 거문고를 뜯고), 피오편(披吾編 내 책을 펴내고),
수오현(守吾玄 내 현묘함을 지키고), 종오년(綜吾年 내 생애를 마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서당이며 인근의 추원사(追遠祠)와 감덕문(感德門)이 있었다.
학록정사를 나와서 붉게 익어가는 대추와 노랗게 떨어진 은행알과
누렇게 익어져 고개를 숙인 벼들을 보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면서
입향조 팔오헌선생의 넷째아들(金汝鈵)의 후손으로 1876년(고종13) 통훈대부를
지내고 1900년 봉화초등학교 전신인 조양학교(朝陽學校)를 설립한 안운 김인식
(巖雲金仁植)선생이 살던집 토향고택(土香古宅)을 지나서 만회고택으로 갔다. .
만회고택(晩悔古宅)은 1830년(순조30) 문과금제하여 김해부사,승정원 우부승지를
지낸 조선말 문인 만회 김건수(晩悔 金建銖(179-0~1854)선생이 살던집으로
김창숙선생이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한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사랑채의 마루밑에는 가마(교자)를 볼수 있었고
부속건물의 지붕에는 솟대를 볼수도 있었다,.
만회고택을 끝으로 바래미마을 답사를 마치며 남호구택과 만회고택에서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춘양으로 떠났다.
세상사 한마디
하루하루 아침이 밝아오는 것은 새호운 희망과 설레임을 마지하라는 것이고
하루하루 저녁이 어두워지는 것은 실패와 서러움을 묻으라는 것이다.
오늘의 서러움을 어둠과 함께 묻어 버리고 내일의 설레임을 맞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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