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용두산 용수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0. 4. 30. 00:49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 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874



용두산 용수사를 다녀와서



4월 29일 오후 보름전(4.13) 무협산 산행을 하였던 일행 7명이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무협산 산행을 다녀와서 용수사를 다녀오는 하루를 보냈다.


운곡리(雲谷里)는 원래 예안군 의서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동군 도산면 운곡리로 되었다가 1995년 시군통합으로 안동시가 되었다.


용두산(龍頭山 664.6)은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도산면과 녹전면의 경계를 이루며 상계천(上溪川)의 발원이 되고 용수사가 위치하며

부근에 투구봉, 마의대, 태자리, 신라리, 관창리, 마의당, 월오관 등

935년 신라가 항복하자 신라부흥을 꾀했던 마의 태자의 흔적들이 산재하고 있으며

정상에는 '안동의 정기 용두산에서 발원하다'라고 쓰여진 표지석이 서 있었다.


우리는 용수사 일주문 좌측에 주차를 하고 등산로로 정상을 항하여 오르니

산양삼과 송이재배지로 출입을 금한다는 현수막이 많이 걸려져 있었으며

가파른 등산로를 만발한 철쭉을 구경하며 한시간 반을 걸어  정상에 올라서니

태자리와 국도 35호선이 보였고 멀리서 청량산이 지켜보고 있었다.


정상에서 박선생님이 동동주를, 정회장님이  중국술을 가져 오시고

 홍일점으로 참석하신 이여사님이 두릅과 개두릎 순을 삶고 부쳐서 오시고 

권회장님이 사과를 준비하여 오시어 정상주로 목을 추기면서 즐기다가

용두산을 내려와서 계곡에 자리한 용수사를 찾았다. 



용두산 용수사(龍壽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 무신정권인

1181년(고려 명종11) 최선(崔詵)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985년 을미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전투중에 용수사와 영은맘이 소실되었다가 1994년 원행스님이 복원하였다.


대웅전의 불단은 벽에 붙여놓지 않고 간격을 두고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좌우측에 마의당과 월오관이 자리하며

정면에 정해사 13층 석탑이 자리하고 좌측에는 금호비와 돌부처님이 자리하고 있다.


용수사 금호비(禁護碑)는 신라시대 건립되어 용수사 뒷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높이는 131㎝, 두께 17㎝로 이 산에 제단과 절이 있으니 모든 출입을 금지하고

보호하도록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나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대웅전 좌측에 모셔진 돌부처님은 휴전선 근방의 영통사에 모셔졌던 돌부처님을

2005년 어느 노보살이 탈북하면서 모시고 나왔던 것을 어느분이 매입하여

용수사에 시주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초파일 행사준비로 분주하였겠지만

금년에는 전국사찰에서 초파일행사를 윤사월초파일로 연기하고

한달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하여서 그런지

사찰 경내는조용하고 참배객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는 용수사를 나와서 명륜터널입구에 위치한 '수제족발'집에서

산행을 함께 하시지 못 하였던 이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산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운전을 하신 두분께 감사를 드리고  같이 하신분 모두에게도 감사드리며 

특히 저녁식대를 지불하신 권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세상사 한마디

종일 고스톱으로 먹고 사는이는  교통순경이고

세월가는 것을 모르게 속이는 약은 염색약이며

세상에서 가장 두러웁고 잔인한 총은 눈총이고 

돈 받고 울고 돈을 주고 웃는 곳은  전당포이며

장수기록으로 세계 일인자는  심청이라 하네요

오늘도 웃으며 보내는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