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청량산 밀성대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0. 4. 22. 21:35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845



청량산 밀성대를 다녀와서



2020. 4.22. 바람이 세차게 부는 '지구의 날'  김밥을 싸서 청량산 밀성대를 찾아

산성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공민왕산성 북치성까지 오르면서 산성주변을 구경하며 

누군가가 따다 남은 두릅 이삭줍기를 하면서 밀성루를 돌아본 후 점심을 먹고  

밀성대 하단부를 경유하여 산성을 내려왔다.


제50주년 지구의 날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있은 후

게이로드 넬슨 상원의원이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주창하여 유엔이 정한 날로

 1970년 4월 22부터 차없는 거리, 전등 끄기, 온실가스 줄이기 등 행사를 하여 오며

우리나라는 1990년 참여하였고 현재 190여개국이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청량산(淸凉山 870)은 태백산맥의 지맥으로 고대에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청량산으로 불렸으며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금탑봉, 연화봉, 축융봉,

 경일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고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으며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으로 불리기도 하였고  이중환은 '택리지'에셔 

'청량산은 태백산맥이 들에 내렸다가 예안 강가에서 우뚝 맺은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흙묏뿌리 두어송이 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안에

들어가보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있고 모두가 만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청량산은 신라시대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시고 더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수도하였던 풍혈대가 있고  신라명필 김생이 글씨공부를 하였다고 전하는 김생굴,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수도하였던 의상봉과 원효암,두 분이 창건한 청량사가 있고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하여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던 공민왕성과 밀성대, 공민왕당 등 공민왕 유적들이 산재하고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면서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있으며

퇴계 이황 선생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사색을 하면서 즐겼던 곳으로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가 있는 등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 경북도립공원(48.76㎢)으로 지정되고 2007년 문화재명산으로 지정되었다.


밀성대(密城臺)는 산성입구에서 축융봉 가는 등산코스 700m지점에 있으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와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하여

대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명령을 듣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밀어서

체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선성을 오르며 건너편의 아름다운 봉우리들과 두 봉우리를 연결한 하늘다리와

아름다운 봉우리들 밑에 자리한 청량사와 응진전의 모습들도 구경을 하고

 밀성대의 가파른 절벽을 구경하면서 누군가가 따가고 남은 두릅이삭을 주으며

국민학교(요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떠 올려 보았다.


식량난이 어려웠던 그 시절 농번기에는 가정실습을 하여 집에서 추수를 도와주고

가정실습이 끝나면 추수를 하고 남은 논밭에 떨어진 곡식의 이삭과 낱알을 주워

학교에 가져 가야하는 숙제가 있었고 겨울이면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아 쥐꼬리를

 학교에 가져 가야하는 숙제를 하면서 식량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시절이 있었는데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먹지 왜 굶었느냐?'고  반문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이삭줍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될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산행을 마쳤다.


세상사 한마디

서민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부귀영화 이고

어렵게 지어졌다는 사찰은 우여곡절 이며

먹고 살기위해 찾아본 책은 호구지책 이고

바쁜사람들이 마시는 술은 동분서주 이다

오늘도 즐거운 웃음으로 하루를~~~


































이삭줍기로 얻은 드릅~~~


맑은 봄날 강변의 윈드써핑~~~



강변에 나들이 나온 청둥오리 한쌍~~

강변의 반영들~~

산행중에 만난 야생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