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 《대주(代州) 평정.》

오토산 2020. 5. 31. 09:41



초한지(楚漢誌) (103)

대주(代州) 평정.

한신은 위(魏) 나라를 깨끗이 평정하고, 위왕을 생포해 돌아와 한왕에게 승전 보고를 올렸다. 
한왕은 한신의 전공을 높이 치하하며 말한다.

 

"그동안 장군의 노고가 너무도 크시오. 위나라를 평정하느라고 너무도 고생했을 터이니,

당분간 사가(舍家)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오."
 그러나 한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대답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그러나 천하 통일의 대업을 생각하면,

신이 편히 쉴 형편이 못 되옵니다."
한왕은 그 말에 크게 감격하며 말한다.

 

"오오, 고마운 말씀이오.

그러면 장군은 이번에는 어느 나라를 평정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보구려."
 한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대답한다.

 

"위나라는 이미 평정했사오나,

그 옆에 있는 대주(代州)의 하열(夏悅)과 장동(張同)등은 아직 우리에게 항복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하니 조만간 그들을 평정할 계획이옵니다."

 

"그들은 명색이 나라일 뿐,

조그만 현(縣)이 아니오 ?"

 

"그러하오나 성주 하열은 야심이 대단하여 지금 손보아 두지 않으면

후일 골칫거리가 되겠사오며 이들을 정벌함으로써 인근 작은 성의 성주(城主)들을

제압하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장군의 의향대로 하시오.

그 다음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소이까 ?"

 

"우선 대주를 평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조(趙)나라를 점령하고,

그 다음에는 연(燕)과 제(齊)를 굴복시킨 연후에,

최종적으로 초나라를 격파하면, 대왕의 통일 성업은 완전히 성취될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이 꿈꿔왔던 웅대한 포부를 한신의 입으로부터 직접 듣게되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장군도 잘 알고 있다시피,

나는 만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여 억조 창생(億兆蒼生)에게 인덕을 골고루 베풀어 주는 것으로

일생의 목표로 삼아온 사람이오.

이같은 나의 포부를 장량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장군도 이런 나의 뜻을 이처럼 잘 알아주시니  고맙기 한량없소이다.

그러면 수고스런 대로, 이번에는 대두의 하열과 장동등의 무리를 평정시켜 주기를 바라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출발 전에 대왕께 재가를 받아야 할 일이 있사옵니다."
"새삼스럽게 무슨 재가를 ...? "

 

"서위왕 위표를 신의 마음대로 처단할 수가 없어, 이곳까지 생포해 가지고 돌아왔사옵니다.

그러하니 대왕께서 위표에 대한 처단을 친히 내려 주시옵소서."
 한왕은 <위표>라는 말을 듣자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위표를 생포해 왔거든 그자를 당장 이 자리에 끌어내 오시오.

내가 한신 장군을 대신하여 그자를 대장군으로 발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가  맡은 직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내가 초패왕에게 크게 패했던 것이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자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고향에 보냈더니

나를 배반하고 군사를 일으켜 공격을 감행하였으니, 그 죄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평소에는 관인 후덕한 한왕이었지만, 이때만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위표가 수레에 얹은 짐승 우리인 감차에 갇힌 채 한왕앞으로 끌려 나오자,

한왕은 눈을 부라리며 위표에게 호통을 친다.

 

"네 이놈 !

너는 56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러 나가서 싸움은 아니 하고 주색에 미쳐서 돌아가다가 30만 군사를 잃어버렸다.

내가 천운이 좋았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네 놈 때문에 깨끗이 망할 뻔 하였도다.

그래도 나는 네 놈을 죽이지 아니하고 고향에 돌아가 근신하게 했거늘,

네 놈은 그런 은공을 모르고 이번에는 나를 배반하려고 했으니, 네 놈의 죄는 결코 용서할 수가 없노라, ....

여봐라 ! 저 놈을 당장 끌어내어 참형에 처하라 ! "
 
감차에 갇혀 있는 위표는 고개를 수그린 채 얼굴를 들지 못했다.
그 순간, 80객 노파인 위표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영문 안으로 달려 들어오더니,

땅에 엎어지며 울면서 한왕에게 호소한다.

 

"대왕 마마 ! 

제 자식놈인 위표의 죄는 백 번 죽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하오나 저의 가문이 오대째 독자(獨子)로 내려오는 관계로,

저 아이가 죽으면 조상의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게 되옵니다.

자비하신 대왕님께서는 그런 점을 고려하시어 저 놈의 죄를 제가 대신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늙은 어미가 두 손을 모아 비옵나이다."
 한왕은 늙은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갑자기 눈시울이 후끈 달아올랐다.

 

"위표는 듣거라 ! 네 놈은 어머님을 뵙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내, 네 놈을 마당히 참형에 처해야 옳을 일이로되, 늙으신 어머님의 심정을 고려하여 특별히 살려 줄 테니,

집에 돌아가거든 노모에게 효양(孝養)을 극진히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형리는 위표를 풀어 주고 고향으로 보내주되,

그간의 관직은 모두 박탈하고 다만 , 고향에서 살 수 있도록 해 주어라."

위표 문제가 한왕에 의해 결말이 나자, 한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대주 정벌에 나섰다.
이때 대주 성주(城主) 하열은 대장 장동과 함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

고 좁은 영토 안에서 거드름만을 피우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는 날 정찰병이 달려와,
"한나라 장수 한신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우리를 치려고 30리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열과 장동은 세상 정세에 워낙 어두운 관계로, 한신의 내습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뭐야 ?

한신이라는 자가 우리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이끌고 왔다고 ?

한신이란 자가 얼마 전에는 위표를 생포해 갔다고 하더니,

이제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

렇다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하열은 한신을 우습게 여기며 장동에게 말한다.

 

"한신이란 자가 멀리서 오느라고 군사들이 무척 피로해 있을 것이오.

허니 그들이 피로를 회복하기 전에 우리가 선수를 쳐서 지금 당장 때려부수는 것이 어떻겠소 ?"
장동이 즉석에서 찬성한다.

 

"참으로 좋으신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때려부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장군은 성을 지키고 계시오.

나 혼자서도 충분히 때려부술 수가 있으니... ! "
하열은 혼자 싸워서 승리해 보임으로써 자신의 용맹함을 장동에게 과시해 보이고 싶어 이렇게 말을 하고,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혼자서 일선으로 출동하였다.
한편, 한신은 대주성 30리 밖에 진을 치고 난 뒤 모든 장수들을 불러 말한다.

 

"하열과 장동은 병법은 서툴지만 용기는 누구 못지 않게 대단하여,

저들은 반드시 우리에게 먼저 덤벼 올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작전 계획을 단계적으로 펼쳐서 저들을 생포해 버리기로 합시다."
장수들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어떤 방법을 쓰면 생포할 수 있을지,

원수께서 명령만 내려 주시면 저희들은 그대로 실천에 옮겨 나가겠습니다."

"조참 장군은 일군을 거느리고 나가 ,적과 싸움을 시작하고,

관영 장군과 노관 장군은 좌우에 매복을 해 있고, 번쾌 장군은 그보다 훨씬 후방인 산 그늘에 잠복해 있으시오.

조참 장군이 한바탕 싸우다가 거짓으로 쫒겨 오면, 저들은 반드시 맹렬하게 추격해 올 것이니,

그때 추격대 병력이 중간 쯤 지날 때에 관영 장군과 노관 장군은

좌우에서 협공하여 적을 혼란하게 만들도록 하시오.

그래서 적들이 산속으로 쫒겨 들어가거든 그때 번쾌 장군이 나서서 적들을 일망 타진 해 버리시오."

모든 장수들이 명령을 받고 작전 전개지로 떠나가 버리자,

한신은 정병 5백 명를 데리고 산골짜기에 깊이 숨어 있었다.
이윽고 오시가 되자, 하열은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한신의 진지로 육박해 왔다.
그러면서 적진을 향하여 앞서 달려 나오며 큰소리로 외쳐대었다.

 

"천하의 비겁자 한신아 !

용기가 있거든 싸우러 나오라."

그러자 적진에서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 나오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선봉 대장 조참이었다.
하열은 <조참>이라고 씌인 대장 깃발을 보고 소리를 크게 내어 웃는다.

 

"네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구나.

한신이라는 자는 내 이름만 듣고도 겁이 나서 네 놈을 대신 내보낸 모양이로구나.

이왕 나왔으니 어디 내 칼 맛을 보아라 ! "

하열은 이렇게 외치기가 무섭게 조참에게 번개같이 덤벼들었다.
하열과 조참은 정면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하열의 무예 솜시는 보통이 아니었다.
조참은 10여 합을 싸우다가 거짓으로 쫒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열은 신바람이 나서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도록 뒤따라가 무참히 베어 버려라 ! "

하열이 조참을 맹렬하게 추격할 수록 맹렬하게 쫒겨간다.
이렇게 20여 리쯤 추격할 무렵에 홀연 좌측에서는 관영의 군사들이 들고일어나고,

우측에서는 노관의 군사들이 들고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대니,

하열의 군사들은 크게 당황하고 흩어지며 낙엽처럼 쓰러져 가고 있었다.

 

(이크 , 큰일났구나 ! )

하열은 그때서야 곤경에 빠진 것을 깨닫고 말을 돌려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망을 치던 조참까지 뒤로 돌아서 삼면으로부터 총공격을  퍼부어 오니,

도망을 치려 하여도 빠져 나갈 곳이 없었다.
하열은 궁여지책으로 산을 향하여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해는 이미 저물어 서산에는 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열은 부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우선 나 살기에 바빴다.

그는 달빛을 등불 삼아 어두운 산속으로만 몸을 숨겨 들어갔다.

이렇게 10여리 쯤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별안간 어두운 숲속에서 수많은 횃불이 일시에 피어 오르더니

한떼의 군사들이 함성을 울리며 일시에 일어서는 것이었다.

 

(아이쿠 깜짝이야 ... ! )

하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도 잠깐,
호랑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네 이놈 !

나는 무양후(舞陽侯) 번쾌 장군이다.

나는 네 목을 가져 가려고 이곳에서 오래 기다렸노라 !"
하며 하열의 앞으로 썩 나서는 것이 아닌가 ?

하열은 번쾌의 고함소리에 혼비 백산하여, 몸을 돌려 반대편 골짜기로 천방지축으로 달려 나갔다.
바위를 뛰어넘고 산봉우리를 달려 넘으니,

그처럼 극성스럽던 번쾌 부대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한다.

 

하열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며,
"휴~.. 이제야 사지(死地)를 벗아났구나 ! "하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
하열이 가쁜 숨을 미처 돌리기도 전에 5백여 명의 군사들이 별안간 숲속에서

햇불을 들고 자신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더니,

자신이 손 쓸 틈도 없이 밧줄을 몸에 걸어 말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
하열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결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한 사람의 장수가 말을 타고 하열의 앞에 위연한 자세로 나타나더니,

 

"나는 네가 우습게 여겨 오던 한신 장군이다...

여봐라 ! 우리의 계획대로 대주성 성주를 생포했으니,

이제는 이자를 데리고 모두 본진으로 돌아가자."
우물 안 개구리 하열은 아무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수그리며 한숨만 쉬었다.

한편, 성을 지키고 있던 장동은 날이 어두워도 성주 하열이 돌아오지 않자 크게 초조하였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성주께서 큰 곤경에 빠진 것이 분명하구나 ! )

 

이렇게 생각이 된 장동은 5천여 군사들과 함께 횃불을 밝혀 들고 하열을 찾기위해 성을 나섰다.
장동이 하열을 찾으려고 성문 밖으로 나온지 얼마 안되,

때마침 쫒겨오던 패잔병들이 앞길을 막으며 숨가쁘게 외친다.

 

"우리들은 모두가 적에게 쫒겨 돌아오는 판인데

장군께서는 어디로 가시려고 성을 나오십니까 ?"
장동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한다.

 

"성주께서는 어찌 되셨느냐 ?

 나는 성주를 찾으러 나가는 길이다."

"성주께서는 부하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혼자 도망을 치다가 적에게 포위되었으니까,

지금쯤은 전사하셨거나 생포되셨을 것입니다."
장동은 그 말을 듣자 전신이 떨려 와서

하열을 찾으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성안으로 달려 들어와 사대문을 굳게 잠갔다.
한편, 한신은 하열을 본영으로 끌고 돌아와 땅바닥에 꿇어앉혀 놓고 큰소리로 꾸짖는다.

 

"너는 어찌하여 한왕의 휘하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고집을 부렸느냐 ?

지금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관인 후덕한 한왕을 충실하게 섬기겠다는 약속을 하면 살려 줄 것이로다.

어떡하겠느냐 ?"
하열은 분노에 넘친 어조로 대답한다.

 

"나의 소원은 일국의 왕이 되는 데 있었다.

오늘은 운수가 불길하여 너 같은 자에게 포로가 되었느니 너무도 원통한 일이로다.

패군 지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여러 소리 말고 어서 나를 죽여라 ! "
한신은 허허허 웃고 나서 말한다.

 

"만용(蠻勇)도 네 정도가 되면 가히 배안의 병신이로구나. 그렇게 죽기가 소원이라면

내일 장동까지 사로 잡아 두 사람을 함께 죽여 주리라."

다음날 아침, 한신은 하열을 우리에 가두어 가지고, 군사들과 함께 대주성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에 갇힌 하열을 성루에서 지켜 보던 적군에게 보여주면서,

 

"성주 하열이 이미 이 꼴이 되었으니,

장동은 애매한 군사들과 성안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속히 항복하라 !"
하고 외쳤다.

장동이 성루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목을 놓아 울자,

우리에 갇혀있던 하열이 악을 쓰듯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이렇게 되었지만, 장동 장군은 끝까지 싸우라. 한신이란 놈에게 항복해서는 안된다 ! "
한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열의 목을 한칼에 날려 버렸다.

 

그리하여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하열의 수급을 높이 들어 보이며,
"장동은 듣거라 !

너도 이 꼴이 되고 싶지 않거든 즉시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장동은 이미 어쩔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자,

 

"성주가 돌아가셨으니, 내 이제 누구를 위해 성을 지킬 것이냐 ! "하고 외치며

단도를 가슴에 꽂고 성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부장 왕존(王存)과 단충(單忠)은 즉석에서 구술 회의를 열어 항복할 것을 결정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 한신과 그의 군사들을 성안으로 받아들였다.
한신은 성안으로 들어오자 먼저 백성들부터 안심시켰다.
그런 연후에 영양성에 승전보를 급히 알리는 동시에 여세를 몰아

조(趙)나라를 치기 위해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