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漢誌) (101)
서위왕 위표의 정벌.
항우가 구사 일생으로 팽성으로 돌아와 병력을 점검해 보니,
출정 당시에는 30만이었던 군사가 지금은 20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항우는 범증을 불러 상의한다.
"아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출정했다가 병력 손실이 너무 많아 미안하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설욕은 반드시 해야 하겠는데, 아부께서는 무슨 묘책이 없소 ?"
항우는 한신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었던 것이었다.
범증은 오랫동안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들며 대답한다.
"서위왕 위표가 우리를 배반하고 한왕에게 귀순을 했으나,
지난번 싸움에서 대패한 뒤에, 대장군 지위를 박탈당하고 지금은 고향에 돌아가 근신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위표는 고향에 돌아가 있으면서도 한왕에게 별도의 처벌을 받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이니,
차제에 우리가 그자를 교묘하게 이용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
"일단 우리를 배반하고 돌아선 자를 어떻게 이용한다는 말씀이오 ?"
"변절하는 소질을 타고난 자는 필요에 따라 몇 번이고 변절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해(利害)로써 잘만 구워삶으면 위표가 우리쪽으로 되돌아 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항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위표가 우리한테로 되돌아오면,
우리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다는 말씀이오 ?"
"위표가 우리에게 되돌아오면,
한신은 크게 분노하여 몸소 군사를 일으켜 위표를 치려고 출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주력 부대가 빠진 영양성을 쉽게 점령하실 수가 있게 되옵니다.
또 영양성을 우리 손에 넣게되면 한왕이 무슨 재주로써 멸망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항우는 범증의 계략을 듣고 박장 대소하며 기뻐하였다.
"그것 참 기막힌 계략이오
그렇다면 위표를 설득하려면 누구를 보내야 좋겠소 ?"
"글쎄올시다.
누가 적임자일지는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아니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서령(尙書令) 항백(項伯)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저의 지인중에 ,관상가(觀相家)로 이름난 허부(許負)라는 사람이 있사옵니다.
허부와 위표는 서로의 명망(名望)을 아는 사이이므로 허부를 잘만 이용하면 될 것인데,
마침 허부가 지금 영양성에 머무르고 있으니,
제가 허부에게 편지를 보내 위표를 설득하도록 부탁을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
항우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였고, 범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런 좋은 사람이 있다면,
상서령께서 그 사람에게 위표를 설득하는 편지를 보내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범증과 항백은 의논한 끝에 관상가 허부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면 관상가 허부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
일찍이 한왕이 팽성 전투에서 항우에게 참패를 당하고 밤도망을 치다가
어느 산중에서<척희(戚姬)>라는 산골 처녀와 하룻밤 깊은 인연을 맺은 일이 있었거니와,
그 처녀를 보고 <너는 장차 고귀하기 짝없는 귀부인이 되리라>고
예언했던 관상가가 바로 허부였던 것이다.
어쨌건, 허부는 항백의 비밀 편지를 받아 보고 매우 난처한 얼굴을 지었다.
(항백이 나에게 매우 어려운 부탁을 해왔구나.
항백의 부탁을 거절했다가는 장차 항우에게 어떤 봉변을 당하게 될지 모르니,
위표의 설득은 되든 안 되든 한번 시도는 해봐야 할 것이 아닌가 ?)
이렇게 생각한 허부는 위표를 직접 찾아갔다.
위표는 허부를 반갑게 맞아 들이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선생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 잘 오셨소이다."
"소생에게 무슨 일을 물어 보시려고 그러십니까 ?"
"나는 요즘 들어 나 자신의 처신 문제로 몹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오.
그러니 선생이 나의 관상을 보아 앞으로의 길흉(吉凶)을 판단해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허부는 그 말을 듣고 위표를 설득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되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관상을 보아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다. 그러면 지금 곧 보아 드리겠습니다."
허부는 위표를 햇볕 잘 드는 대청으로 데리고 나와 , 이모저로로 위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허부가 보건데, 위표의 얼굴에는 황기(黃氣: 누른 기)가 농후하게 감돌고 있는데다가,
한줄기 요기로운 살기(殺氣)조차 뻗쳐 있어서, 어디로 보아도 앞으로가 매우 불리한 관상이었다.
이에 허부는 혼자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위표에게 불길한 관상을 곧이곧대로 말해 주면,
위표는 항우에게 협력하기를 깨끗이 단념하게 될 것이 아닌가 ?
그렇게 되면 항우에게 경을 치게 될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
허부는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에라 모르겠다. 위표의 운명이야 어찌 되든 간에 우선 나 부터 살고 보자.... ! )하는
생각을 굳히고 위표에게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대왕의 기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좋으십니다.
얼굴에 전에 없던 귀기(貴氣)가 충만한 것으로 보아,
석 달 이내에 길지(吉地)로 옮겨 가시면 반드시 구오지위(九五之位: 천자의 자리)에 오르실
대길상(大吉相)이시옵니다."
말할 것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위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하하하,
만약 선생께서 말씀하신대로 된다면 선생의 은공은 결코 잊지 않겠소이다."
허부는 어차피 거짓말을 하는 판이라,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다.
"대왕의 기상은 틀림없이 제위(帝位)에 오르실 운수입니다.
그러나 자고로 부부 일신(夫婦一身)이라 하였으니, 왕후의 운수가 어떠하신지,
이왕이면 왕후의 관상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위표는 즉석에서 무릅을 치며,
"말씀이 맞소 !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오. 그러면 지금 안으로 들어가 내 마누라의 관상도 한번 보아 주시오."
허부는 내전으로 들어가 위표의 마누라의 관상을
이모저모로 뜯어 보다가, 별안간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왕후마마의 운수는 대왕마마보다도 더욱 대길하시겠습니다.
왕후마마는 조만간 황후 마마로 불리우게 되실 것이옵니다."
위표는 어쩔 줄을 모르도록 기뻐하며 허부에게 물었다
"제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
허부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글세올시다.
소생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사오나,
초패왕과 결탁하여 한왕을 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사옵니다."
허부는 위표에게 차마 변절하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서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초패왕과 결탁을 ... ? 음...!
여하튼 그 일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오. 아무튼 관상을 잘 봐 주셔서 고맙소이다."
위표는 허부에게 많은 복채(卜債)를 주어 돌려 보내고, 이번에는 대부 주숙(周叔)을 불러 상의한다.
"일찍이 한왕이 나를 대장군으로 발탁하여 초나라를 치게 했지만,
내가 전쟁에서 패하자 대장군의 지위를 박탈하고 고향으로 쫒아 보냈소.
전쟁에서의 일승 일패는 병가의 상사이건만, 한번쯤 실패하였다고 나를 가혹하게 내버렸으니,
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오.
근자에는 한신이 초나라와 싸워서 승리를 하는 바람에 나의 신세가 더욱 초라하게 되어 버렸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기회에 차라리 초패왕과 다시 협력하여
함양을 빼앗아가지고 천하를 세 사람이 나눠 가지면 어떻겠소 ?"
위표는 허부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어코 천자가 되어 보려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숙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대왕의 말씀은 잘못된 생각인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은 워낙 덕이 높아 만백성들이 그를 따를 뿐만 아니라,
한신 장군 역시 귀신 같은 명장이어서 우리 힘으로 그들을 제압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초패왕도 불가능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
그러하니 주공께서는 한왕을 일편 단심으로 섬겨 나가는 것이 최상의 길인 줄로 아뢰옵니다."
주숙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간언이었다.
그러나 <천자>의 욕심에 부풀어 오른 위표의 귀에는 그 말이 달갑게 들릴 턱이 없었다.
위표는 즉석에서 주숙을 나무란다.
"대부는 매사에 너무 소극적인 것이 큰 결점이오.
대장부에게는 천명(天命)이란 것이 따로 있는 법이오.
관상가 허부는 내가 머지않아 천자가 될 것이라고 확언하였소.
천자가 되려면 무엇인가 혁명적인 일을 만들어 성취하여야 하지 않겠소 ?
내가 지금처럼 한왕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다면 어떻게 천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단 말이오 ?"
주숙은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천자가 되려면 덕이 높고, 경륜도 풍부하고, 실력은 물론,막강한 군사력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던가 ?
그런 것의 준비가 일천한 현실의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관상쟁이의 말만 덮어놓고 믿고 천자가 되려고 덤비는 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어 보였다.
"대왕께서는 무엇인가 잘못 판단하고 계시는 듯 싶습니다.
자고로 <천명>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옵고, 모든 운명은 현실과 결부하여 생기고 변하는 것이옵니다.
공연히 관상쟁이의 망언(亡言)을 믿으시고 군사를 함부로 일으키시는 것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패가 망신(敗家亡身)하기 쉬운 법이니, 거듭 통찰하시옵소서."
위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한다.
"나는 지금 대망(大望)을 품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논하는 판인데,
대부는 요망스럽게도 무슨 불길한 망언을 지껄이고 있는게요.
그러고 보면 대부는 한왕과 내통하여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분명하구려."
주숙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웃을밖에 없었다.
"신이 대왕의 은총을 입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어찌 대왕을 배반할 수 있으오리까.
신은 오직 진심에서 충언을 올리고 있을 뿐이옵니다.
이점을 통찰해 주시옵고, 대왕께서 신의 충언을 받아 들이지 않으시면,
후일에 반드시 후회하시게 되실 것이옵니다."
주숙의 이같은 말을 듣던,
위표는 더이상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여봐라 ! 이자는 충신의 가면을 쓰고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자를 당장 끌어내어 옥에 가두어 버려라 ! "하고 주숙을 즉시 하옥시켜 버렸다.
그리고 나서 천자가 되기 위해 한왕을 치려고 백장(栢長)을 군사(軍師)로 삼고, 백직(栢直)을 총사령관으로,
풍경과 경택을 기병과 보병의 대장으로 각각 임명하여 10만 군사의 출동을 서둘렀다.
그러나 한왕을 치려면 항우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기에 항우에게 다음과 같은 표문을 보냈다.
[본인은 한왕을 정벌하고자 함양을 공략하고자 하오니,
항왕 폐하께서는 옛날의 정리를 생각하시어 본인에게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말아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항우는 그 표문을 받아 보고 크게 웃으며 범증에게 이렇게 물었다.
"위표가 이런 글을 보내 왔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오 ?"
범증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위표가 별안간 한왕을 배반하기로 한 것은,
관상가 허부의 농간 때문인 줄로 아뢰옵니다."
"허부가 무슨 소리를 했기에 위표의 태도가 이렇게 돌변했단 말이오 ?"
그러자 범증은 허부가 위표를 만나, 그를 설득한 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주면서,
"허부는 위표에게 폐하께 다시 돌아가라고 직접 말하기가 거북하여
<당신은 천자의 천명을 타고났으니, 초나라 황제와 협력하여 함양을 점령해 버리면
그대로 천자가 될 것이다>라고 엉뚱한 술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위표는 천자가 되고 싶어서 우리에게 이런 표문을 보내 온 것입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자 배를 움켜잡고 웃는다.
"하하하,
위표가 천자가 되기 위해 나의 힘을 빌려 유방을 치겠다고 ?
어리석은 자의 백일몽(百日夢)같으니라고, 그렇지 않소 ?
하하하..."
"아무튼 위표가 우리가 던진 낚싯밥을 물었으니,
우리로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옵니다."
한편, 영양성에 있는 한왕은
위표가 반란을 일으켜 함양을 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역시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
"위표가 10만밖에 안 되는 군사를 가지고 함양으로 쳐들어 가겠다고 한다니,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오.
그러나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
누가 나가서 그를 쳐부숴야 하겠나 ?
그러자 모사 여이기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우리 군사들은 그동안 초군과 싸우느라고 몹시 지쳐 있사옵니다.
따라서 지금 다시 위나라로 출병하는 것은 삼가하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다행히도 신이 위표와 친분이 두텁사오니, 위표를 만나 이해(利害)로써 설득하여
우리를 배반하려는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위표가 신의 설득에 응해 주지 않으면, 그때에 가서 정벌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무력을 쓰지 않고 말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소.
그러면 광야군(廣野君)께서는 수고스러우신 대로 위표를 직접 만나 보고 오시오."
여이기 노인은 그날로 길을 떠나 위표를 찾아갔다.
위표는 여이기 노인을 반갑게 맞아들여 대뜸 이렇게 물었다.
"여 노인께서는 한왕의 명을 받고 나를 설득하려고 오신 모양이오 ?"
여 노인은 위표를 나무라듯 대답한다.
"나는 누구의 명을 받고 대왕을 찾아 온 것은 아니오.
다만 옛 정을 생각해서 대왕에게 어느 편이 이로운가를 말씀드리고자 찾아온 것이오.
그에 대한 판단은 대왕 자신이 내리실 일인데, 나의 말을 듣기도 전에 어찌하여 친구의 호의를 의심부터 하시오 ?"
여이기 노인이 정색을 하고 나무라니, 위표는 약간 계면쩍은 기색을 보이며 말한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용서하시오.
그렇다면 선생이 내게 말씀하고 싶은 이해(利害)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
여 노인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정색을 하고 말한다.
"대장부가 두 가지 마음을 가져도 옳지 못하고,
사건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도 안 되는 법이오.
대왕은 처음에는 초나라를 섬기다가 한나라에 귀순하였소.
그런데 이제 와서는 한왕에게 불평을 품고 또다시 초나라로 가려고 하니,
이래 가지고서야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말씀이오 ?
지금의 천하 대세를 냉철하게 관망하건데,
초나라는 세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항우가 워낙 포악하여 언제 망할지도 모르오.
그와는 반대로 한나라의 세력은 초나라에 비해 약하기는 하지만,
한왕 자신이 덕이 많고 지혜로워서 매사를 순리로써 처리하여 인근 제후들의 덕망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조만간에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오.
뿐만 아니라 백성들 입에서 조차 <초는 망하고 한은 흥한다>는 말이 회자하고 있는 터이오.
이런 일련의 상황을 감안 하건데, 대왕이 초를 등지고 한나라에 귀순한 것은 참으로 잘하신 일이었소.
지금대로 한왕을 성실하게 섬기고 있으면 장래에는 더욱 고귀하게 될 것이 자명한 일 인데,
어찌하여 한나라를 배반하여 스스로 손해를 보는 길을 택하려 하시느냐 말씀이오."
위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결연히 말한다.
"한왕은 나를 너무도 무시하고 냉대를 해왔소.
나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으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논하지 말아 주시오.
사내 대장부가 이 세상에 났다가, 어찌 남의 밑에서만 살다가 죽을 것이오.
나는 내 비위를 거슬리는 자를 정벌해 버리고 당당하게 천하를 호령해 볼 결심을 굳힌 사람이오."
위표가 노골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밝히자,
여이기 노인은 더 이상의 설득은 불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영양성으로 돌아와
한왕에게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한왕은 크게 실망하며 묻는다.
"그렇다면 위표는 머지않아 우리에게 덤벼 올 텐데,
그쪽의 장수들의 면면은 어떠합니까?"
여여기가 대답한다.
"최고 사령관에 백장, 총대장에 백직을 비롯하여 각군 대장으로는 보장, 경택,기장, 풍경 등등이 있기는 하오나
모두가 한결같이 대단치 않은 장수들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백장 따위가 어찌 우리의 한신 장군을 당해 낼 수 있으리오.
다만 그중에는 풍경이라는 자가 가장 현명한 편이나,
그자도 우리의 관영 장군은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오."
그리고 즉시 한신을 불러 명한다.
"장군에게 정병 10만을 줄 테니,
지금 곧 조참,관영 장군등과 함께 위표를 쳐부수도록 하오."
한신은 왕명을 받자,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아뢰었다.
"신은 어명을 받자옵고 곧 출정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나라로 출정한 줄 알면,
항우가 반드시 허를 찔러 대군을 몰아쳐 올 것이니 대왕께서는 거기에 대한 대비도 강구해 주시옵소서."
"음 ....
항우가 장군이 위표를 정벌하러 간 줄 알게 되면 ,
우리의 허를 찔러 공격해 올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 된다...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겠는지, 장군의 의견을 말씀해 주시오."
한신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조용히 들며 아뢴다.
"신이 생각하옵건데,
많은 장수들 중에서 그만한 큰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장수는 오직 왕릉 장군이 있을 뿐이옵니다.
그러니 왕릉 장군을 영양성 수호 최고 책임자로 임명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자 한왕은 대번에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그건 안 될 말슴이오.
지금 항우가 왕릉 장군의 어머니를 볼모로 붙잡아 두고 있기 때문에,
왕릉은 전력을 다해 싸울 형편이 안 될 것이오."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왕릉 장군의 어머니는 현명한 부인이기 때문에
자식을 키울 때에 지조(志操)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강조해 키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왕릉은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변하는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허니, 대왕께서는 왕릉을 최고 지휘관으로 삼고, 진
평을 참모로 삼으시면 항우를 충분히 감당해 낼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싸움에서 불리한 기색이 보이거든 장량 선생과
상의하시어 처리하시면 되실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이 되었다.
"모든 것을 장군의 의견대로 할 테니, 장군은 위표를 정벌하는 대로, 속히 돌아와 주시오."
한신이 조참,관영등과 함께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포판(浦坂)땅에 이르니,
위군(魏軍)은 어느 새 강을 앞에 두고, 진을 치고 있었다.
한신이 군사들에게 말한다.
"적의 군사들은 강 건너에 진을 치고,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도강에 필요한 배가 백여 척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어찌 10만 군사가 일시에 도강(渡江)을 할 수가 있겠나 ?
그러나 내게 비책(秘策)이 있으니, 그것은 목앵(木罌)을 만들어 일시에 강을 건너는 것이다."
그러자 관영이 묻는다.
"목앵이란 말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옵니다.
목앵이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목앵을 장군도 모르고 계셨소 ?
목앵이란 나무를 엮어 만든, 일종의 뗏목으로써 부교(浮橋)를 말하는 것이오.
이것을 넓고 튼튼하게 만든다면 ,많은 군사는 물론이고
전차(戰車)와 수레까지 한번에 싣고 강을 거널 수가 있을 것이오."
관영은 수 백명의 군사를 차출하여 불과 2,3일 만에 목앵을 수없이 만들어 놓았다.
목앵을 다 만들어 놓고 나자, 한신은 관영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렸다.
"장군은 1만 명의 군사를 군선(軍船)에 나누어 싣고 강을 건너 가면서 금방이라도 쳐들어갈 기세를 보이시오.
그러면 적은 크게 혼란해질 것이니, 저들이 혼란해지거든 본격적으로 공격을 퍼부으시오."
관영이 명령을 받고 군사들을 몰고 강으로 달려나가자,
이번에는 조참을 불러 별도의 명령을 내린다.
"장군은 2만 군사를 데리고 목양을 타고 하양(下陽)에서 도강하여 안읍(安邑)에서부터 적의 후방을 기습하시오.
나는 후진(後陳)을 거느리고 별도로 도강하여, 관영과 함께 삼면으로 공격하면 위표를 생포할 수가 있을 것이오."
조참도 명령을 받고 하양으로 떠났다.
한편, 위표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오려고 하는데,
홀연 강 건너편으로부터 적병이 수백 척의 군선을 나눠 타고 강을 건너오며 함성을 지르고 군고를 울려대는데,
그 기세가 천지를 뒤집을 것만 같았다.
위표의 군사들은 적의 공격을 받자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해 하는데,
이번에는 하양으로부터 비마가 달려와,
"한나라 장수 조참이 수만 군사를 거느리고 목앵을 타고 하양으로 건너와,
안읍에서 대왕가족을 생포해 가지고 지금 이리로 진격해 오고 있는 중이옵니다."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위나라 군사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데,
후방에서는 어느 새 조참이 덜미를 눌러 오고,
전방에서는 한신과 관영이 거의 동시에 앞길을 막으며 죄어 오는 것이 아닌가.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전개되자 위나라 군사들이 혼비 백산하여 도망을 가는 바람에
위표는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한신의 손에 사로잡히는 몸이되었다.
한신은 위표를 땅바닥에 꿇어앉혀 놓고 추상같이 꾸짖는다.
"주상께서는 초나라를 치기 위해 그대를 총대장으로 발탁하셨거늘,
그대는 주색에 미쳐 30만 대군을 대패하게 하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인자하신 대왕께서는 그대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아니하시고,
다만 고향에 돌아가 편히 쉬게만 해 주셨다.
그런데 그대는 그와 같은 은총을 모르고 오히려 반기를 들고 일어났으니,
그대의 죄는 마땅히 죽음으로써 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죽이기는 안 되었으므로, 영양성까지 끌고 가 주상께서 직접 ,단죄를 내리시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위표를 <감차>에 가두어 감시를 엄하게 하고,
평양성에 입성하여 민심을 평온하게 수습하였다.
그리고 옥중에 갇혀 있던 대부 주숙을 불러 내어, 그로 하여금 평양성을 지키게 하였다.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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