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열전

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131) 진희(陳稀)의 모반

오토산 2020. 6. 26. 09:39



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131)

진희(陳稀)의 모반

유방은 묵특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나자, 이제야말로 태평 성대가 왔는가 싶었다.
그러나 태평 성대는 결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옛 말에 내우 외환(內憂外患)이라더니,

대외적인 우환이 없어지니 내부적으로는 <제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다.

유방에게는 부인이 두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난 조강지처(糟糠之妻)는 정실 부인(正室夫人)인 여황후(呂皇后)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수 대전에서 항우에게 참패를 하고 도망을 치다

척씨촌(戚氏村)에서 인연을 맺은 척씨 부인(戚氏夫人)이었다.

여 황후는 나이가 들어 늙고, 척씨 부인은 아직도 꽃다운 미인이었다.
따라서 유방이 여 황후보다도 척씨 부인을 더 많이 사랑했을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여 황후에게는 <영(盈)>이란 아들이 있고, 척씨 부인에게는 <여의(如意)>라는 아들이 있다.
조정에서 정실 부인의 태생인 맏아들 영을 태자(太子)로 책봉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척씨 부인의 태생인 여의는 머리도 총명하거니와 무예도 남달리 뛰어난 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방은 맏아들인 영보다도 둘째아들인 여의를 더욱 사랑하였다.

게다가 척씨 부인이 밤마다 이부자리 속에서 간청을 해 대는 바람에,

유방은 마침내 태자를 갈아치울 결심을 하고, 어느 날 그 문제로 중신회의를 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태자 영보다는 공자 여의가 헐씬 더 총명하고 유능한 것 같구려,

그러므로 국가의 백년 대계를 위해 태자를 여의로 바꿔 버렸으면 싶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그러자 중신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이구 동성으로 간했다.

 

"폐하 ! 영 태자는 정실 황후의 태생이옵니다.

여의 공자는 부실 황후의 태생인 까닭에 태자로 책봉될 자격이 없는 분인 줄로 아뢰옵니다.

국가의 대위(大位)는 반드시 정실 원자(正室元子)라야만 계승할 자격이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자 유방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정실 태생이거나 부실 태생이거나 모두가 나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지 않소 ?

태자란 먼 장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이므로, 반드시 우수한 인물이라야 할 것이오.

내가 여의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뜻은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오."

 

유방은 간밤에 척씨 부인의 간청도 있고 해서, 자신의 뜻을 좀처럼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궁중의 모든 행사는 법도(法度)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법이다.

 

<태자는 반드시 정실 황후의 몸에서 태어난 원자(元子)로서 책봉해야 한다>는 것은

법도에 뚜렸이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그 법도에 따라 큰아들 영을 이미 태자로 결정한 것이 아니던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은 이미 책봉한 태자를 폐위시키고,

부실 소생인 여의를 태자로 책봉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오니, 중신들은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중신들은 제각기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간한다.

 

"폐하 ! 궁중의 법도는 대강(大綱)이므로, 비록 폐하일지라도 범할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법도를 함부로 범하면 국가의 기강을 무엇으로 유지할 수 있으오리까 ?"

 

"과연 그러하옵니다.

이미 책봉해 놓으신 태자를 폐위하고 자격도 없는 분을 태자로 바꾸시는 것은,

국가의 기틀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이오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이렇게 중신들은 이구 동성으로 유방의 제의를 부당하다고 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방은 여의를 태자로 세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다시 반론하였다.

 

"도대체 법도란 왜 필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법도란 것이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그렇다면 법도에 다소 어긋나는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유능한 인물을 태자로 내세워서 나라를 이끌게 하여야 할 일이 아니겠소 ?

영 태자를 폐위하고, 여의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나의 의도는

바로 이 점에 있다는 것을 양해하여 주기 바라오."

유방의 고집은 완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백발이 성성한 상대부(上大夫) 주창(周昌)이 벌떡 일어나더니 노기에 찬 어조로 외치듯 말한다.

 

"태자를 바꿔 치운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이미 정해 놓으신 태자를 아무 죄도 없이 어떻게 바꾸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

만약 폐하께서 태자를 기어코 여의 공자로 바꾸시겠다면,

저희들 중신들은 모두가 벼슬을 사퇴하고 물러갈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통촉해 주시옵소서."

조정의 원로 중신인 주창이 이렇게 완강하게 나오므로, 유방은 부득이 태자 교체를 보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척씨 부인은 울면서 유방에게 매달렸다.

 

"폐하가 여의 공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신다면, 어찌하여 태자로 책봉하지 못 하시는 것이옵니까 ?
폐하가 여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모두가 거짓 말씀이었음을 소첩은 이제야 깨달았사옵니다."하며

눈물을 쏟는 것이 아닌가 ?

자고로 여자의 눈물 앞에서는 천하의 영웅 유방도 기(氣)가 죽는 법이다.
유방은 입장이 난처해 하며 척씨 부인을 이렇게 달랬다.

 

"오늘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여의를 반드시 태자로 책봉해 줄 것이니,

나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오."

이렇게, 두 마누라 틈바구니에 끼여 시달리는 점에 있어서는

제왕이라고 해서 보통 남자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복은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지만,

(복불병행 : 福不竝行) 화는 한꺼번에 몰려 온다(화불단행 : 禍不單行)고 하지 않는가 ?

유방이 태자 교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판인데,

이번에는 묵특이 아닌 또 다른 오랑캐들이 예전의 연(燕) 나라와 조(趙)나라의 땅이었던

구령(舊領)을 마구 침범해 와서 백성들을 못 살게 군다는 기별이 들어온 것이었다.

특히 대주(代州)에서 달려온 비마는,
"오랑캐 무리들을 속히 제압하지 못하면 대주는 머지않아 그들에게 빼앗기고 말게 될 것이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그야말로 내우 외환(內憂外患)이 겹친 셈이었다.
유방이 진평을 불러 대책을 강구하니, 진평이 아뢴다.

 

"영포 장군과 팽월 장군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러올 수가 없는 일이옵고,

한신 장군은 군직(軍職)에서 해임되었으니 그를 보낼 수도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지금 상국(相國)으로 있는 진희(陳稀) 장군을 보내 토벌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오직 진희 장군만이 그들을 토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유방은 진평의 제안에 따라 진희를 불러 명한다.

 

"경에게 정예군 10만을 줄 테니 대주로 달려가, 오랑캐의 무리를 깨끗이 소탕해 주시오.

이번에 공로를 세우면 경을 대왕(代王)으로 책봉하리다."
진희가 머리를 조아리며 품한다.

 

"많은 장수들 중에서 특별히 제게 대임(大任)을 맡겨 주시어 영광스럽기 그지없사옵니다.

신으로서는 국가와 황제 폐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오랑캐 군사들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10만 군사만 가지고서는 그들을 깨끗이 소탕하기는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다면 경을 원수(元帥)로 임명해 줄 것이니,

군사가 부족하거든 현지(現地)에서 군사를 새로 징발해 쓰도록 하시오."

 

진희는 원수로 임명되어,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대주로 출발하였다.
진희는 본시 한신의 그늘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한신에게 좋은 계략이라도 듣고 싶어서, 대주로 가는 길에 한신을 찾아갔다.

 

진희는 한신에게 문안을 드리고 나서,
"저는 지금 황명을 받고 대주로 오랑캐를 소탕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원수님께서는 좋은 계략을 가르쳐 주시옵소서."하고

부탁을 하였다.

한신은 우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중인지라,

진희에게 술을 권하며 물었다.

"장군은 지금 대주로 쳐들어 온 오랑캐를 소탕하러 가는 길이라고요 ?"

 

"예, 그러하옵니다.

하오니 원수님께서 좋은 계략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한신은 고개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잠시 망설이면서,
(허, 이 친구도 까딱 잘못 하다가는 나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군 .... !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진희는 한신의 독백(獨白)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제가 비참한 신세가 될지 모르시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
한신은 그제서야 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 정색을 하며 진희에게 말한다.

"장군은 지금 오랑캐를 소탕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장군이 만약 공을 세우고 나면,

오랑캐를 소탕한 일과 내가 연,조,제,초나라를 정벌한 공로에 비해 어느 편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시오 ?"

 

너무도 뜻밖의 질문에 진희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원수님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옵니까 ?

제가 북방 오랑캐들을 소탕했다 하기로,

그 정도의 공로로서 어찌 연,조,제,초나라를 정벌하신 원수님의 공로와 비교할 수 있으오리까 ?"하고 말했다.
한신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내가 장군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오.

장군이 만약 오랑캐를 소탕하는 데 성공하고 돌아오면 일시적으로 왕작(王爵)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장군도 언젠가는 나처럼 한제에게 버림을 받아, 

비참한 신세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오.

왜냐하면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보신탕 신세를 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오."

진희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직접 당사자인 한신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의 조언을 결코 무시해 넘길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희는 머리를 수그리며 한신에게 묻는다.

 

"원수님 !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여야 그와 같은 화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한신은 오랫동안 묵상에 잠겨 있다가 대답한다.

 

"장군은 지금 10만 군사를 가지고 있지 않소 ?

장군에게 한제가 원수의 직함을 주어 오랑캐를 소탕하게 한 것을 보면,

한제가 장군을 무척 신임하고 있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소.

 

그러나 장군이 나처럼 비참한 신세를 면하려거든,

오랑캐를 소탕하고 나서는 그곳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한제에게 반기를 드는 길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면 한제는 장군을 토벌하려고 직접 나설밖에 없는데,

그때에는 장군과 내가 공동으로 작전을 펴서 한제를 때려부수고 우리가 천하를 장악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어느 때에 그 일을 시행해야 좋을지,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오.

시기를 잘 택하면 성공할 것이로되,

시기를 잘못 택하면 역적의 누명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너무도 놀라운 한신의 제의였다.

그러나 진희 자신도 한신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한신과 공모하여 배반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한신의 말대로 천하를 얻게 된다면,

자신도 일약 천하의 영웅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진희는 한신과 함께 밤을 새워 가면서 오랑캐를 소탕하는 일을 비롯하여

이후의 계획까지 치밀하게 상의한 뒤, 우선 군사를 이끌고 대주로 떠나갔다.
진희는 대주에 도착하자 많은 첩자들을 일선으로 보내어,

오랑캐 군사들의 실태부터 염탐해 보았다.
며칠이 지난 뒤, 첩자들이 돌아와 진희에게 고한다.

 

"적은 네 부대로 나뉘어 있는데, 한 부대의 병력이 각각 5만여 명씩 입니다.

그리고 만왕이라는 자는 대주성 근처에 진지를 별도로 구축하고 있는데,

그의 부하도 3만 명가량 됩니다."

 

"그러면 병력의 수가 20만이 넘는다는 말이냐 ?"

 

"아니옵니다.

그들의 후방에도 예비 병력이 4,50만 명 가량 가지고 있어서 결코 만만하게 여길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음 ....."
진희는 매우 걱정스러운 빛을 보이다가,

 

"그러면 그들의 총대장은 누구이더냐 ?"
하고 물었다.

 

"총대장은 합연적(哈延赤)이라는 자이옵니다.

그자는 큰 도끼를 잘 쓰기로 소문난 만부 부당(萬夫不當)의 맹장이라고 합니다.

만약 원수께서 그놈 하나만 때려잡으시면, 승기를 쉽게 잡게 되실 것입니다."
진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이덕,진산,초초 등의 세 대장들과 함께 작전회의를 열었다.

 

"적의 세력이 워낙 막강하여 무력으로 쳐부수기에는 매우 어려울 것 같구려. 하여,

우리는 계략을 써서 승리하기로 합시다.

세 분은 이제부터 내가 일러주는 계략을 잘 들어 두었다가 그대로 실행에 옮기도록 하시오."

 

그리고 세 대장들에게 각각 별도의 군령을 내려 일선에 배치시켜 놓았다.
다음날 진희가 군사를 이끌고 대주성 근처에 진을 치고 있는 오랑캐 앞으로 달려가니,

만왕이 의기 양양한 자세로 맞서 나오며 진희에게 큰소리로 외쳐대었다.

 

"유방은 묵특에게 겁을 먹고, 공주를 내어 줌으로써 화평을 도모했다고 들었다.

나하고도 화평을 도모하려면 공주를 보내라고 유방에게 일러라.

너 같은 졸장부는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 빨리 돌아가 유방에게 내 말이나 전해라."
그러자 진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장검을 꼬나잡고 덤벼들며 외친다.

 

"한제는 대한국(大漢國)의 황제 폐하이시다.

그런 어른께서 너 같은 오랑캐놈에게 어찌 공주를 보내 주실 것이냐 ?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뻣고, 주제를 알고 주접을 떨어라 ! "하며

있는 악다 구리를 해댔다.

 

그러자 만왕이 성난 소 처럼 달려들어 두 사람은 맹렬하게 부딪쳤다.
그런데 만왕의 무술은 생각외로 변변치 않았다.

진희와 10여 합을 겨루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수세에 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마어마하게 거창한 도끼를 번개치듯 휘두르며 달려 나오는 장수 하나가 있었다.

그자가 바로 <합연적>이라는 총대장인 모양이었다.
합연적은 쏜살같이 달려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

싸우려거든 나하고 싸우자 ! "
만왕이 쫒겨 들어가고 합연적이 달려 나오자,

진희는 합연적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합연적은 과연 맹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싸워 보니, 소문으로 듣던 것처럼 맹장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단둘이 싸우기를 무려 30여 합,

진희는 짐짓 힘에 부친 모양으로 남쪽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합연적은 기세를 올리며 대군을 휘몰아쳐 맹렬하게 추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진희는 일부러 쫒기고 쫒겨,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어느 강가에 이르렀다.

물은 그다지 깊지 않지만, 폭이 좁은데다가 물살이 제법 강한 산골 강물이었다.
진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재빨리 강을 건너와 버렸다.

 

그러자 진희를 추격하던 합연적은 뒤따르는 군사들을 향해,
"물이 깊지 않으니 모두들 빨리 강을 건너라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자기 자신부터 강을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합연적과 그의 부하들이 강을 절반이상 건너왔을 때,

별안간 상류에서 산더미 같이 커다란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며,

강을 건너던 오랑캐 군사들을 한꺼번에 휩쓸어 가는 것이 아닌가 ?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희의 부하들이 상류에서 물을 막아 놓았다가 일시에 터뜨린 것이었다.
강을 건너오던 오랑캐 군사들은 수없이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좌우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던 진희의 군사들이 때를 같이하여 일시에 들고 일어서며,

오랑캐 군사들에게 활을 빗발치듯 쏘아 갈기는 것이었다.

오랑캐의 총대장인 합연적만은 그런대로 물결과 싸우며 강 건너편으로 기어 오르려고 했으나,

진희가 재빨리 다가와, 황동으로 된 12근, 7척 무쇠석장을 바람개비 처럼 휘둘러,

뭍으로 기어 오르던 합연적의 대갈통을 사정없이 휘갈겨 세찬 강물 속으로 처박아 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합연적은 급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익사하고 말았다.

만왕이 군사를 몰고 뒤따라 오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아연 실색하였다.

 

"아아 !

우리가 저놈들의 술책에 감쪽같이 걸려들었구나 ! "

 

만왕이 발을 구르며 한탄하는 바로 그때 부하들이 급히 달려오더니,
"대왕 마마 !

우리가 진지를 비워 둔 사이에 적병들이 우리의 병량(兵糧)과 마초(馬草)를 송두리째 불태워 버렸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만왕은 그 말을 듣고 까무라칠 듯이 놀랐다.

 

"뭐야 ? 우리의 본진(本陳)이 공격을 당했다구...? 

아뿔싸 ...!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 "

 

만왕은 어이없게도 한 시각도 되지 않아 3만에 이르는 군사를 잃고,

눈물을 머금고 북방의 본국으로 총퇴각을 아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진희가 대승을 거두고 대주성(代州城)에 입성하자,

성에서는 대대적인 축하연을 베풀었다.
그러나 진희는 이제부터는 유방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좋을지,

그로서는 커다란 문제였다.
진희는 술을 마셔 가며 혼자 생각해 보았다.

(한신 장군의 말에 의하면 <유방은 고난(苦難)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는 데 대공(大功)을 세운 한신조차 냉대(冷待)해 오는 것을 보면,

나 같은 것은 언제 죽이려 할 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그렇다면 한신의 말대로 나는 이곳에 그냥 눌러앉아서 대왕(代王) 노릇이나 하기로 하자.

나중에 유방이 대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오게되면, 그때는 한신 장군과 합동 작전을 펴서 유방을 때려부수고,

한신과 함께 우리가 천하를 차지해 버리면 될 게 아닌가 ?)

진희는 이런 생각이 들자,

휘하 대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자기가 뜻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한 뒤에,
"만약 그대들이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먼 장래에는 그대들을 공에 따라 후백에 봉해 줄 것이오."하고 말했다.

이에 모든 대장들이 크게 기뻐하며 진희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진희는 이 해 7월에 대주성(代州城)을 근거로 삼고 대왕(代王)에 즉위하여,

이웃에 있는 조성(趙城)까지 병합해 버렸다.

그러나 이같이 엄청난 비밀이 오래 유지될 수는 없었다.
이웃나라인 서위왕(西魏王)이 이런 사실을 유방에게 급히 알리니,

유방은 크게 놀라며 소하와 진평을 한자리에 불러 상의한다.

 

"나는 평소에 진희를 무척 아껴왔었소.

그런데 진희가 무엇이 못마땅해 배반을 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구려."
승상 소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진희는 워낙 재주가 비상하여, 배반할 소질을 풍부하게 타고난 인물이옵니다.

지금 조정에 있는 장수들 중에는 누구도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회남(淮南)에 있는 영포 장군과 대량(大粱)에 있는 팽월 장군을 불러,

그를 토벌하게 하는 길밖에 없겠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옳게 여겨, 멀리 있는 영포와 팽월을 급히 부르는 동시에 전국 각지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한신은 그러한 사실을 알게되자,

영포와 팽월에게 밀서를 급히 보냈는데, 한신이 두 사람에게 보낸 밀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진희가 대주에서 모반을 했기 때문에, 한제는 지금 두 장군을 불러 진희를 토벌하려고 하고 있소.
그러나 진희를 토벌하고 나면, 두 장군도 나와 같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 것이오.

왜냐하면 두 분도 그동안 보셨다시피, 한제는 고난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는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두 장군은 회남과 대량에서 제각기 부귀를 누리며, 한제의 부름에는 결코 응하지 말도록 하시오.

만약 내 말대로 하지 않고 섣불리 달려와 진희를 토벌했다가는,

두 장군은 틀림없이 나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릴 것이니, 거듭 명심하기 바라오.>

영포와 팽월은 한신의 밀서를 받아 보고 크게 놀랐다.
(한신 장군이 한제에게 얼마나 많은 원한을 품었으면 우리한테 이런 밀서까지 보냈을까 ...?

 한제의 이러한 성품을 모르고 우리가 진희를 토벌해 버린다면,

그때에는 우리 자신도 한신 장군과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

이렇게 생각한 영포와 팽월은 <몸이 불편해 출병(出兵)을 못하겠다>는

상주문(上奏文)을 유방에게 올려 버리고 말았다.
출병 불가능의 통고문을 받은 유방은 크게 노하며 소하와 진평을 다시 불러 상의하였다.

"영포 장군과 팽월 장군이 모두 신병으로 출병을 못하겠다고 알려 왔으니 

진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소 ?"
진평이 대답한다.

 

"신이 생각하옵건데, 진희가 모반을 결심하게 된 데는 세 가지의 동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첫째는 한신 장군이 현직에서 해임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희는 누구 보다도 한신 장군을 두려워했는데,

그가 천하 통일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지장(無用之將)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를 당할 장수가 없다는 자신감에서 모반을 감행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유방은 수긍의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음 ... !  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이야기요.

그러면 두 번째의 동기는 무엇이라고 생각되오 ?"

 

"두 번째의 동기는, 폐하께서 요즘들어 되도록 전쟁을 피하시려는 경향이 있어왔기 때문에

진희는 그것을 알고 모반을 결행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동기는, 조(趙)나라의 군사들은 옛날부터 강병(强兵)이기 때문에

그들을 믿고 모반을 결심했을 것이옵니다."

 

"음 ! 모두가 그럴듯한 이야기요.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소 ?"
진평이 다시 아뢴다.

 

"신이 생각하옵건데,

진희를 토벌하기 위해서는 폐하 자신께서 직접 원정에 오르시는 길밖에 없는 것 같사옵니다.

모든 정사(政事)를 황후 마마와 소하 승상에게 맡기시옵고,

폐하께서 직접 주발,왕릉,번쾌,관영,조참,하후영 등의 대장들을 모조리 거느리시고 친정(親征)길에 오르신다면,

진희는 기가 질려 절로 손을 들게 될 것이옵니다."

유방은 진평의 말을 옳게 여겨 몸소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친정에 나서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주발과 왕릉에게 10만 군사를 주어 선발대로 먼저 떠나게 하고,

유방 자신은 내전으로 들어와 여황후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말했다.

"진희라는 자가 우리 나라를 침입해 온 북방오랑캐를 물리치고서  

대주에 눌러 앉아, 칭왕(稱王)을 하며 반란을 일으켰기에,

부득이 나 자신이 그 자를 토벌하러 원정을 다녀와야 하겠소.

여 황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한신 같은 유능한 장수를 내버려두고

어찌하여 폐하께서 직접 원정을 나가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

유방과 한신의 미묘한 관계를 잘 모르는 여 황후는 유방의 친정을 만류하고 나왔다.
유방은 어쩔 수 없이, 한신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을 여 황후에게 솔직히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황후는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만, 한신이란 자는 결코 믿을 사람이 못 되오.

진희를 토벌하려고 한신을 보냈다가는, 한신은 진희와 결탁하여 칼 끝을 나에게 돌려댈지도 모르오.

내가 한신에게서 일체의 병권(兵權)을 박탈해 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소.

한신은 계략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어떤 변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꼭 알고 있어야 하오."

"한신 장군은 그렇게나 믿지 못할 장수였습니까 ?"
유방은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한신은 나의 그늘에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야심찬 인물이오.

거듭 말하거니와 그에게서 모든 병권을 빼앗아 버린 것은 그런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소.

내가 이번에 원정을 나가고 없으면, 한신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어떤 일을 일으킬지도 모르오.

그러니 내가 부재중에는 모든 국권(國權)을 황후 자신이 직접 장악해 주시오.

그래서 무슨 불상사가 생기게 되거든 소하 승상, 진평 대부등과 직접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하시오."

 

여 황후는 본시부터 권력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인지라,

유방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폐하께서 일시나마 <국권을 대행하라>는 분부를 내려 주시면,

신첩은 소하,진평 등과 상의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나이다."
유방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한다.

 

"한신의 문제를 생각하면 일시나마 도성(都城)을 비우기가 불안해 견딜 수가 없구려.

그러나 제아무리 한신이라 한들, 손과 발을 모두 잘라 버렸으니까 별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한신이 의심스러운 태도로 나오거든,

그날로 체포하여 죄상을 엄중하게 다스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소하와 진평을 그 자리에 불러 간곡히 부탁한다.

 

"내가 없는 동안에는 황후에게 모든 국권을 대행하게 하였소.

소하 승상과 진평 대부는 국가의 개국 원훈(開國元勳)이시니,

황후를 성심껏 받들어 국정에 빈틈이 없도록 살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오."
소하와 진평은 머리를 조아리며 품한다.

 

"신들은 황후 마마를 충성스럽게 받들어 모실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만백성들의 소망대로 하루속히 승전의 개가를 올리도록 하시옵소서.

신들은 그날을 학수 고대하겠사옵니다."

이리하여 유방은 만조 백관들의 환송을 받으며 원정의 길에 올랐고,

여 황후는 그날부터 국가의 대권을 한손에 장악하게 되었다.
국가의 대권 ! 그것은 천하의 만사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그러기에 여 황후는 권력을 장악한 그날부터 권력에 대한 형용하기 어려운 흥미와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

*글 끝에 붙여..
위에서 보시시피, 천하의 영웅인 황제도 두 마누라 틈새 에서 불쌍한 범생(凡生)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 폐하께,이슬람의 마호메트가 아내를 넷 까지 두도록 허락한 이유를 알려드림으로써, 
황제 폐하를 위로하고자 합니다.

(필히 황제 폐하께서는 마누라 둘 을 더 얻으시도록 권하는 바입니다.)
마호메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내가 한 명이면 인생이 고달퍼진다.
남편의 모든 생활을 간섭하며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 대므로 지겨워지게 된다.

둘 이라도 마찬가지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늘 싸우기 때문에 싸움을 말리다가 아까운 세월이 다 간다.

셋 이라도 문제다.
둘 이 편을 짜서 한 사람을 몰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 이되면 인생이 행복하게 된다.
둘 씩 좋은 친구가 되어 잘 지내기 때문에 남편이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고,
아내끼리 순서를 정해 두기 때문에 남편은 한 아내를 편애 하지 않아도 된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