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열전

한고조 열전(漢高祖 列傳)《유방의 출병 》

오토산 2020. 6. 27. 10:23



한고조 열전(漢高祖 列傳) (132)

유방의 출병


유방은 대군을 거느리고 한단성에 도착하자,

우선 적의 실정부터 알아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성주(城主)와 관리들을 한자리에 불러 묻는다.

 

"진희는 지금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냐 ?"
성주가 대답한다.

 

"진희는 곡양(曲陽)에 본부를 두고 여러 곳에 진을 치고 있사옵니다."

 

"병력은 얼마나 되며,

장수들은 몇 명이나 된다더냐 ?"

"진희는 신병(新兵)들을 마구잡이로 긁어모아서 병력은 50만에 가깝고,

장수들도 유무와 초초를 비롯하여 20여 명 가량 되옵니다.

그런데 그자들의 행패가 어찌나 포악한지, 백성들이 들볶여 못살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러하니 폐하께옵서 그들을 하루속히 토벌해 주시기를 백성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휘하 대장들을 둘러보고 웃으며 말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한단은 중주(中州)의 거점임에도 불구하고 진희가 이곳에 본부를 두지 아니하고

곡양에 본부를 둔 것만 보더라도 진희의 지모(智謨)가 대단치 않음을 알 수 있소.

더구나 진희는 되는 대로 신병들을 끌어 모았다고 하니,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은 군사들이 아무리 많기로 무엇이 두렵겠소.

그러니 우리는 진희를 일거에 섬멸해 버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대장 주창(周昌)을 불러 명한다.

 

"내가 진희를 직접 때려부수기로 할 테니,

장군은 시중에 나가 나의 길잡이가 되어 줄 이곳 지리에 밝고 똑똑한 젊은 장사 네 명을 골라오도록 하라."

주창이 시중으로 나가 한제의 길잡이가 되어 줄 네 명의 장사를 선발해 가지고 돌아왔다.
때마침 유방은 장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네 명의 장사들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그대들은 어떤 방법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
네 명의 장사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다.

 

"폐하께서는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적정(敵情)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싸우시기는 매우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적의 허실을 소상하게 알아 올 것이오니, 적정을 잘 아시고 난 뒤 공격하시도록 하시옵소서."

 

유방은 껄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대들이 그럴듯한 말로 나를 현혹하는 것은 아닌가 ?"

 

그러자 네 명의 장사들은 정색을 하며,
"저희들이 황제 폐하께 어찌 감히 거짓 말씀을 아뢸 수 있으오리까.

의심 받는 것은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유방은 다시금 파안 일소하며 말한다.

 

"하하하, 나의 말은 농담에 지나지 않았노라.

이 자리에서 그대들을 천호장(千戶長 : 요즘으로 치면 면장)으로 임명해 줄 테니,

적의 허실을 소상하게 알아 오도록 하라."

 

네 장사는 뛸 듯이 기뻐하며 적진으로 달려나갔다.
생면 부지(生面不知)의 네 젊은 장사에게 <천호장>이란 벼슬을 내려주니,

좌우에 신하들이 크게 놀라며 유방에게 간한다.

 

"아무런 공로도 없는 그들에게 무슨 이유로 <천호장>이란 중직(重職)을 내려 주시옵니까 ?"
유방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병서에 <중상지하 필유용부(重賞之下 必有勇夫)>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

그들이 설사 나를 속일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짐이 이미 커다란 감투를 씌워 주었으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게 될 것이오.

그들이 적의 허실을 정확하게만 알아 오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희를 간단히 쳐부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니 그들의 의욕을 북돋기 위해서라도 어찌 커다란 감투를 씌워 주지 않을 수 있겠소 ?"

* 글 중간에 붙여...
요즘도 우리 군(軍)에서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소주병이 군대 생활을 할 때인, 김일성 생존 때는 북한군의 4대 군사노선이란 것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이른바, <전군의 간부화>이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나는,폐쇠된 군대 문화에서 개인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계략이라고 본다.

칭찬 보다는 포상(褒賞) 좋고, 그것보다는 직책(織策)의 영전(榮轉)이 좋은 것이다.
이런 것들을 북한에서는 1960년 대에 이미 시행하고 있는데,
요즘도 우리는 그들과는 반대로 가고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구태 청산> <비리 척결> <군정 종식> 등 이런 것을  정화(淨化)한다고 하면서,

다시 계속해 잘못을 저질러 왔다.
요즘도 다르지 않아, <국정 농단>과<적폐 청산>등으로 한참 시끄럽더니,

삼권 분립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법 농단> 등의 또 다른 악업(惡業)을 쌓고있다.

칭찬에 인색한 우리 나라 우리 국민들 ...
이제부터는 상대방의 질책과 원망보다는  좋은 점을 높게 보고 칭찬을 먼저 하도록 하자.

 

아울러 소주병도 글에 덛글을 달아 주시는 이웃에게 나는,
<하염 없는 칭찬을 해 드리기>로 결심했다.
이전의 소주병은 삼애가(三愛家) 였다.
애주가(愛酒家) ,애연가(愛煙家), 애처가(愛妻家)
그러나 오늘부터 하나 더 하여 사애가(四愛家)가 되려고 한다.
무엇 ?..
그것은 애우가(愛友家)이다.
                      ....

여러 신하들이 그 말을 듣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유방은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내가 이곳에 와서 민심을 살펴보니,

일반 백성들은 진희의 보복이 두려워 우리에게 협조할 기미를 좀처럼 보여 주지 않고 있었소.

일반 정세가 이 모양이기에, 네 젊은이에게 대단한 감투를 씌워 줌으로써

민심을 우리에게 돌리게 하려는 것이오.

한 사람에게 중상을 내려 줌으로써 만인의 인심을 돌려 놓으려는 것이 나의 정책이오."

신하들은 유방의 원대한 계략에 더욱 감탄하였다.
한편, 네 장사들은 곡양에 잠입하여 적정을 소상하게 알아 가지고 돌아와 유방에게 고한다.

 

"진희는 장수가 부족하여, 시중의 장사꾼을 대장으로 기용해 쓰고 있었습니다.

장사꾼이란 본디 이해(利害)에 밝은 사람들이오니,

폐하께서는 그들을 돈으로 매수해 버리면 싸움을 간단히 끝낼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중신회의를 열었다.

 

"진희는 장수가 부족하여, 장사꾼들을 대장으로 기용하고 있다고 하오.

그렇다면 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내란(內亂)을 일으키게 하면,

싸우지도 않고 자멸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가 적진으로 들어가 그들을 매수할 사람이 없겠소 ?"
그러자 열중(列中)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한다.

 

"신을 보내 주시옵소서.

신이 내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선뜻 나선 사람은 중대부(中大夫) 수하(隨何)였다.
유방은 수하임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경은 천하의 세객(說客)이니, 누구보다도 적임자요.

경에게 황금 백 근을 줄 테니, 꼭 성공하고 돌아오시오."

 

수하는 황명을 받자 위조 조서를 한 통 꾸며 가지고

10여 명의 종자(從者)들과 함께 곡양으로 진희를 찾아갔다.
진희를 만나기 전에 종자들에게 부탁한다.

 

"내가 진희를 만나거든 면담 시간을 끌도록 할 것이니,

그대들은 그 사이에 상인 출신의 장수들을 황금으로 매수해 버리도록 하라 ! "

 

수하는 이렇게 <적장(敵將)들을 매수해 놓을 것>을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진희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하여 진희를 만나게 되자,

어전에 나왔을 때처럼 두 손을 읍하고 서서

진희를 군신지례(君臣之禮)로 깍듯이 받들어 올렸다.
진희는 오히려 어색한 듯 수하를 나무라며 말한다.

 

"수하 대부와 나는 다 같은 한조(漢朝)의 신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나를 군신지례로 대해 주시오 ?"
수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장군께서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한제를 상대로 ]

천하를 겨루고 계시니 어찌 제가 결례(缺禮)를 하겠습니까 ?

만약 그랬다가는, 장군의 칼에 제 목숨이 달아나게 될 것이 아니옵니까 ?"
진희가 소리내어 웃으며 말한다.

 

"대부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오.

내가 모반한 것은 본심에서 한 일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행한 것이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

"수하 대부는 나의 말을 잘 들어 보시오.

한제는 워낙 천성(天性)이 가혹하여 <고생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오.

그는 워낙 의심이 많아서 대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상을 주는 대신에,

지위를 박탈하거나 숫제 죽여 버리는 가혹한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한신 장군의 경우를 보시오.

한신 장군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얼마나 공로가 많았소.

그러나 한제는 정작 천하를 통일하고 나자,

한신 장군에게 상을 내리기는 커녕 원수의 직위를 박탈하고

지금은 그의 손과 발까지 모조리 묶어 버리고 말지 않았소 ?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랑캐를 물리치고 난 뒤, 모반을 하게 된 것이오.

대부는 나의 이런 심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오."
수하가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말한다.

 

"실상인즉 저는 장군을 설득하여 귀순하게 하라는 황명을 받고 찾아온 것입니다.

제가 가져온 조서에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만약 장군께서 순순히 귀순하시면,

한제는 장군을 반드시 대왕(代王)에 봉해 주실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진희는 수하가 거짓으로 꾸며 온 한제의 조서를 읽어 보았다.

과연 조서에는 <귀순해 오면 일체의 잘못을 불문에 붙이고 대왕에 봉한다>는 구절이 분명하게 들어 있었다.
그러나 진희는 조서를 읽고 나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 조서는 나를 속이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의 조서요.

한제가 대군을 몰고 와서 이런 조서를 보낸 것은 싸우지 아니하고

나를 생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
수하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주상께서는 장군과 싸우기 위해 군사를 몰고 오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신들이 <싸우지 말고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간곡한 간언을 올렸기 때문에,

주상은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이런 조서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만약 장군께서 타협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한제에게 사실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진희는 오랫동안 심사 묵고하다가,
"나는 암만해도 귀순은 못 하겠소이다.

한제는 국가에 공로가 많은 한신 장군조차 권력의 자리에서 쫒아내 버렸는데,

한번 배반했던 나 같은 놈이 귀순을 한다고 살려 줄 리가 없지 않겠소 ?"

수하는 짐짓 한숨을 쉬며,
"장군께서 끝까지 귀순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

는 주상에게 그대로 보고하는 길밖에 없겠습니다."하고

진희 앞을 물러나와 버렸다.

그리하여 영문 밖으로 나오니 대기하고 있던 종자(從者)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고한다.

"유무와 초초등 중요한 장수들은 모두 매수해 놓았습니다.

그들에게 황금 덩어리를 몇 개씩 안겨 주었더니 뛸 듯이 기뻐하면서,

이제부터는 싸우지 않겠노라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수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본영으로 돌아와 유방에게 모든 경과를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수하의 보고를 받은 유방은 크게 자신이 생겨 다음날 일선으로 대군을 몰아쳐 나갔다.
그러자 진희가 말을 달려 나와 마상에서 유방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

 

"폐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대군을 여기까지 몸소 몰고 오셨습니까 ?"
이에 유방은 소리를 높여 꾸짖듯 말한다.

 

"나는 그대를 무척 아껴 왔거늘,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모반을 하는가 ?

그대가 모반을 했기에 나는 그대를 응징하러 왔노라."
진희가 맞받아 대답한다.

 

"폐하는 진시황이나 초패왕과 마찬가지로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옵기에,

저는 부득이 모반을 하게 된 것이옵니다."

 

유방이 크게 노하며 뒤를 돌아다보며,
"누군가가 달려나가 저 역적놈을 당장에 주살(誅殺)해 버리지 못할까 ! "하고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그러자 번쾌와 주발이 쏜살같이 달려나가 진희와 일전을 겨루었다.
그러나 진희의 무예는 대단하였다.

진희는 1대 2로 싸우는데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렇게 20여 합을 겨루도록 승부가 나지 않으니,

이번에는 왕릉과 주창까지 가세하여 1대 4의 접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되자 진희는 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남쪽으로 쫒기기 시작하였다.
남쪽으로 가면 유무와 초초가 대군을 이끌고 도와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남쪽으로 달려가도 유무와 초초의 군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무와 초초는 이미 황금에 매수되었기 때문에

한군과 싸우지 않으려고 군사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동시켜 버렸던 것이었다.

유방은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진희를 추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30리쯤 추격을 하다 보니, 거기에는 네 개의 진문(陳門)이 있었는데,

그 진문에는 많은 군기(軍旗)가 펄럭이고 있었다.

진희를 뒤쫒던 한나라 대장  번쾌, 주발,왕릉,주창 등은

진희를 대번에 때려잡을 욕심에서 적진 깊숙이 쳐들어갔다.

대장들을 미리 매수해 놓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덤벼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공격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희의 기마 부대가 사방에서 구름떼처럼 몰려 나오며 한나라 군사들을 닥치는 대로 쳐부수는데,

그들 모두가 일기 당천(一騎當千)의 용사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희의 기마 부대에게 기습을 당한 한군 병사들은 칼에 맞아 죽고

말발굽에 밟혀 죽고 하는 바람에, 삽시간에 패색이 짙게 드리웠다.

 

"이거 안 되겠다.

모두 급히 후퇴하라 ! "

한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자,

진희의 군사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 추격해 오며 한군을 닥치는 대로 때려 죽였다.

그러나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바람에 진희는 멀리까지는 추격해 오지는 않았다.
천만 다행하게도  날이 어두워졌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군은 재기가 불능할 정도로 막대한 병력의 손실은 물론, 사기가 크게 꺾일 뻔 하였다.

유방은 눈물을 머금고 안전 지대까지 퇴각해 오자,

대오(隊伍)를 새롭게 가다듬으며 전군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렸다.

 

"적이 밤에 야습을 감행해 올지 모르니, 모든 부대는 진문을 철저히 수비하라...

그런데 적장을 모두 매수해 놓았다고 했는데,

적의 기세가 놀랄만큼 막강하니 도데체 어떻게 된 것이냐 ?"
그러자 왕릉이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유무와 초초는 매수되었기 때문에,

오늘 싸움에는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뭐야 ?

유무와 초초가 가담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진희의 군사들이 이렇게도 강하단 말이냐 ?"

 

"그러하옵니다.

오늘의 전투에서 진희의 용병술(用兵術)을 보니, 그는 한신의 병법에 매우 정통하였습니다.

진희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덤볐다가는 큰일날 것 같사옵니다."

마침 그때 대장 주발이 급히 달려오더니,
"폐하  우리가 싸우고 있는 사이에 적병들이

우리 본진에 보관하고 있던 군량과 마초를 모조리 훔쳐가 버렸습니다."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
유방은 그 보고를 받고 대경 실색하였다.

 

"뭐요 ? 적에게 군량과 마초를 모두 도적맞다니,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싸운단 말인가 ?"
"

 

군량과 마초가 없으니 부득이 우리는 한단까지 긴급 후퇴를 해야 하겠습니다.

일단 한단으로 돌아가 군비를 재정비해 가지고 다시 와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유방은 기가막혔다. 진희의 병법이 이렇게나 탁월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더구나 왕릉의 말대로 진희가 한신의 병법과 막상 막하라고 한다면,

그를 토벌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만 같았다.
유방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우리가 한단으로 후퇴하기 시작하면,

진희는 그 낌새를 알아채고 기습을 감행해 올 게 아닌가 ?"

 

유방은 평소부터 한신의 병법을 무척 두렵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기에 <진희는 한신과 흡사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진희에게도 은근히 겁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왕릉은 자신을 가지고 말한다.

"우리가 군사를 몇 부대로 나눠 가지고, 제각기 분리하여 이동하면

아무런 위험도 없이 한단까지 후퇴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럴까 ?"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진희의 야습을 걱정하시지만,

저는 그와 반대로 그가 병법에 정통하므로 오히려 무모한 야간 기습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사옵니다."

"그 이유는 ?"

 

"어떤 군사를 막론하고 부대가 이동할 때에는 적의 기습에 대한 준비를 완전히 갖추고야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기본 병법을 모를 리 없는 진희가 무엇때문에 무리한 기습을 감행하겠습니까 ?"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하듯 말한다.

 

"장군의 말을 들어 보니 과연 그렇구려 !

나도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은 탓인지 쓸데 없는 염려를 하게 되거든,

그러면 날도 어두우니 지금 이 길로 한단으로 옮겨가기로 하세."
유방은 어둠을 틈 타 그 길로 한단으로 옮겨갔으나, 적의 기습은 받지 않았다.
한편, 진희는 한군을 멋지게 격퇴시켜 버리고 나서 유무와 초초를 불러 놓고 호되게 꾸짖는다.

 

"오늘 싸움에서 그대들이 나를 도와줄 생각은 아니하고 도망을 쳐버린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이번만은 특별히 눈감아 주겠지만, 차후에 또다시 오늘과 같은 일이 있으면 엄중 처단할 것이니

재삼 명심하라."
"

차후에는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비마가 달려오더니,
"적은 지금 한단으로 이동해 가고 있는 중이옵니다."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모든 장수들은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이구 동성으로 진희에게 품한다.
"적이 지금 이동하고 있다면, 이 기회에 그들을 추격하여 철저하게 쳐부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기회야 말로 우리가 적을 전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장수들은 제각기 기습을 주장하고 나온다.
그러나 진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다.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어떤 군사를 막론하고, 무릇 부대가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철통같은 대비책을 세워 놓고 나서야 움직이는 법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섣불리 추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

이미 왕릉이 예상한 대로 진희는 병법에 정통하기 때문에 그런 추격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양군은 잠시 소강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