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이승과의 영원한 이별 장소<망향대>

오토산 2020. 12. 30. 15:12

금옥몽(속 금병매) <6>

*이승과의 영원한 이별 장소
<망향대>

이곳 망향대(望郷台)는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地藏菩萨)께서

이제 막 저승에 온 귀신들에게 자비를 베풀,

마지막으로 이승에서 살다, 온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신 성지(聖地)이니,

가엾은 중생들은 이 곳에서 두고 온 부모형제, 처자식을 마지막으로 지켜본 후,

허망한 이승의 덧없는 삶을 영원히 잊고 부디 피안의 극락세계로 이를 지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바로 이승과의 영원한 이별처였다.
서문경은 이미 죽은 귀신 신세지만 괜히 코 끝이 시려오고 벌써 눈시울이 축축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친구들도 고향 광경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다가,

그 광경이 사라지자 이내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한다.

 

허망한 이승의 세계를 대오 각성하고 피안의 극락세계에 이르라 했건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도리어 슬픔과 미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한다.

지장보살의 자비가 차라리 원망스럽고 무서운 지옥의 형벌이었다.

망망한 억겁 속 시공(时空)의 바다에서, 길을잃고 떠다니는 일엽편주...
봄이 가면 여름오고 가을가면 겨울인데, 하염없이 방랑하는 천애(天涯)의 나그네.
적멸(寂滅)의 보금자리에 누워, 빛과 함께 미소짓는 그날은 언제일런가?

그래도 보고 싶은 고향 광경 이기에 서문경도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니,

아스라히 보이던 삼라만상이 이내 확대되어 또렷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아득하게 깔려있는 연무속
희끄무레 나타나는 속세의 티끌.
아련한 성곽은 한폭의 수묵화,
밥짓는 연기는 한 획의 하얀 선(線),

꿈속의 환영(幻影) 인가, 거울 속의 허상인가?

 

대궐같은 서문가에 펄럭이는 하얀 조기(吊旗) ...
눈물짓는 조객(吊客) 앞에는
우뚝 꽂힌 망자(亡者)의 화상(画像) .
문장은 왜 이리 썰렁한가?
그 많던 처첩들은 왜 코빼기도 보이지않나?

마당에서는 월랑의 하녀인 소옥이 지전을 불사르고 있어

아까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손을 내밀어 보지만 이미 늦어 마음만 허전하다.
이윽고 월랑이 보였다.

만삭의 몸으로 머리에 흰 끈을 질끈 동여매고 아예 침대 위에 몸져 누워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저승가신 서방님, 부디 극락왕생 하옵소서..."

 

백발 염주 손에 쥐고 한없이 한없이 눈물짓는

그 모습이 서문경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여보 내가 나뿐 놈이요,

그래도 조강지처가 제일이구려."

 

이번에는 둘째 마누라 이교아(李娇兒)가 보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신없이 보따리를 싸고 있었다.

"아휴, 뭐 또 잊은 것 없나?

서방이라구 맨날 금련이년 쫓아다니기만 하더니 속시원히 잘 죽었지, 뭐!

역시 기생 생활이 더 좋았어 내가 원한다면 독수공방은 안하잖나,

마누라라고 앉혀 놓고는...

인제 돌아가면 한밑천 챙겨 내 맘대로 신나게 즐기며 살아야지,

야아 정말 날아갈 것 같아!"
지껄이는 꼬라지를 보니 다시 기생으로 돌아갈 모양이었다.

"저런 괘씸한 년!

내가 죽은지 몇일이나 되었다고

벌써 못베겨서 저런 행동을 해

역시 갈보년 피는 못속여..."

다음은 셋째 부인 맹옥루(孟玉楼)가 보였다.

서쪽은 하였으나 거울 앞에서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었다.

미소어린 입가에서 흥겨운 노래가락이 새어 나왔다.

"랄랄라 ~~흐흥 흥,
지가 나리 자재분이라는 분 정말 멋있게 생겼던데

조금전 조문시에 나한테 윙크한게 틀림 없어 나한테 마음이 있는거야,

코도 죽은 서방보다 더 크고 키도 훤칠한것이

방중술도 필시 뛰어날거야 어떻게든지 꼬셔 봐야지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 즐기며 살아야지

흐흐흑."

장자의 마누라가 남편의 무덤이 빨리 마르라고 부채질을 했다지만,

이건 아예 한 술 더떠 시체가 무덤에 들어가기도 전에 조문객과 바람필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천하의 바람둥이 서문경도 이광경을 보고 나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이어서 넷째 마누라 손설아(孙雪鱷娥)가 보인다.

상복을 옆에 벗어 놓은채 속살이 다 들여다 보이는

속적삼 차림에다 옷고름도 풀어놓고 옆에 있으면

향긋한 분내음이 가슴과 콧속으로 스며들것 같다.

옆 탁자에는 술과 안주가 정깔하게 차려져 있다.

"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아 보이는데 벌써 누구를 꼬셨나

아니면 옛적부터 바람피운 놈인가 정말 궁금해 지네,

서문경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나 하는 것 처럼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아니! 아니! 저놈은?"

손설아가 달려가 껴안고 입을 쩍쩍 맞추는 놈팽이는 다름아닌

송혜련의 남편 내왕(来旺)이 놈이 였다 .

이 년은 맹옥루 보다 더하잖아?

저 놈이 어딜 감히!
종놈 주제에 주인 집 마님과 바람을 피워저런 발칙한 놈,

자신이 내왕의 처 송혜련을 겁탈하여 목메달아 죽게 한 일은 까맣게 잊고

펄펄 뛰며 악다구리를 써 보지만 이승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두 년놈이 들를리가 없었다.

 

두 년놈의 행동으로 봐서는 상당히 오래전 부터 서문경이 몰래 해왔던 것이다.

방안은 점점 춘색이 무르익는다.
한참 흥분하여 길길이 뛰고 있으나 소용이 없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