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4>
*서문경은 첫 재판 전 송혜련과 묘원예를 대면하는데...
얼굴에 부딪치는 음슾한 바람.
차가운 안개마저 허공을 헤멘다.
어둠에 감싸인 음산한 자갈길.
피부를 찌르는 가시나무 덤불.
몽롱한 눈동자 초점마저 사라지고.....
형체없는 귀신의 다리건만,
한없이 무겁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전생을 후회하는 인귀들의 호곡소리는 하늘에 사무치고.
묵묵히 돌아서는 행렬
속에 흐르는 회한의 눈물,
황천길엔 인가도 드문드문.
흑수(黑水) 강가에는 귀신들만 우글데고 흐느끼는 소리만 들린다.
일월성신(日月星晨)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고
이곳 황천길은 밤낮이 따로없이 언제나 어두침침한 세계다.
늘 안개낀 초겨울의 음산하고 암울한 날씨였다.
희미하게 보이던 그림자도 다가서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번뜩 누우런 모래 바람이 잠시 짙은 안개를 거두어 간다.
쇠고랑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희미한 광경이 어른거린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귀들이 목에 칼을 두르고
발목에찬 쇠사슬을 질질 끌며 자신과 같이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 가고 있었다.
남정네도, 여인들도, 꼬부랑 할멈도, 연지바른 계집들도, 까까머리 땡중과 비구니도,
수녀와 신부도, 거들먹거리고 나다니던 관료와 무사들도 다함께 섞여 피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체 끌려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대하는 참혹한 정경에 서문경은
자신도 그 행렬의 일원이라는 사실마저 잃어버린 채 공포의 신음소리를 흘린다.
살아 생전에도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이 많은 인귀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살아 숨쉬는 인간 들이여!
환희의 작태를 멈추어라.
죽어 신음하는 망령들이여!
절망의 한숨을 거두어라.
오늘도 변함없는 밤낮처럼,
윤회(轮回)의 섭리는 진리다.
서문경의 인귀 일행은 밤낮없이 저승사자에 이끌려
몇날 몇일인지도 모르고 동북쪽을 향하여 하염없이 걸었다.
일행은 드디어 태산(泰山)일대의 동악신주(东岳神州)라는 아주 큰 고을에 도착하였다.
가마를 타고 가는 고관도 보이고, 말을타고 달리는 무사도 보였다.
귀파(鬼波)로 득실 거리는 저자거리에는 떡과 만두 물고기 채소등도 있다.
주막집 주모 귀신은 장나온 홀애비 귀신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하는 것도
인간 세상과의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귀신들이 목에 칼은 안찼으나
발에 쇠사슬을 질질 끌고 다니는 꼬락서니로 보아,
이상에서 지은 죄의 업보를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수 있겠는데 !"
서문경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소리를 들은 저승사자가
"흥!하며 콧방귀를 뀌고는, 여기에 인귀들은 그래도
이승에서 작은 죄를 지었지만, 네 놈들은 꿈도 꾸지 마라!" 하며
서문경의 마음을 그야말로 귀신같이 알아 차린다.
이윽고 일행은 저승세계의 형부(刑部)로 끌려갔다.
서문경도 마당 한가운데 함께 끓어 엎드려 가만히 상황을 살핀 후 잔머리를 굴려 본다.
저승세계에도 산동성, 하남성등 열세 개의 성이 있으며
동악제군이 다스리는 이곳 동악신주는 산동성의 성도(省都) 인것 같았다.
체제가 이승과 똑같으면 제도도 비슷할 터, 잠시 후 벌어질 재판의 대비책을 세우느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이위기를 어떻게 넘기나 빌어먹을!
채태사(蔡太师) 적운봉(翟云峰)나으리만 옆에 있었으면
문제될께 하나도 없이 해결될텐데 어찌하나?
"옳지, 생각났어!
옛날에 성남 영복사에 오십 냥 보시를 한 적이 있었지,
그래 우겨보는거야! 또 머 없나?
아! 전에 북극묘(北极庙)에 도장을 지어준 적도 있었지".....
그때였다.
형부의 대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글쎄, 안된다니까!"
수문장님?
"잠깐만 들어가게 해줘요?
심판전에 작살나게 손봐 줄 놈이 왔다구요?"
수문귀(守門鬼)들이 누군가와 싱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고개를 가만히 돌려 바라보고는 얼른 몸을 낮추어 버렸다.
송혜련(宋惠连)과 묘원예(苗员外)였으며
그 뒤로도 안면이 있는 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들어가게 해달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자기에게 해꼬지를 당했던 자들이다.
서문경은 걱정이 앞선다.
오는도중 주막에서 호되게 당했던 기억에 몸서리가 쳐진다.
제발 수문귀가 못들어 오게 잘 막아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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