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주방언과 휘종이 동서가 되다

오토산 2021. 1. 17. 16:46

금옥몽(속 금병매) <22>
주방언과 휘종이 기생 이사사의 구멍 동서가 되다.

개봉 진안방(镇安方) 밤 거리 그믐달마져 숨어버린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힌 밤이었다.
주방언은 거리 어귀에 고대광실처럼 화려하게 우뚝 솟은

누각 희춘루(煕春楼)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하루 이틀 와 본 곳이 아닌듯 하였다.
넓은 누각 안에는 밤의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 고객들을 유혹하던
기녀들의 풍악소리와 웃음의 교성도 이미 잠들어 있었다.
주방언의 마음은 한없이 급했다.
매일같이 마주보며 제잘거리던 그녀를 벌써 며칠이나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빨리 농염한 그녀의 육체를 탐하고 싶었다.

누각을 지난 그는 후원 마당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연인 이사사(李师师)의 침실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사사야!

나 미성(美成:주방언의 字)이니라."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그런데 아무 소리가 없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때는 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미리 문을 열어주며 방긋이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는데 말이다.

"사사, 안에 없느냐?
네 서방 미성 이니라!"

그제서야 불켜는 소리가 나고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문을 열고는 문가에 힘없이 서는데

방안의 희미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반사되어 흘린 눈물 자국이 뚜렷하게 보였다.
화들짝 놀란 미성은 사사를 데리고 들어가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눈물까지 흘렸어,

어떤 놈이 우리 예뿐 사사를 울렸단 말인가?
하면서 문득 사사는 기녀가 아닌가 못 사내들을 상대하여야 하니,

오늘 또 어떤 사내한테서 기분 잡치는 소리를 듣고 속이 상해 그러겠지 하면서, 어깨를 토닥이며

" 됐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어떤 경우라도 나는 너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니 조금도 나를 걱정하지 말아라."

오히려 위로가, 참고있던 사사의 눈물 보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엉엉 터뜨리는 울음은 기녀가 될 팔자를 타고난 운명에 대한 분노의 표현인지

더 구슬프게 울어 미성도 가만히 껴안고는 그가 우는데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한참 울고 있던 사사는 울음을 훌쩍거리며

"흑흑, 서방님

이 미천한 계집을 용서해 주세요. 엉엉 엉!..."

" 어허, 글쎄 됐다니 그러는 구나,

구태여 아무 말도 하지마라,

다 네 마음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제 눈물을 거두어라."
한참을 울고난 사사는 바짝 고개를 들더니 작심한 듯 또박또박 말을 한다.

" 아뇨! 그래도 전 말을 해야 겠어요,

그래야 제 마음이 후련 해 질테니 말이예요,

서방님이 듣기 싫으셔도 할 수 없어요,

어차피 알고 계셔야 할 일이니까요."
갑자기 돌변한 당찬 사사의 모습은 오히려 주방언의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 앉았다.

" 그래요, 전 못 남자들의 노리개 감에 불과해요.
개봉 최고의 기생이라고 머 별다르나요,

단지 남보다 화대나 더 받는것 밖에 더 있겠어요?
하지만 정말이지 흑흑흑...

서방님을 모시고 난 후로는 어떤 권문세가의 수청도 다 뿌리치며,

어떤 악담을 하드라도 참아왔어요.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는 오로지 한번 서방님을 위한

양가(良家)집 규수처럼 정조란걸 지키며 살고 싶었어요. 흑흑. "

주방언의 콧등이 찡해졌다.
자신을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일개 기생의 신분으로서 그런 야무진 각오까지 하고 있는지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젠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어요.

어제는 정말 내 자신이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목메어 죽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죽고나서도 사람들은 기생년이 웃긴다고 하겠지요,

그것 보다도 서방님이 염려되어 차마 실행을 못하였습니다. 흐흐흑..."

"도대체 그자가 누구인가? 내 반드시 후일 널 위해 복수해 주리라."

이제는 주방언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사사의 반응은 천만 뜻밖이었다.

"뭐라구요?
크, 큰 일날 말씀을... 쉬잇!"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주방언의 입을 막고서는 문을 열고 바깥을 살피고 마당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하고는,

문을 꼭 닫아 걸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주방언의 귀에다 입을 대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들릴듯 말듯하게 이야기를 했다.

" 어저께 찾아오신 분은...,

천만 뜻밖에도 황제(皇帝) 폐하,

바로 그분이 었어요."

"뭐! 뭐라구?
그, 그게 황상이라니!"

주방언은 정말 기절초풍 할 정도로 놀라며, 황제 폐하라니!
그럼 휘종 황제를 말하는 것인데,

황제가 궁궐 밖으로 나다니는 것만 해도 있어서는 안될 일인데,

더군다나 유곽(遊廓)을 찾아 기생과 동침을 하였다니

이게 도데체 상상이나 되는 일인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주방언은 마침내 수긍이 간다는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았어,

역대 어느 황제도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현재 황제 폐하께서는

언제나 조금도 거리낌 없이 실행 하시곤 하셨지,

아무리 그래도 미복(微服)을 하시고 야밤에 유객 노릇을 한다는건 너무하신 걸,

이제 간악(艮岳)에서 노시는 것도 흥미가 없어진 모양이로구나,

허 허허 그나 저나 장차 나라가 어찌될지 앞날이 걱정되는데 어찌 해야 될꼬..."
주방언은 깊은 수심에 잠겼다.

" 허참! 그럼 나는 황제와 어떤 관계가 되지?
이를테면 구멍 동서라,

허, 따지자면 내가 황제보다 형님이 되는 구만.
허참! 기가 막힐 일이로세."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실소를 하고 있다가,

문득 등골이 싸늘 해 짐을 느끼고는 사사를 앉고 있던 팔에 힘이 쭉 풀렸다.
장난이 아니라,

법대로 하면 황제가 손만 만진 여인이라도 평생 다른 남자와 가까이 해서는 안되거니와,

은총을 입은 여인을 껴안고 있다니, 구족을 멸할 대역죄를 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사는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에 대한 반발인지

이제 자기 정인을 보내고 나면 다시 볼 수 없다는 한탄의 심리인지,

정랑을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면서 아직도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채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살포시 감은 채 입술을 뽀족이 내밀며 정랑의 따뜻한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언은 사랑하는 여인의 무언의 절규가 느껴지자,

설령 당장 눈 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하여도 그녀의 요구를 거절 할 수 없어.
팔에 힘을 주면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게고 혀를 그녀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향기로운 내음으로 가득한 뜨거워진 여인의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촛불만 희미하게 드리워진 여인의 침실은 농염한 연인의 정열로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사사, 사사 안에 있느냐?
내 조(趙)서방 이니라!"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실로 천둥치는 소리 보다도 더 엄청나게 크게 들리었다.
조서방이라니, 바로 조길(趙佶) 현재 황상 휘종황제의 속명(俗名)이었다.

 

큰일 이었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한들 이보다 더 아찔할까!
두 연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일발의 순간,

주병언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눈앞이 캄캄해 그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쉬잇!
서방님 어서,

어서 저기로 숨으세요."

역시 남정네 보다는 여인네가 위기에 강한 모양이었다.
그 아찔한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본 그녀는

자신의 침상밑을 가르키며 주방언이 숨기를 재촉했다.
채통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주방언은 재빠르게 그곳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조금 후 문 열리는 소리가 "삐이걱" 하고 들렸다.
주방언은 침상 밑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살그머니 들추고 밖을 내다 본다.

"마마!

미처 폐하께서 왕림 하신줄 몰라 뵈옵고 미리 맞이 하지 못한 죄,

죽여 주시옵소서!"

이사사가 오른쪽 무릅을 꿇고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황제를 맞이한다.

"허허 그게 무슨 소리인고?
내, 사사를 놀라게 해 주려고 일부러 살짜기 들렸거늘.
어찌 너를 탓하겠느냐!
또, 우리 둘만이 있을때에는

제발 그놈의 골치아픈 황상이니 폐하니 하는 소리는 집어 치우라 하지 않았더냐?
아주 짜증나 죽겠구나!
우리 둘만 있을 때는 반드시 조서방이라 부르거라, 않겠느냐?"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

"허허, 그래도 또 그러는 구나!
그나저나 어서 일어나거라, 어디 한번 안아보자.
간밤에 너를 대하고 나서는 하루종일 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하였느니라."

들어 오다 보니 뎃돌에 남자 신발이 한켤래 있던데 누가 왔는가?
침상 밑에서 황상의 말을 듣고 주방언은 눈앞이 아득한것이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러자 재빨리 사사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얼치기 유객들 중에서 술에 취한 자들이 밤중 몰래 재 처소를 훔쳐보아

남정네가 있다는 것으로 속이기 위해 처소로 돌아오면 남정내 신발 한 켤래를 같이 놓아 둡니다,

개의치 말아 주시옵소서, 폐하!"

" 오 장하도다,

이젠 조서방이 넉넉하게 은전을 줄테니 나외에 어떤 유객도 받지 말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네이, 폐하"
또, 그놈의 폐하야, 다시 한번 대답해 보아라.

"네,

조서방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허, 그래그래, 하며

선비차림의 황제는 친히 두 손을 뻗어 무릎꿇고 앉아 있는 사사를 일으켜 새우고는

마치 진귀한 보물을 다루 듯 사사를 조심스레 껴안는 것이었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주방언의 눈에서는 쌍심지가 돋아나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당장에라도 쫓아나가 황제의 명상을 갈고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는 차라리 눈을 감고야 만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