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신선 노름으로 도끼자루 썩는줄 몰라

오토산 2021. 1. 16. 17:37

금옥몽(속 금병매) <21>
황제 휘종은 간악의 선계에서 신선 노름으로 도끼자루 썩는줄 몰랐다.

그날 후로 황제 휘종은 모든 정사(政事)를 채경에게 일임하고 만수산을 떠날 줄을 몰랐다.
서른 두 개나 되는 계곡을 돌아 다니며 육십 곳이나 되는 도사관의 선녀들과 어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끔씩 임령소를 불러서 세상 소식을 알아 보거나 할 뿐

채경을 불러 국사를 묻거나 하명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하니 나라꼴이 잘 될리가 없고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으며,

 

북쪽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오랑캐 금나라에 침략의 기회를 주게 되고 만다.

허나 휘종은 세상 일과는 담을 쌓고 황제라는 사실도 망각한체

옥황상제의 장자라는 착각 속에서 어떡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하게 되었다.
가을날 저녁이면 차 주전자로 다려낸 청향차(清香茶)를 마시며

교교한 달빛 속에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감상해 보기도 하고,

곤륜산 단연(端砚)에 먹을 갈아 산수화를 그리고 글씨를 써서 신하들에게 하사 하기도 하였다.

 

손수 조각칼을 들고 옥쇄를 새겨 보기도 하고,

바위틈에 돋아난 주초를 캐고 영지를 따서 손수 선약을 다려 보는둥 정말 신선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또한 그것도 무료할 때면 짚세기 신발에 용같이 생긴 지팡이를 짚고 유유자적하게 돌아 다녔다.
하루는 깊은 계곡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염집 아낙네가 부르는 노래

오곡(吳曲)이라는 <육조 시대의 자야(子夜)라는 여인이 불렀다> 사랑의 노래를 듣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쏟아지는 가을 달빛,
촛불을 끄니 여인의 비단치마 벗는 소리,
휘장속에 미소를 머금은 아리따운 미녀,
온몸에서 흩날리는 그윽한 난초의 내음."

흥이 도도해 지면 노래를 부른 그 여염집 아낙네를 찾아 월담도 했다.
이상하게도 낮에는 가끔 눈에 띄던 남정네들이 휘종이 월담해 들어가 보면

규방에서 홀로 수를 놓거나 방망이 질을 하는데 모두 절세 가인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야밤중에 규방을 침입한 괴한에 놀라기는 커녕 옥황상제의 아들임을 알고 있는 듯,

"옥청왕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고는 비단 금침을 깔고 서는 자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고 신기하였으나, 몇년이 흐르고 나자 다시 심드렁하여,

휘종은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나섰다.

휘종은 새로운 가사로 쓰여진 자극적인 사랑의 노래를 듣고 싶어 졌다.
그래서 당시의 유명한 작가인 주방언(周邦彦)을 개봉으로 불러올려

음률을 관장하는 대성악부(大晟乐府)를 총괄하게 하였다.
이래서 송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남녀 애정에 대한 글들이 탄생 하게 되었다.

<육추(六醜), 장미꽃 진 후>
헛되이 허공에 던져버린 광음이여!
하염없이 안타까운 나그네 심정.
"봄날이여, 잠시만 더 머물다 가거라!"
속절없이 흔적도 없이 날개달려 사라져 간 야속한 봄날.

장미꽃은 어디에 숨었는가?
간밤 천둥소리에 죽어간 초(楚)나라 미녀.
붉은 비녀 떨어진 곳마다 숨어있는 그 향기.
복사꽃 샛길 사이로 버들잎 그늘 너머로
아련히 흩어져 간다.

다정(多情)은 뉘를 그리는 마음인가?
님 가신 꽃밭 향해 창문을 여노라면.
날아드는 저 나비와 벌은 행여나

님이 보낸 사랑의 사자(使者)일까?

쓸쓸한 정적이 묻혀버린 뒷 정원에는,
까닥없이 짙어지는 녹음만 가득하고.
꽃을 잃은 장미나무 앙상한 가지 밑에서,
입가에 새어 나온 가녀린 탄식의 소리...

스쳐 지나가는 옷자락 부여 안고
이별의 정 호소하는 장미나무 가시(针)는,
내 가슴 찔러 오는 사랑의 단도(短刀)인가!

문득, 색바래 떨어진 그대의 꽃잎 하나 땅에서 주워 머리에 꽂아 본다.
그 옛날, 정랑이 교태로운 여인의 품에 안겨 화사함을 뽐내던 그대의 자태만 하련만은...

비록 색바랜 떨어진 꽃잎 일지라도, 흐르는 저 강물에 띄우지는 않으리,
누구인가 상사(相思)의 마음을 적어 놓으면,
한 가닥 인연의 줄마져 끊어 질까봐...
- 주방언(周邦彦) -

중국의 고전 시와 노래가 북송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문학의 씨를 뿌리는데.
그것이 바로 시(詩)에다가 음악의 가락을 붙인 사(詞)이며,

그 시를 완전한 형태로 갖추어 놓은 이가 청진거사(清真居士) 주방언(周邦彦) 이었다.

문자로 쓰여진 가사에 곡을 붙여 구성지고 간드러지게 노래로 부르는 부류는 기녀들의 몫이 되었다.
북송의 대표 문학 형태로 나라가 부유해지자 사(詞)가 인기를 끌고

전국에는 기방이 수도없이 생겨나고 남여간에 애정행각등으로 사회가 문란 해지자

오랑캐가 쳐 들어와 나라 북쪽 반을 댓가로 주고서야 나라를 되 찾았다

그래서 북송과 남송으로 송나라는 명맥을 유지하다가 원나라에 의해 멸망 되고 만다.
그 당시의 문란하고 음란했던 사회상을 다룬 작품이 금병매 수호지 현재 연재 중인 속 금병매(金屋夢)가 있다.

청진거사 주방언은 늠름한 기상과 훤칠한 외모에 글도 잘 할뿐 아니라 음률에도 능통하여,

대성악부라는 기관의 수장 까지 되었으니 천하 여인들의 연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천하의 얼굴 반반한 기녀들이라면 청진거사 얼굴 대면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니

가희 그의 인기를 짐작 할 수 있다.

 

청진거사 주방언이 개봉 시내에 나타 났다는 소문만 나면,

기루에는 오색 홍등을 밝혀놓고 기루(妓楼) 안에 내노라하는 계집이라면

화장을 곱게 하고 이층 누에 앉아 어떻게든 주방언의 환심을 사 볼까 하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그 당시 개봉 장안에는 문장 잘 하고 가무에 뛰어난 기녀들로

서파석(徐婆惜), 봉의노(封宜奴) 손삼사(孙三四)등 명기(名妓)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그 중에서도 이사사(李师师)라는 기녀가 가장 돋보였다고 한다.
주방언과 이사사는 한번 만나자 마자 첯눈에 서로에게 반하여

사랑과 낭만의 꽃을 피워 애정의 단맛은 개봉시내에 염문을 뿌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연인이 있었으니...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