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도군황제와 흠종 부자는 평민으로 강등되어

오토산 2021. 2. 27. 17:42

금옥몽(속 금병매) <61>
도군황제와 흠종 부자는 금태종으로부터 평민으로 강등되어...

이 노래는 원(元) 나라 마치원(马致远) 이

"한궁추(汉宫秋)"라는 연극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던 기나긴 노래이다.

도군황제 조길은 노래 소리를 들으며 숙연한 감정에 휩싸였다가,

노래가 끝나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래를 부르는 여인은 애첩 정첩여의 목소리가 틀림 없었다.
옥희궁(玉煕宫)에서 맞은 정첩여가 이런 절개 곧은 노래를 익히고 있었다는 사실에

휘종은 더 사랑 해 줄걸 하는 후회를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회한의 눈물과 그녀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장담 할 수 없었다.

"하핫!

그년 그런 궁상 맞은노래를 왜 불러,

이런 즐거운 시간에, 어여쁜 년이 눈물 까지 글썽이니

더 매력이 있구나 어디 이리 와 보거라 한번 안아 보자."

점한의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군막에 있던 장수들과 여인들이 눈치 빠르게 자리를 피해준다.

" 군막 안에서는 여인의 앙탈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부욱 하는 옷 찌져 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앙탈 소리는 사라지고

점한의 거센 숨소리와 갸날픈 여인의 환희의 비음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조길은 옛 자신의 애첩이 적장의 노리개가 되어 있다는 것에

자신의 비애를 느끼지만 후회 한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서야 주방언이 자기가 사랑하던 이사사를 자신이 유린 할 때 느꼈을

비참함과 괴로움을 비로서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먼동이 터오자 호각 소리가 병영의 정적을 깨자.
모든 군졸들이 몰려나와 대오도 정연하게 아침 검열은 받은 후 각자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움직인다.
식사가 준비 되는 도중 군막이 철거되고 다시 먼 길 떠날 준비를 마친다.
지난밤에는 여인 복장으로 장수들 연회에 합석했던

비빈과 궁녀들도 오랑캐의 복장으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금나라 수도 연경으로 향해 길을 떠나는 정첩여와 조길이 우연히 눈길이 마주치자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곽약사는 휘황 찬란한 은빛 갑옷을 입고 하려하게 수가 놓인 말 안장에 걸터앉아 갔다.

그가 조길과 얼굴이 마주치자 냉소를 띄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어쩌면 오랑캐에 귀순한 곽약사가 고개를 돌리거나 미안해야 함이 마땅한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콧방귀까지 뀌는 것은, 그렇게 진언(真言)을 하였건만

어리석은 조길은 채경과 동관의 말만 듣다가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오랑캐나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저런 형편없는 사람을

황제랍시고 군주로 모셨었나 하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조길은 어떤 굴욕과 냉소에도 이젠 할 말이 없었다.

귀경 행렬은 한달이 지나서야 어렵사리 연경(燕京)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군황제 조길과 흠종 조환은 궁궐 입구에서 부터 무릅을 끓고

기어 들어가 금나라 태종 오걸매에게 백 번을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잘못을 빌었다.

" 너희 같이 어리석은 것들이 어찌 우리 금나라에 대항하고

황제의 이름을 더렵혔더란 말이냐!
여바라!
이제 이들은 황제 에서 평민의 신분으로 강등하고,

그 어리석음을 알리기 위해 조길에게는 혼덕공(昏德公) ,

조환에게는 중혼후(重昏侯)의 칭호를 하사 하니, 앞으로는 그리들 부르 도록 하라!" 하고

명한다.

 

그리고는 혼덕공 조길은 만주의 오국성(五国城)에 가서 살라는 명을 내렸다.
조길은 연경에서 쉴 틈도 없이 다시 삼천리나 떨어진 조그만 성에 가서 살라고 하니,

삐그덕 거리는 마차에 몸을 의지하고 몇 날을 갔는지도 모른채

길림성의 황량한 벌판 초라한 초가집에서 쉬는 도중 목적지 까지 가지도 못하고

한 많은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그의 아들 중혼후 조환은 연경의 변두리에 조그만 집을 배정받아 살던중,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 와 있던 옛 요(辽)나라 황제 야율연희(耶律延禧)와 둘이서 겨루는

마구(马毬) 시합에 강제로 끌려 나가,

한번도 말을 타본 적이 없는 나약한 조환은 막 시작한 시합에서 겨루어 보지도 못하고

말에서 낙마 말 발꿉에 채여 죽고 말았다.

한편, 오랑캐가 꼭두각시로 송나라 황제로 장방창(张邦昌)을 내세웠다.
포로로 금나라라로 끌려가는 휘종과 흠종을 백성들은

잘나나 못나나 내 나라 황제랍시고 장방창과 함께

남훈문(南薰门) 밖까지 따라나가 눈물의 전송을 하였다.
궁궐로 돌아온 장방창은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자신의 황제 등극에 대한 일을 상의 하였다.

황족이 다 포로로 잡혀 갔으나 오랑캐가 개봉을 향해 오자 개봉 사수를 위해

근왕병 소집 명을 받고 갔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던,

아홉번째 왕자 조구(趙构)가 하남땅에서 등극을 했다는 소식도 있는 데다가

아무리 오랑캐가 황제로 옹립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송나라라는 국호가 있는데

두 황제를 모실 수 없다고 문무백관 모두가 반대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잘못 했다가 만약 조구 황제가 돌아오는 날이면 역적죄로

구족을 멸할 수도 있는 지라 군신들은 모두 칩거하고 조회에도 참석치 않았다.

삼백근이 넘는 철추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우림군(羽林军)의 소졸 오혁 장사가

장방창이 황제 등극을 꿈꾼다는 소식을 듣고 이백여 장사들을 모아 궁궐을 쳐

장방창을 주살 하려 하려 준비하던 중 금의위관(锦衣卫官) 범경(范琼)에 발각되어

거사는 성사 되지 않았으나, 장방창은 마음은 좌불 안석이었다.

장방창은 범경에게 숨어 있는 궁중 대신들을 찾아내어

조회(朝会)에 참여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범경은 신바람이 나서 장안 구석 구석에 병졸들을 풀어

이잡듯이 뒤져 군신들을 조회에 강제로 참석케 하였다.
장방창은 하루라도 빨리 황제 자리에 오르고 싶어 조회가 열리자

스스로 찬란한 금관을 쓰고 어좌(御座)에 앉기 위하여 계단를 올라가다 발을 삐끗하여
"아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장방창은 계단 아래로 서너 바퀴나 굴러

떨어지는 망신을 당하여 몇날 동안 아품에 궁정 출입도 못했다.
쓰고 있던 왕관도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런일이 있고난 후 부터는 감히 어좌에 오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최고 대신으로서 업무를 처리 하는데 그쳤다.
그렇다고 황제등극을 포기한것은 아니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철종(哲宗)때 총비(宠妃) 유첩여(刘睫抒)와 내통한 간신 장돈(章惇)의 모함으로 폐위되어

냉궁(冷宫)에 참으로 억울하게 이십 여년이나 갇혀지내는 휘종의 형 인 철종

조후(趙煦)의 정비 였던 맹황후(孟皇后)가 남아 있었다.
이런일로 냉궁에 갇혀있는 관계로 맹황후는 포로 대상에서 황제 가족목록에서 빠져 전화위복이 되었다.

충신 여호문(吕好问)은 냉궁에 갇혀 있는 맹황후가 생각나, 장방창에게 목숨을 걸고,

맹황후로 하여금 수렴청정(垂帘听政)케 하여 정국을 안정 시키라는 진언(真言)을 한다.

"장 대감!
황제의 자리는 인위적으로 쟁취해서는 안되는 일이 옵니다,

하늘의 도움이 없으면 반드시 후일에 그 댓가를 치르는 법입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는 오랑캐에게 모욕을 당한 태상황 폐하를 보고서도 깨닫지 못하시오?

 

오랑캐군이 주둔하고 있을때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

지금은 오랑캐가 철수하고, 강남땅에서 아홉번째 왕자께서 등극하셨단 소식이 있는데,

그 소식을 듣고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십니까?
만약, 대감이 등극을 고집한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대감을 응징 하려 할 것이오,

대감은 사람을 보내 왕자 마마를 빠른 시일내에 모셔오는게 순리라 생각되니,

심사 숙고 해 주십시오?"

 

여호문의 당당한 목소리에 장방창은 황제에 등극 하지 못함에

아쉬움은 남지만 대신들과 백성의 소리를 무시할 만큼 배짱이 없는 관계로

맹황후의 수렴청정을 하도록 지시하자, 문무 백관들과 백성들이 이 소식에 환호를 보냈다.

도군 황제가 포로로 연경에 압송되는 도중 중추가절 밤에 잠이오지 않아,

장막을 나왔다가, 적장 군막에서 자신의 애첩 정첩여가

점한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듣고 울분을 토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날, 장방창은 새로운 황제를 맞이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황제 기분을 내어 보고 싶었다.

 

장방창은 옥희궁(玉煕宫)에 가서 약주를 한잔 하며

황제 심정으로 달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에 연회 준비 명을 내렸다.
계속된 전란으로 어주사(御厨司)에도 변변한 음식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 비위 맞추기에 이골이 난 태감은

즉시 연회를 준비 시키며, 음식과 어떤 술을 준비 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연회에 빠질 수 없는 여인들을 누구로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앞날을 모르는 장창방의 황제같은 권세를 무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황제의 예우도 할 수 없어 난감 한 것이다.
전란 중에도 각자 간악의 깊은 동굴이라든지,

우물물 지하 통로등에서 은신하며 몸을 피했던 궁녀들이

아직도 궁중에는 천여명이나 남아 있지만 아무나 술 시중을 들게 할 수는 없었다.
태감은 생각 끝에 화국부인(华国夫人) 이씨(李氏)를 택하여 간청 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부인은 미녀의 고장 항주(杭州)에서 간택되어 궁중에 들어온 절세의 미녀로써,

서화에도 능통하고 옥 퉁소와 고쟁을 잘 다루어 간악의 도관(道观)을 맡기도 했으며,

도군황제의 총애를 듬 뿍 받았던 여인이나 전란으로 도군황제에게서 멀어진 여인이었다.

태감은 즉시 간악(艮岳)으로 이부인을 찾아갔다.
한참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로 늙어가야 하는 신세에 야속하기만 했던 이부인은

이젠 오랑캐땅으로 끌려간 도군 황제는 살아 온다는 보장도 없고,

돌아 온다 한들 자기를 총애해 준다는 확신도 없으니 오로지 현실적인 실리를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잘만 된다면 옛 영화를 다시 가질 수 있는데 거절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화국부인이 오히려 태감에게 값진 패물로 사의(谢意)까지 표했다.

모든 연회 준비를 마친 태감은 장방창을 옥희궁으로 모시면서,

황제 기분을 낼 수 있게 황제만이 타고 다니는

여덟 명의 금의교위(锦衣校卫)가 받쳐든 팔선소교(八仙小轿)에 올라 연회장으로 안내 되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