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정옥경은 적원외의 부탁을 받고

오토산 2021. 3. 1. 17:22

금옥몽(속 금병매) <63>
정옥경은 적원외의 부탁을 받고 이사사를 찾아가는데...

쾌락의 근원은, 죽음을 재촉하는 저승사자의 탈명혼(夺命魂).
불로장생의 길은, 인간 스스로 찾아가는 것.
이팔청춘, 가인의 뽀오얀 육체.
남 모르게 스며드는 죽음의 그림자.

기생 이사사의 수양딸 이은병(원상저)의 화용월태(花容月态)에 넋을 잃어버린 적원외는

은병의 머리를 올려주려면 먼저 정옥경을 통해보라는 기생 무운의 충고를 듣고

지난 편에서 적원외는 정옥경을 찾아 갔었다.

 

정옥경은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을 기생집과 계집질, 투전판에 다 탕진하고,

허구헌날 방구둘만 벗을 삼아 놀고 있으니

허우대 멀쩡하고 이십대의 혈기왕성한 놈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돈한푼 없이 저자거리를 활보해 봤자,

불러주는이 없다고 싸구려 선술집에 가는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무료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런 판국에 돈 많은 호구 적원외가 제발로 찾아와 절세미녀 머리 얹는 이야기를 꺼내니,

내 돈 한푼 없이도 한 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흥미를 느낀 정옥경은 귀를 곤두 세우고는 적원외의 하소연을 꼼꼼히 들어 본다.
내 몰골로는 눈 높은 이사사에 접근도 할 수 없으니,

"자네가 이사사에게 잘 이야기 하여,

은병의 머리만 얹을 수 있다면 내 반드시 자네에게 섭섭하지 않게 할 것이네?" 하며

울상이 되어 통 사정을 하며 메달린다.
그러나 옥경은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으며 진중하게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야?

대충 해서도 될 일이 아니구 머리를 잘 짜내어 기발한 계획이 없이는 성공도 못하고 돈만 날릴 일이네"

옥경은 속으로는 잘만 하면 쉽게 풀릴것도 같은데 그렇게 되면

적원외에게 자기의 체면이 서지 않으니 가능한한 주가를 최고조로 끌어 올려야 겠다고 생각하여

불가능 한 일로 만들어 적원외의 애를 태웠다.

"보통 기생년들 대하듯이 하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고,

형님 말마따나 이사사란 기생이 은병이 딸이구 어쩌구 하며

도군황제를 팔아 떠들어 대는것은 결국은 한 밑천 단단히 우려내자는 수작 인데,

그렇다면!..." 하고 옥경은 말끝을 흐린다.

속이타는 적원외는
"자네 생각도 그렇게 생각되지, 내 머리로는 방법이 없어 자네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 온것 아닌가?

잘못되어 돈만 왕창 쳐넣고 재미도 못보게 된다면 나만 병신되는거 아닌가, 안그려.
어디가셔 하소연 할 데도 없고..."

"그렇게 될 공산도 크지,

아무리 예쁘고 싱싱한 꽃이라도 꽃한송이 꺽을라구 몇 백냥의 거금을 뿌리겠단 말이요?
잘못하면 하룻밤이 뭐요?

이제 막 꺽고 재미좀 볼려고 하는데,

인제 다 끝났으니 나가라고 한다면 하룻밤도 못채우고 쫓겨나는 일은

기생집에서는 다반사로 일어 나는걸, 형님도 많이 봐 왔자누 안 그래요?"

"아휴, 글쎄 말일세.

그러니 어쩌면 좋은가?
무슨 묘수를 생각좀 해보게나,

속이 타 죽겠네?"

 

한참 뜸을 드리며 적원외의 애간장을 태워 놓고는
"내 특별히 형님 한테만 알려드립니다,

내 하란 대로만 하세요, 아시겠죠?"

"아! 그래?
좋은 묘수가 있단 말이지?

자네 하라는 데로 할테니 걱정 말고 말해 보시게, 잘만 되면 내 두둑이 챙겨 주겠네."

"아, 그러니까

아예 천냥쯤 두둑히 줘버리는 겁니다."

"뭐! 머라고?
천냥을 한꺼번에?
그러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제 얘길 끝까지 들어 보세요,

그러면서 아예 혼인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어흠?

혼인을 한다?..."

"혼인을 하는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요.
한달만 계약해도 천냥이 더 들 수도 있는데,

아주 혼인을 해서 내 맘대로 혼자서만 재미를 보는거죠.
길게 보면 그게 훨씬 싼거죠."

적원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의아해 한다.
정옥경은 적원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한다.

"그리구요,

형님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제일 아끼는 수양딸이라고 소문내 놓고 있는 천하 명기 이사사가

설마 시집 보낸다면서 혼수 없이 맨손으로야 보내겠어요?
아마도 혼수 예물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삼사 백 냥은 안되겠어요.
그럼 형님은 육칠 백냥 밖에 안 들이고 은병을 찾이하는 셈이니,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은데, 형님 생각은 어떠세요?"

적원외는 그제서야 함박 웃음을 웃으니 못난 곰보 얼굴이 더 일그러져 보인다.
적원외는 옥경의 두손을 잡으며 감격하여 말한다.

"관연 자네는 공명에 못지 않는 재주 꾼이야,

그래 언제가서 중매를 서 줄 것인가?"

" 어떻게 해야하나?
빈손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거창한 선물을 가져 가기도 그렇고..."

옥경은 머리를 조아리고 생각을 하더니

돌연 고개를 들고는 무릅을 딱 치면서 말한다.

"맞아!

그러고 보니 내일 모래가 이사사의 생일날 아냐?
생일 축하 한다는 핑게로 만나면 되겠네요.
형님은 비싼것 보다는 귀한 선물을 준비해 주세요.

제가 이 세치 혓바닥으로 꼼짝 못하게 하여놓을 테니 형님은 구경만 하고 계세요.
하하하 "

이사사의 생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돈푼께나 있고

권력의 끄나풀을 잡아보고 싶은 개봉의 한량들 관심사였다.
사사의 생일 축하를 핑게로 그와 만나 금나라 올술왕자나 곽약사 장군과 같은 실력자들과

연결 고리 역할도 부탁하고 천하의 절세가인과 차 한잔의 담소를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정월 십삼 일.
이사사의 생일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개봉성 밖에 자리한 청루(青楼)에는

사사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는 사람과 선물 행렬이 줄을 이었다.
옛날부터 내왕이 있던 고관대작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내의 돈 많은 한량이나 신임 권세가들은 새로운 연결 고리를 가져 보려고 오는이도 있고

정옥경이 같은 한량들은 청루의 예뿐 기생들과 놀아 보기 위해 찾아 오는 이도 있었다.
청루에는 하루종일 두 시동이 예첩(礼帖)을 적으며 안내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사사를 만나고 돌아간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사사는 일단 기루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만나주지 않는다.
몸이 불편해 오래도록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마음이 동하는 사람에게는 혼자서 기다리며 인내심을 가졌나를 시험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몰래 지켜 볼 수 있는 서재로 안내를 하여 직접 눈으로

됨됨이와 모습을 확인하고는 만나 주었다.
일반 기루는 찾아 주기만 하면 기녀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갖은 아양을 다 떨어 유객을 홀리지만 청루에 처음온 한량들은

대부분 홀대하는 듯한 통과 의례에 스스로 포기하고 가벼렸다.

 

그러나 청루는 신선한 느낌도 있지만 참고 견디어 이사사와 차 한잔이라도 나눈 한량은

단번에 개봉에서 화류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하니 개봉의 모든 한량들이 기를 쓰고 이사사를 만나기에 목메이는 것이었다.

정옥경은 오후 느즈막히 나서 청루를 찾아 갈 생각이었다.
그때쯤이면 청루를 기웃 거리던 한량들도 대부분 돌아 갔을 것이라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정옥경은 일단 옷차림에 신경을 썻다, 첫 인상이 좋아야 다음 모습도 좋아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선 화려 하지는 않더라도 조금 튀는 듯한 복장으로,

검은 윤기가 흐르는 구름 무늬의 비단 바지와 마고자에,

분홍색 꽃무늬가 수놓인 연 노랑색 조끼를 입었다.
양말 색도 신경을 써서 흰 비단 양말에 주홍색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고풍스러운 옥패가 박혀있는 망사로 된 두건을 쓰기로 했다.
손에는 원앙 한 쌍이 수놓아진 길다란 수건을 들었다.

정옥경은 집을 나서기에 앞서 적원외가 사사에게 줄 선물로 갔다 놓은 물건 중에서

은병을 만나면 줄 요량으로 옷 소매속에 감귤과 향로 하나씩을 챙겼다.
일반 감귤이 아니라 대불수감(大佛手柑))이란 강남산(江南产)으로 아주 어렵게 구한 귀한 것이다.
보라색 구리 향료는 수(寿)자가 새겨져 있는데 어저께 저녁부터 향을 넣고 불을 피워서

아직도 은은한 향내가 풍기고 있었다.

청루에 도착 해보니 축하객도 모두 돌아갔는지 조용했다.
제대로 시간을 맞추어 온 듯 했다.
커다란 대문 앞에 선 정옥경은 크게 기침을 한번 하고는,

옷 소매를 힘차게 떨쳐 위엄있는 자세를 잡은 후에 큰 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한참이 지나서야 나이어린 여자 아이가 쪼르르 나와서는

"어서오시와요,

뉘신데 누구를 찾으시나요?"

나이어린 시녀 아이 같은데 일반 기방과는 다르게 말하는 법이 제법 세련되어 보였다.
어린 여자아이는 옥경을 객청(客厅)으로 안내 하여 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안쪽으로 사라졌다.

넓직한 객청에는 값비싼 향남목으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두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기묘하게 구부러진 철리목(铁梨木)이 옆으로 누운듯이 장식되어 있는데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어, 보는이에게 자연의 신비로움을 자랑하는 듯 하였다.
한참이 지났으나 아무 기척도 없고 하여 가만히 앉아 있자니 너무 무료하여

이곳 저곳을기웃 거리다 자연목 위에 올려놓은 화병과 고정(古鼎)을 발견 하였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제 막 피어나는 매화를 꽂아 놓았는데

대홍산차화(大红山茶花)라 불리는 커다란 보석이 박힌 한나라 시대의 유명한 꽃병이었다.

 

고정에서는 은은하게 향기로운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화병 보다 더 오래된 주나라때 만들어진 물건 같았다.
옥경은 속으로 이사사의 골동품 안목에 놀라며 천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데
어떻게 구했을까 하고 궁금해 하며 자리에 앉아 이사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