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오랑캐에 끌려가는 도군황제는 울적하고

오토산 2021. 2. 26. 17:49

금옥몽(속 금병매) <60>
오랑캐에 끌려가는 도군황제는 울적하고 답답함에 울분을 삼키지만...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휘엉청 밝은달,
세월은 지난 일을 얼마나 기억해 줄까?
지난밤, 초라한 누각 찾은 동녘바람, 하지만, 밝은 달빛 아래,
나는 차마 고국 향해 고개 돌리지 못하네.

정원의 옥섬돌 그 난간 아직도 여전 하련만, 홍안(红颜)은 가버렸네.
슬픔은, 이제 또 몇번이나 찾아올까?
봄날의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듯이...
-남당(南唐) 이후주(李后主)

<우미인(虞美人)>-

이시는 송(宋)나라 태조 조광윤(赵匡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북쪽에 끌려와 포로 생활을 했던

남단(南唐)의 마지막 임금 이후주(李后主)이욱(李煜)이 피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이다.
그로부터 이백 년이 지난 뒤에 조광윤의 후손인 도군황제(휘종) 조길은,

선조가 멸망 시켰던 이후주의 전철을 밟아, 금나라로 끌려가 오랑캐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돌고 도는 세상사는, 되로 주면 말로 받는다는 말과 같이,

먼 옛날 조상이 뿌린씨가 그 후손 조길에 가서 응보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의 우연이라기 보다는 기막힌 인과 응보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중추가절의 밤이다.
휘엉청 밝은 달빛이 수많은 오랑캐의 군막 사이를 비취주고 있다.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밤하늘에 퍼져 나간다.
도군황제는 마음이 심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포로 압송관 오랑캐 장수 치서골녹도(淄西骨碌道)는 흠종의 황후인 주씨를 가마위로 불러들여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겁탈을 했으나 흠종 조환은 아무말도 못하자,

정태후가 항의하다 돌아온 것은 무수한 매질 뿐이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울화가 치민 도군황제는 곽약사가 가져다 놓은 술과 안주를 찾아

항아리째 한 모금을 마시고 육포를 한입 뜻었다가, 벹어 버렸다.
술은 삭아서 식초가 되어 있었고, 육포는 고린내가 풀풀났다.

 

술도 없고, 잠은 오지않고, 도군황제 조길은 답답함에 장막을 나와

혹시 도망칠 수는 없나 하고 살펴본다.
자기의 장막은 적장 점한의 바로옆 군막과 가까웠으며 군막의 제일 중앙으로

겹겹이 보초를 서고 순찰을 돌고 있었으며,
중간 중간 목책이 쳐져 있고, 목책 바깥쪽으로도 군막이 쳐져있어 물샐틈도 없어 보였다.
연경을 향해 개봉을 떠난지도 한달이 지났다.

 

황랑한 사막과 산속을 지나니 감시는 조금 소홀 해졌으나 탈출을 한다 해도 몸 숨길 곳이 없었다.
중원(中原)을 벗어난 오랑캐 들은 긴장이 풀린 듯, 갑옷도 벗어 놓은채 매일밤 신나게 파티를 벌인다.
여기저기서 악기 반주에 마추어 노랫가락과 계집들의 교성이 섞여 군대 병영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길은 몇 달전까지만 해도 연복궁과 간악에서

선녀같은 궁녀들과의 희희낙낙하던 때를 상기하며 한숨을 쉬어낸다.
눈을 지긋이 감자, 자신도 모르게 시 한수가 튀어나온다.

남녘 땅이여,
고개 돌려 꿈 속에서 바라본다.
가랑비에 잡초덮힌 궁궐은 얼마나 차가울까.
옥피리의 만수산 누각, 그 난간에 기대서지 말 것을...

마음 아리네,

도성 밖에 흘러간 강물, 언제 다시 돌아올까?

빙설(氷雪) 뒤덮힌 골짜기 사나운 말도 추위에 쓰러지고,
기러기떼 뒤덮힌 북녘 하늘 놀란 새 한 마리, 울음 멈춘다.

변방의 차가운 겨울 밤, 변방의 기나긴 겨울 밤.
환락의 세월은 어디로 갔는가?

하며 시를 읊조리며 장막 주위를 걸어본다.
옆에는 달빛에 젖은 그림자만 처량하게 따라온다.

 

여기 저기서 피곤에 찌든 코고는 소리만 요란한데,

은빛 초롱이 걸려 있는 붉은 주단 군막에선 적장 점한의 목소리로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애절한 비파소리에 맞추어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여인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도군황제는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다.

노래는 전한(前汉)시대 오랑캐 왕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간

너무나 아름다워 그러기가 넋을 놓고 보다가 날개짓을 멈추어 땅에 떨어졌다는 절세의

미녀 왕소군(王昭君)이 즐겨 불렀다던 노래였다.

<말고삐 멈추고>
말고삐 멈추고 서성이네, 바닷가 모래사장 달빛마져 괴로운데.
고향하늘 바라보니 안문관(雁门关)넘어가는 기러기의 외로운 울음소리,
강가를 서성이는 차가운 혼령,
수만리 떨어진 부모님 무덤에 이별을 고하노라. 호각소리 끊어지니 떠나가는 사람.

<봄 꿈에 취하여>
영롱한 자색 구슬 빼앗은 오랑캐, 내일이면 더렵혀질 파아란 산호.
차라리 푸른 바다에 던져주면 좋으련만, 오동나무에 내리는 어두운 밤비.

<전각 앞의 탄식>
양반이면 무얼하고, 재상이면 무얼하나?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한 가소로운 존재들아,
나약한 군주마저 끌려 가버린 이런 와중에,
누구에게 하소연 할까?

믿을 곳이라고,
오직 꽃처럼 붉은 여인의 몸뚱이 하나.

<기러기 떨어지고>
화살이 나른다 북소리 울린다.
사냥개 컹컹컹, 소리개 높이 뜨니
떨어지는 기러기들. 산처럼 쌓인 장끼,
까투리의 주검들. 아득히 넓은 들판에
토끼와 노루마져 씨가 마른다.

<여기가 어디일까>
늑대털 담비털 표범가죽 옷두른 험상궂은 남정네들,
여우털 오소리털 족제비 털모자 쓴 처음보는 여인네들.
갑옷과 창칼들은 빼곡이 쌓여있고,
낯설은 깃발들은 어지러이 휘날리고,
귓가에는 알지못할 언어들만 들리는데.
아! 여기가 어디인가?
악몽은 이제 그만 깨일 때도 되었건만.

<기러기 편지>
구름 위로 날아가는 디러기의 행렬들은,
그림자 달빛받아 남포(南浦)에 어린다.
기러기 형제들아, 참담한 나의 편지를
편히계신 님에게 전해 주려무나.

<비파타며 노래하며>
비스듬히 비파 놓고 줄 뜯으며 노래한다.
후드득, 깨어진 옥구슬 분수처럼 솟아나고,
코르릉, 쏟아지는 폭포수 북풍에 울린다.

성곽 밖에서 흐느끼는 과부, 강풍에 흩날리는 기러기 무리,
달빛에 하얗게 우는 새, 이별한 학의 원망 어린 한탄,
어미 잃은 사슴의 구슬픈 노래,
말타고 떠나가는 우미인의 낭자한 피 눈물...
비스듬히 비파 놓고 줄 뜯으며 노래한다.

<변방의 정원에는>
변방의 정원에는 어찌 마른 갈대 뿐이더냐,
고국을 등지고서 어찌 사막에 살라더냐.
소군(昭君)의 마음속에 쌓이는 원망,
선우씨(单干氏) 사냥갈때 숨어서 한숨쉬네.

<푸른 잡초가 되어>
님계신 황룡부(黄龙府)로 기러기에 붙인 편지.
힘없이 중도길 백낭도(白狼渡) 떨어진다.
이럴 바에야
물고기 밥이 됐던 굴원(屈原)을 따르련다.
소상강(潇湘江)에 몸을 던진 중원 여인의 절개,
상비(湘妃)는 살아나서 대나무의 피가되어 흘렀지만,
아! 나는, 푸른 잡초가 되어 다시 태어나리라...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