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거경대학에서 청송 찬경루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1. 5. 22. 06:42

거경대학에서 청송 찬경루를 다녀와서

 

시골식당에서 버섯전골로 맛있는 식사를 마친후

객사와 찬경루, 청송심씨사적비, 부사송덕비가 있고 외씨버선길 2길의 시점인

 소헌공원을 찾았다.

 

소헌공원(昭憲公園)은 2011년 4월 7일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시대 가장 어진 왕후로 칭송받는 세종왕비 소헌왕후의 시호를 따서 이름지어진

역사공원으로

청송은 소헌왕후의 본향이라는 연유로

1459년(세조 5)에 청송군에서 청송도호부로 승격되어 437년간 도호부로서 위상을

지켜오다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때 다시 청송군이 되었다고 한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함께 힘을 합하여  주왕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에서 단종이 잠시 머물렀던

영월 객사 관풍헌(觀風軒)까지 244㎞(13개 테마길과 2개 연결로)를

느릿느릿 걸으면서 문화도 탐방하고 생태도 탐방하며 쉬어가는 문화람방로로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표현한 '보일 듯 말 듯한 '외씨버선길'로 이름지었고

일명 '청춘을 돌려주는 길'이라고도 불리는 제2구간 시작점이 소헌공원이다.

* 외씨버선은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하여 맵씨가 있는 버선'을 말한다. 

 

운봉관(雲鳳館)은 1428년(세종 10) 청송군수였던 하담(河憺)이

찬경루와 함께 건축하여 객사로 사용하여 왔고 선조때 한차례 손보고 고쳤으며

1717년(숙종 43)에 부사 성환(成瑍), 1812년(순종 12)에 부사 강휘옥(姜彙鈺),

1871년(고종 8)에 부사 윤현기(尹顯岐) 등이 수차례 중수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특히 1896년 3월 12일에 청송유생들이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일으킨 장소로

일제강점기인 1918년무렵 중당과 서익사가 강제로 철거되었고

동익사에 운봉관이란 현판을 달아서 보존하여 오다가

2008년에 중당과 서익사를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찬경루(讚慶樓)는 1428년(세종 10)에 지청송군사(知靑松郡事) 하담(河憺)이

운봉관과 함게 2층 16칸으로 건립한 누각으로 조선시대 관아건물에 배치되어

사신을 위한 연회나 지방유생들의 시문회(백일장) 장소로 사용되어 왔고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792년(정조 16)에 재건하여 수차례 중수를 하였고

2008년에 다시 고치고 단청도 하였다.

 

일설에는 세종의 여덟 왕자들이 어머니를 위해 각 두칸씩 지었다고 전하며

누각이름은 하담의 청을 받은 관찰사 홍여방(洪汝方)이 '지금까지 왕후와

왕족이 우리 조선에서 만세토록 끊이지 않고 복을 누리고 있으며

이 누각에 올라 보광산에 있는 소헌왕후의 시조묘를 바라보며

우러러 찬사를 드리게 되기때문에 찬경이라 하였다'는 뜻에서

'찬경루'라 지었고

용전천이 범람하여 시조묘소로 갈수 없을 때

이 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세종의 세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松柏岡陵)'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없어지고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홍성민 등이 남긴 시문이 걸려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운봉관 좌익사 마루에 앉아서

권갑현 교수님이 논어 학이편을 강의하시고

가곡 '선구자'의 가락으로 원문과 해설문을 노래하는 강의를 듣고

찬경루와 부사송덕비와 청송심씨 유허비를 구경하였으며

1548년(명종 7) 정월 퇴계선생이 48세때 외직을 구하여

청송부사를 원하였으나 이루지 못 하고 단양군수를 받았을때

남기신 청송백학(靑松白鶴) 詩도 구경을 하였다.

 

강의시간에 그쳤던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고

버스로 오면서 찬경루를 바라 본 어느 회원님은

'찬경루 아래에 있는 암석의 모양이 거북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우리는 안덕면의 송학서원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