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조선 영조때 겹혼인경사◈
겹혼인 경사 (노변야담)
조선 영조 때 그 유명한 박문수 어사가 산중을 가다가
시장하기 짝이 없는데다 날도 저물어서
부득이 어떤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유(留)하게 되었다.
"비록 누추하지만 자고 가시는것은 있는 집이니 상관없습니다만
해드릴 밥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딱한 소리를 하는 여주인에게 박어사는
"밥은 걱정 마십시오.
낮에 먹어 둔 것이 있으니까 잘 자리만 부탁합니다."라고
하면서 들어가 자게 되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하였지만
사실 점심도 굶었던 터라 기진맥진 하였다.
그런데 곁에 있던 딸이 어머니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손님이 무척 시장해 보입니다.
아버지제사에 지을 웁쌀을 가지고 밥을 해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아버지 제사가 곧 다가오는데...
그래라.
아버지 제사에 지낼 쌀로 밥을 지어 드리자.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떻게든 마련하여 보자꾸나."
이러한 연유로 해서 밥을 먹게 되어 박어사는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저 과년한 처녀는 어찌 저리 마음씨가 고울까?
인물도 예쁜데다 마음씨까지 곱고 정말 훌륭한 규수 감 이로구나!
비록 산중에 묻혀 살망정 진흙 속의 구슬이로구나.
내가 어찌하면 보답을 할까?“
이러는데 이 집 아들이 밖에 나갔다가 이것저것 떡이며 전을 싸 가지고 들어왔다.
어디 잔칫집에 갔다 온 모양이었다.
"어머니,
손님이 오셨습니까?"
"어떤 나그네가 왔는데 저 윗방에서 주무신다.
금방 제사에 쓸 웁쌀로 밥을 좀 지어드렸다만
뭐 요기가 되셨는지 모르겠구나."
"어머니 제가 좀 많이 싸 왔으니까
윗방손님에게 좀 갖다 드리겠습니다."
박어사도 출출하던 참이라 이 아들이 가져온 잔치음식을
잘 받아 먹으면서 어느 잔치에 갔더냐고 하니까
이 아들이 비감(悲感)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울먹 하였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지며 한숨을 쏟아 낸다.
"아~ 그 잔치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주린 배를 채우려고 창피를 무릅쓰고
가서 잔치 일을 돌봐 주고 이 음식을 얻어 온 것입니다.
아!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휴우! 손님 죄송합니다.
제 신세타령만 하여서..."
"아니 무슨 신세타령을 했다는 말이오?
정작 한숨 밖에 무엇을 내게 말하였소?
이야기 좀 하구려"
"사실은 저희 아버지와 저 잔칫집 진사 댁
진사어른과는 친한 친구였습니다.
일찌기 저희가,
그러니까 저하고 내일시집갈 저 신부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두 분이 말하기를 '우리 아들과 딸을 낳는다면 혼인을 시키고
, 같이 아들이나 딸끼리면 의형제를 맺기로 하세'라고
굳게 약속을 하였는데
저는 아들이요,
저 진사 댁은 딸을 보았는지라,
일찌기 우리는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우리 집은
이렇게 몰락해서 가산을 탕패 (蕩敗)해 버렸으니
어찌 저 잘사는진사 댁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까?
자연히 저희의 약혼은 파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상대가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는 중에 저 진사 댁에 잘살고 출세한 집에서 중매 말이 들어오자
그 중 제일 나은 집에 이제 혼인을 시키기로 하였답니다.
바로 내일이지요.
아! 제가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일해 주고 먹을 것 좀 챙길까 하고 갔던 것입니다.
괴롭습니다.
손님! 괜히 제 신세타령만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들어둘 만한 이야기요.
염량세태(炎凉世態)라고 사람이란 그저 그런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물어봅시다.
일해 주고 먹을 것 싸오려고 간 것이라기보다는..."
"예,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간 것입니다.
그 처녀인들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저도 괴롭습니다.
남들은 저보고 쓸개도 없느냐고 하면서 멸시와 천대를 하였습니다.
그리 배가 고파서 이 집 일을 해주느냐고 별의별 소리롤 다했지만
저는 괘념치 않습니다.
저는 다만 한 번만이라도
이전에 제 사람으로 만들어 앉히려던 그 신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먼 발치에서라도 안보는 것이 나았을 것인데...
신부도 분명 괴로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우리 집이 일이 아니군 그래.
나랑 다시 그 집에 가세나.
가서 일을 해야지."
이렇게 신바람 나게 박어사는 말하면서
그 총각을 데리고 잔칫집에 갔다.
그 집에서는 쓸개 빠진 놈이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또 왔느냐 하면서
이제는 늙은 거지까지 하나 더 데리고 왔다면서,
그런다고 내일 시집갈 신부가 너를 보러 나오기라도 하겠느냐는 둥
별의별 말이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총각과 박어사는 그 집에 일도 거들어주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한편 이 고을 원님은 이상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일 원님은
낮 사시(10시경)에 관원을 데리고
아무개 진사 댁에 행차하시오.
와서 후행을 왔다고 면서 나와 신랑을 찾으시오.
특별히 신분을 밝히는 암행어사 박문수 백."
이제 느닷없이 원님까지 이 혼사에 끼어 든 것이다.
이튿날 사시가 되니 원님이 육방관속을 거느리고 진사 댁에 나타났다.
신랑이 입을 옷까지 다 마련하여서 나타난 것이다.
이러니 신부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정작 혼인식은 오시(12시)인데
어찌 한 시각이나 빨리 신랑 후행이 온다는 말인가?
원님이 어찌 이 혼사와 관련이 있어서 나타났을까?
그 궁금증뿐인가?
일이 더 크게 벌어졌다.
원님이 큰 소리로 진사에게 물었다.
"박문수 어사께서 어디 계시는가."
"아니,
박어사라니요?
그런 분이 여기에 올 턱이 있나?"
다들 이러는 때에 늙은 거지로 대접받으면서 일만 하던
그 이상한 손님이 나서면서,
"하하하...
누가 나 어사요 하고 나타납니까?
날세! 내가 박어사구먼."
이러니까 거기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박어사에게 우리가 얼마나 잘못하였던가?
원님이 물었다.
"박어사님!
신랑은 어디 있습니까?" "
음,
이 애가 조카일세.
원래 우리 형님이 살아 계실 때
이 집 진사 딸과 정혼한 사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형님집이 탕패했다고 해 우리 조카가 이런 비감한 꼴을 당하고 있으니
삼촌 된 내가 어찌 마음이 편하겠소?
나라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중 조카 일이 먼저 중하지 않소이까?
하하하...
자 조카야!
이 집 새 신랑아!
어서 원님이 마련하여 온 신랑 옷을 입고 대례 청에 나서라.
진사도 이 혼사를 거부하지 못하리라."
진사는 사색이 되어서 말하였다.
"저저~ 그렇다면
오시에 올 신랑은 어찌 됩니까?"
"사시는 사시고 오시는 오시오.
일의 선후가 있으니까
이 혼사 먼저 치르시오"
"아무리 어사라지만 이것은 너무 하십니다 그려.
순서가 엄연히 있는데..."
"흥!
우리 형님과의 약속은 어찌 되고요?
그래 어사를 깔아뭉개겠다는 말이오?
어서 식을 올리시오.
진사 딸 신부도 소원하는 바가 아니오?
아버지가 딸 소원을 들어주어야 옳거늘 도리어 나에게 감사해야 옳지 않소?
웬 시비가 이리 많소이까?"
"허허허~
이 일을 어찌할거나?"
이 광경을 흥미진진해 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에 벌벌 떠는 사람도 있고 희색이 만면한 사람도있었다.
조금 있다가 정작 오시에 혼례식을 올릴 진짜 신랑이 들이닥쳤다.
난데없는 신랑이 나타나서 한시각 전에 이미 식을 올렸다고 하니까
뒤에 나타난 신랑 쪽에서는 기가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아니하는 이 신랑 쪽에게 박어사가
전후 사정말을 다하고 나서 이런다.
"오늘 혼행을 와서 이 지경을 당하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도 아네.
그러니까 준비하여 둔 게 있지.
신랑 자네는 양반집 예쁜 딸에게 장가만 들면 되지 아니한가?
있네. 있고말고.
우리 조카 딸이 있어.
먼저 장가든 신랑의 여동생 말일세.
자~ 우리 조카딸 신부도 나오너라.
원님은 마련한 신부 옷을 어서 내주시구려."
이러니까 원님이 큰소리로 박장대소를 한다.
"하하하~
신랑 옷에다 신부 옷까지 마련하라고 하여서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는데...
하하하.
이 고을 젊은이 둘을 혼사시키는 일을 하는데 나도 한몫을하니 기쁩니다."
"다 기쁘지 누가 안 기쁠까?
이 음식으로 둘 혼사를 치르니까 절약도 되고
동네 축하객도 한꺼번에 두 혼사를 구경하고
하하하! 일일이혼(一日二婚)이 아닌가?
덩실덩실 춤을 춥시다."
이러니 이 잔치마당이 얼마나 흥겨운가?
뒷 신랑은 어사 조카딸,
그 심덕이 곱고 예쁜 처자를 맞이하였으니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과연 어사 박문수의 지혜에 모두들 탄복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 인줄로만 알았지만
마음씨 고운 처녀와 총각이 극진히 손님을 대접한 덕분에
뜻하지 않은 소원을 성취하였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경사인가!
옛말에 선을 행하면 '필유경사(泌有慶事)'요.
악을 행하면 '필유망사(必有亡事)'라 하였다.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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