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예천 용문사를 다녀와서]
초간정 답사를 마친 우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소백산 용문사를 찾아갔다.
용문사(龍門寺)는 870년 두운조사사 창건하여
936년 태조가 직접 중건했고 1165년(의종 19) 왕명으로 중수했다고 하며
1171년(명종 1) 태자의 태를 일주문 밖에 묻은다음 '용문산 창기사'라 바꾸고
1179년 부터 15년간에 걸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478년(성종 9)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산 용문사'라 하였으며
1783년(정조 7) 문효세자의 태실을 쓰고 '소백산 용문사'라 하였다고 전하며
1835년( 현종 1) 화재로 소실된 것을 역파대사가 상민 부열과 중건하였으며
대웅전(보물 제145호), 윤장대(보물 제684호), 용문사교지(보물 제729호),
강희23년(康熙二十三年) 명문이 있는 대장전목각불탱(보물 제989호)등이 있다.
대장전목각불탱은 1684년(숙종 10) 조성된 높이 261㎝ 너비 215㎝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탱 중 가장 이른시기의 작품으로 7개의 나무판을 이어 맞춘 것이며
상하로 긴 장방형 테두리 안에 아미타극락회상도(阿彌陀極樂會相圖)를 표현하고
테두리 밖에 구름무늬와 불꽃무늬를 표현한 능형판(稜形板)을 덧붙어 장엄했다.
테두리 나무기둥에 범자와 만자 8괘를 배치, 아미타극락회상도를 글귀를 새기고
중앙에는 아미타불이 앉아 주형(舟形)광배 양옆에 날개를 덧붙인 키형광배이며
본존불 주위에 8구의 보살입상이 있고 아래쪽에 사천왕이 2구씩 좌우에 있으며
보살상 좌우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아난과 가섭상이 있다고 한다.
윤장대(輪藏臺)는 높이 420㎝ 둘레 315㎝로 경전을 보관하던 목조경판고로
대장전에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구씩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정토왕생9淨土往生)을 기원하던
의식용 기구의 하나로 마루밑에 회전축을 세운뒤 지도리로 경장을 받치고
지붕 끝을 천장부 가구와 연결하여 대장전 건물과 이어져 있으며
겹처마팔작지붕에 치밀하게 가구를 짜올린 다포계양식이고
팔면에 모두 문을 달아 아랫부분은 팽이처럼 뾰족하고 한쪽모서리에
긴 손잡이를 두어 경장을 돌리는 회전의식에 알맞게 되어 있으며
내부는 서가처럼 단을 만들어 졌고 문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꽃무늬 창살과
빗살무늬 창살이 달려 있다.
1173년 자엄대사(資嚴大師)가 대장전을 창건했고
1670년(헌종 11) 중수하였다고 하며
불교공예품은 중수시기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예천군 문화해설사님은
성보유물관 앞마당에서 사찰에는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을 통해 출입되며
용문사는 일주문과 회천문, 해운루을 거쳐 보광명전으로 연결된다며
보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며 유래와 보물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상세한 안내를 하여주신 문화해설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보광명전과 대장전, 천불전을 거쳐 문효세자 태실을 찾아갔다.
문효세자태실(文孝世子胎室)은 천불전 뒷편 200m 거리에 위치를 하였고
문효세자(1782~1786)는 조선 22대왕인 정조의 맏아들로
1784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5세) 홍역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였으며
태실은 1783년(정조 7)에 만들어졌고 1930년대에 발굴되어 서삼릉에 이장되고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옮겨 보관되고 있다고 하며
태실지에는 태실비만 남아 있었으나 2020년 태실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봉분을 복원하여 왕실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재헌왕후(폐비윤씨)의 태실은 멀어서 다음기회에 보기로 하고 버스로 돌아와
용문사에서 내려오다가 좌측 봉우리에 있는 하늘공원전망대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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