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예천 금당실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1. 6. 19. 15:02

거경대학에서 예천 금당실을 다녀와서

 

죽림리 대수마을 초간종택을 나선 버스는 龍跳天門(용이 천문에서 뛰논다)이란

표지석이 서있는 용문행정복지센터 앞에 도착을 하여서

우리 일행은 복지센터 건너편 당나무 아래에서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았다.

 

문화해설사님은

아침에 컴퓨터로 거경대학을 찾아보았더니 거창한 대학이더라며 말문을 열고

예천과 용문, 금당실의 설명을 하고 금당실에는 다섯 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냈으나 요즘은 오미봉에서 함께 동제를 지낸다고 소개를 하고

용문초등학교를 지나 금당실송림으로 갔는데 따라가는 행열을 보니 어린시절 

오토재로 소풍을 갔던 생각이 떠 올랐다. 송림에 도착하니 네잎크로바를 찾던

회원님이 나에게도 네잎크로바를 하나 주시어 나도 행운이 따를 것 같았다.

 

금당실송림(金塘室松林)은 해마다 여름철에는 하천물 범람을 막고 겨울철에

북서풍을 막기위해 오미봉에서 병암정까지 약 2㎞구간에 소나무를 심어졌던

비보림(裨補林)으로 1863년(철종 14) 동학을 전파하던 최재우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과정에서 민심이 동요되어 일부 벌채되었고, 1892년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사람이 살해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마을에서 소나무를 베어 배상한 일과, 1984년 동학운동당시 노비구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많이 벌채되었고 1895년(고종 32) 법무대신이던

이유인(李裕寅)이 금당실에 99칸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이 숲을 보호하여

현재는 800여m에 100~200년생 900여주가 서 있으며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중심지로 활용되고 2006년 천연기념물 제469호로 지정되어 있고

영화 영어완전정복(2003), 나의 결혼원정기(2005), 그해여름(2006),

KBS드라마 황진이(2006) 등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송림을 나와서

1658년(선조 1) 지방유림 공의로 박충좌(朴忠左)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박눌(朴訥)과 박손경(朴孫慶)을 추가배향한 금곡서원(金谷書院)과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朴從鱗 1496~1553)을 제향하기 위해 증손 박영이

세운 추원재및 사당을 거쳐 미로와 같은 돌담길을 따라 갔더니

'금당실은 다른 집성촌처럼 종택이 한자리에서 계속 이어져 유지하지 못 하고 

그 시절의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뀌어져 왔다'고도 한다.

 

신석기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사이 나타난 거석숭배문화인 고인돌무덤으로

기원전 8세기부터 금당실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군을 돌아

조선 숙종때 도승지, 예조참판을 지낸 갈천 김번이 낙향해 1670~1690년경에

세운, 반송재(伴松齋)를 구한말 법무대신 이유인이 매입하여 1899년(광무3) 

이건했던 건물을 현 소유자의 선대가 매입하여 관리하고 있는 반송재로 가서

'주인은 사랑채, 시어머니는 서향방, 새아씨는 해가 뜨는 동향방에 거처하며

살았다'는 이야가도 들었다.

 

물 위에 떠있는 연꽃형국(蓮花浮水形局)의 금당실은 병화와 질병, 기근이 없다고

하여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인 십승지의 한 곳이고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려

하였던 곳으로 임진왜란떼 명나라 장수가 이곳을 지나면서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같아 금당실, 금당곡, 금곡으로 불리었다고 하며

 

명풍(名風) 남사고가 '이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다'고 하였고

조선말엽 경상감사, 법무대신, 한성판윤을 지낸 양주대감 이유인이 거주하면서

맛질에 살고 있는 처사 권경하와 서로 오갈때 행렬이 왕가행렬과 비슷하였으며

18세기 높은 벼슬을 한 이곳 출신들이 많아 양반문화가 전한다 하여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 부른다는 해설로 마친 해설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금당실한옥체험관으로 가는길에 발갛게 익은 보리둑과 앵두가 눈길을

유혹하여 한 두개씩 따 먹으며 별관으로 가서 헬스강사 싱글이벙글이와 만나서

건강체조를 한차례 배우고  체험관(浮蓮堂)에서 한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손두부, 도토리묵, 잡채, 부침개, 명태보프름, 고등어, 탕국 등 다양한 음식들이

차려졌고 시간이 조금 늦은 점심이라 우리는 맛있게 먹고 초간정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