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55>
어려울때 월랑을 도와 주었던
학관 유체인은 은둔 생활을 하는중 신선을 만난다.
산중에 움막짓고 유유자적 은둔생활,
소슬바람 저녁노을 소탈한 맛 누가 아리.
찾아오는 벗과 함께 차 한잔을 나눠먹고,
두팔걷고 들에 나가 나물캐어 무쳐먹네.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도를 즐기(安贫乐道)는 사람에게는
제아무리 호화스런 고대광실의 싸리나무 둘러쳐진 초가집만 못하고,
제 아무리 웅장한 주악과 가무(歌舞)라 할지라도 철모르는 목동아이나 심심산골에
파묻혀서 지내는 나무꾼의 순박하고 구수한 노랫소리만은 못할 것이다.
송나라의 황산곡(黄山谷)은 스스로 '사휴노인(四休老人)'이라 호를 지었다.
사휴(四休)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엽차 한 잔 조촐한 밥 한끼로 배를 채우면 그만이요,
엄동설한 북풍한설에 누더기 옷 입었으면 그만이고,
모진 세상 다툼없이 그럭저럭 살다가면 그만이요,
뜬 구름의 부귀영화 욕심없이 늙어가면 그만이라!
이 네가지 '그만'을 말 함이니,
결국은 검소한 생활을 따르며 헛된 명예와 사리를 쫓지 말라는 뜻이었다.
또한 왕촉은 세상사람들에게 '사당거사(四当居士)' 라 칭하였다.
그러면 사당(四当) 이란 또 무엇인가 알아보자.
배고플 때 밥을 먹어 고기반찬 대신하고,
팔(八)자 걸음 걸어가니 수레탄 것 대신하며,
자제하고 살아가니 돈 많은 것 대신하고,
별 탈없이 늙어가니 부귀공명 대신하네!
오호라, 그렇구나!
호사와 부귀같은 물질적인 만족은 인간을 영원히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법,
오히려 물욕의 자제를 통한 검소한 생활이 영원한 마음의 행복을 가져다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곤경에 처했듯 월랑에게 옛날 서문경에게 빌렸던 돈 오십냥을 갚았던 학관(学官) 유체인(刘体仁)은
남산(南山) 밑에 초가집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당 선생을 하며 근근히 살고 있던 유학관은 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그동안 가르치고 있던 학동들이
모두 부모를 따라 피난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유학관은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태연자약하게 유유자적한 은둔생활을 즐겼다.
어차피 난세에서 부귀영화를 쫓다가는 일평생 신조로 삼아왔던 지조를 굽힐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예 세상에 나가 몸을 더럽히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유학관은 하루종일 옛 시인들이 남겨논 시구(诗句)를 읊으면서
난과 대나무를 구해 울타리를 쌓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았다.
가끔 탁주 한 병이 생기면 인근의 스님과도인들을 초대하여 안주 하나없이 대작하며 담론을 즐기었다.
그야말로 낙천지명(乐天知命)한 고고한 선비였으니,
많은 뜻있는 선비들이 그의 고명한 이름을 흠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유학관은 삼라만상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홀로 서재에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등불삼아 낭랑한 목소리로 경서(经书)를 읽고 있었다.
"으음?
이게 무슨 향내이지?"
문득 유학관의 코에 묘한 향기가 스며 들어왔다.
꽃향기도 아니고 부처님께 재를 드리며 피우는 향불의 내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난사향(兰麝香)도 아니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퍼져나오는 신비스러운 향기는
무언가 상서로운 느낌마저 들게 해주었다.
유학관은 알 리 없었지만,
그 향은 이름하여 '천향(天香)' 이라 하는 신선의 향기였던 것이다.
잠시 얼이 빠져 눈을 지긋이 감고 향내에 몰두해 있던 유학관은
문득 향내가 사라지자 아쉬운 마움마저 지닌 채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아니, 이
게 뭐지?"
유학관은 서탁(书卓)위에 놓여진 하얀 종이 뭉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조금 아까까지는 분명 없었던 물건이었다.
유학관은 귀신에 흘린 느낌으로 조심조심 하얀 종이뭉치를 펼쳐보았다.
누군가 그에게 보낸 편지였다.
[유체인 학관 친전(亲展).
독서로 선(善)을 행하는 그대와 인연을 맺고 싶소이다.]
청하도인(青霞道人) 장모(张某) 올림.
유채인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도깨비나 귀신들이 이 한적한 산중에서 사람을 흘리는게 아닌가 싶었다.
"얘, 요장(姚庄)아!
게 있느냐?"
놀란 유학관은 동자 요장을 불러 밖에 나가 혹시 누가 있는지 살펴보라 일렀다.
밖에 나가본 동자 요장은 어느 도인이 뜰안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얀 수염이 길게 드리워진 도인은 네모난 눈매가 형형하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뉘시옵니까?
어인 일로 야밤에 행차하셨는지요?"
열 세살먹은 요장은 무섭지도 않은지 당돌하게 도인에게 따졌다.
"허허,
고놈 참 맹랑한지고, 보면 모르겠느냐?
옷소매에 구름을 담아와 대나무길에 깔고,
이 죽장으로는 달을 떼어와 사립문 밖에 걸어 놓고 있는 중이니라."
"하온데
어찌 이 곳에서 그런 일을 하시는지요?"
"하하하!
아주 똑똑하구나.
나는 청하도인이라 하는데 네 주인 어른이신 유학관을 뵈오려 왔단다.
허나 이미 밤이 깊었으니 지금은 만나뵙기가 어려울듯 하구나. "
"어떠냐?
네가 내일 아침 우리집에 한번 다녀가는게 어떻겠느냐?
그러면 네 주인 어른도 내가 요괴나 도깨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될 것 아니겠느냐?
그 후에 다시 네 도움을 받아 유학관 어른과 인연을 맺고 싶구나."
"좋사옵니다.
제 주인 어른께서 승낙해 주신다면 도인 어르신께서 사시는 곳을 따라 가겠습니다."
"하하,
그래 아주 잘 생각했구나.
그런데 너는 내가 무섭지 않으냐?
어찌 그리 선뜻 응낙하는고?"
"무섭기는요.
도깨비나 무서움은 모두 마음 속에 있는것 아닙니까?
하온데, 도인께서 사시는 곳이 어딘지 어떻게 알고 제가 내일 찾아 뵙지요?"
"내가 내일 아침 사람을 보내리라,
뜰에 나와보면 알게 될 것이니라."
도인은 껄껄 웃으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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