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56>
유학관 부자는 신선을 스승으로 받들고
유가의 경서 뿐만 아니라 불가 도가의 경전도 사사 받았다.
요장은 즉시 유학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유학관은 두렵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 한적한 산중에는 요괴와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 많아
어떤 때는 아리따운 처녀로 변해서 남자의 양기를 빨아먹던가,
흉측한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기절시킨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신선이나 도인이라면 무엇때문에 나처럼 평범한 인간과 인연을 맺자는 것일까?
아니야, 내 평생동안 사악한 마음을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으니,
어찌 요괴들이 나를 괴롭히겠는가?
그리고 설사 요괴들의 장난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하늘의 운명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유학관이 마음을 고쳐먹자,
걱정과 우려가 씻은듯이 가셨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요장이 뜰에 나가자 푸른 옷에 검은 모자를 쓴 흰 수염의 도인이 나타났다.
"네가 요장이냐?
나는 청하도인의 제자 위하(韦化)이니라.
이제 청하도인의 명을 받들어 너를 데리고 신성궁전(神圣公宫殿)으로 갈 것이다.
곧 돌아올 수 있으니 염려말고 따라오너라.
그리고 유학관 어른과 내 스승이신 청하도인의 만남을 주선해 주어야 하느니라"
하고는 요장의 손을 잡고 초가집을 나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편 유학관은 만일을 대비해 사냥꾼 한 명을 불러
요장의 뒤를 쫓도록 미리 배치를 해 놓았다.
만에 하나 그 도인이 요괴의 변신이라면
요장이 산속을 헤매다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사냥꾼은 뜰 뒷편 나무뒤에 숨어 요장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아무 것도 없건만 요장이 혼자 중얼중얼 거리더니
숲속을 향해 비호같이 달려가기 시작하자,
사냥꾼도 깜짝 놀라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길을 조금 올라가자, 앞서가던 요장은 바람과 같이 멀어져 갔다.
사냥꾼이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쫓아갔지만 어느새 요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랴부랴 있는 힘을 다해 따라갔더니 산을 두세개 넘어서야 그제서야
요장이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 절벽앞에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그 순간 절벽이 문짝처럼 양쪽으로 활짝 열리더니 요장이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사냥꾼은 허둥지둥 산을 내려가 요장이 서있던 절벽앞에 서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요장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눈을 딱고 살펴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절벽은 푸른 이끼가 듬성듬성 끼여있고,
이름모를 잡초가 절벽사이에서 보일 뿐이었다.
황랑한 산중에는 쥐새끼 한마리 찾아 볼 수 없었다.
한편 요장은 위하의 손에 이끌려 산봉우리를 몇개나 넘어갔다.
두 발밑에 하이얀 구름이 일어나며 씽씽 바람 스치는 소리와 함께 주위의 풍경이
쏜살같이 뒤를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이른바 위하는 요장의 손을 잡고 말만 들었던 축지법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을 걸어가더니 갑자기 어느 절벽 앞에 멈춰섰다.
마치 커다란 바위가 산 가운데 끼워져 있는 듯한 절벽이었다.
요장은 그저 위하에 손에 이끌려 왔기에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자 요장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나 한다는듯,
위화가 무언가 입속말로 주문을 외우자,
그 커다란 절벽이 마치 대문이 열리듯 활짝 벌어졌다.
요장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요장은 깜짝놀라며 뒤를 돌아 보았더니 바위 절벽은 도로 닫히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돌아 보았더니 눈 앞에 나타난 세계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황제가 살고있는 궁궐처럼 휘황 찬란한 궁전이 나타난 것이다.
정문에는 어느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갑옷과 투구를 쓰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손에는 긴창을 든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요장은 위하 도인을 따라 청석(青石) 으로 깔아놓은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회랑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넓은 화원이 나타났다.
"앗!
아니 저기 계시는 저분은?"
요장은 화원 한가운데 단상에 앉은 도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어제 저녁에 보았던 그 청하도인 이었다.
"하하하! 왜 그리 놀라느냐?
내 이미 여기가 내가 사는 집이라 어제 얘기해주지 않았더냐?
이제 여기에 와 보았으니 내가 여우나 요괴가 아니라는 것을 않았겠지?
이제 돌아가서 네 주인에게 네가 보고 겪었던 일을 소상하게 일러주려무나.
내, 곧 네 뒤를 따라가서 유학관을 만나 보리라.
그리고 너에게 그 절벽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주문을 가르쳐 주 터이니
여기를 네 집처럼 생각하고 자주 놀러 와도 되느니라."
요장은 곧 다시 집으로 돌아와 유학관에게 신성궁전에서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유학관은 요장을 보내고서 좌불안석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요장이 돌아오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하도인께서 곧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뜰로 나가셔서 도인을 영접하시지요?"
요장이 말하니,
그제서야 신선과 인연을 맺게 된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아들 유극장(刘克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후에 미행을 시켰던 사냥꾼이 헐레벌떡거리며 돌아왔다.
그때는 요장이 돌아온지 한 참 뒤였다.
"주인님,
도인께서 지금 막 여기 도착하셨습니다."
뜰에 나가 도인이 오기를 기다리던 유학관 부자가 요장의 말에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이상하게도 부자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요장은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정중하게 예를 올리고
유학관에게 도인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주인님,
이 분이 바로 신성궁전의 주인이신 청하도인이십니다.
어서 예를 올리시지요."
유학관 부자는 천연덕스러운 요장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아직도 자신과 도인이 인연이 안 다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정성이 부족해서 인지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요장이 말하는데로 공손하게 예를 차렸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유학관은 허공에 대고 허리를 굽혀 예의를 표현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부자는 모든 행동을 하나부터 열까지 요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책을 펴고 토론를 하자 하십니다. "
요장의 말에 유학관 부자는 마치 어린 학동처럼 자리에 꿇어앉아 경서를 펼쳐놓았다.
요장이 한 귀절씩 뜻을 물어 보았다.
유학관과 아들 유극장은 성심성의껏 아는대로 대답을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유학관의 서탁위에 놓여있던 붓이 허공으로 솟아 오르더니
스스로 먹을 듬뿍 묻혀서는 종이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수백년 묵은 노호가 포효하며 뛰어놀고,
성난 용이 용트림을 하듯 붓은 펼쳐놓은 종이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더니 붓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가지런히 놓이는 것이었다.
유학관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종이에 쓰여진 글을 읽어 보았다.
그야말로 일필휘지의 신필(神笔)로 쓰여진 문장은 미쳐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깨우쳐 주고 있었다.
유체인과 유극장은 그 오묘한 해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하여 유학관 부자는 보이지 않는 신선을 스승으로 받들어
경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청하도인이 가르쳐 주는 것은 유가의 경서뿐만 아니라
불가 도가의 경전에 이르기까지 오묘한 이치가 모두다 포함되어 있었다.
두 부자, 특히 아들인 유극장의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日就月将)하였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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