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소옥은 쌀로 바꾸어 대안과 함께 암자로 돌아오자

오토산 2021. 6. 19. 20:14

금옥몽(속 금병매) <153>

소옥은 쌀로 바꾸어 대안과 함께 암자로 돌아오자

월랑과 맹옥루는 너무 반가워 하나 효가가 토적에게 잡혀 갔다는 말에 실신을 했다.


짐꾼들이 점점 가까이 오는데 계속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희희낙낙 하는 소옥을 보자 월랑은 그만 화가 치밀었다.

"흥,

이제 저 가시네도 마음이 변했군.
서방이랑 헤어진지도 오래되었고, 나도 출가 했으니 이젠 마음대로 하겠다 이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쩌자고  모르는 사내랑 벌건 대낮에 나란히 걸으며 히히덕대는 게야?"

월랑은 투덜대며 암자로 들어와 쌀을 받기위하여 부엌에서 됫박을 가져오는데 소옥이 들어섰다.
월랑이 샐쭉하여 소옥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데, 

뒤 따라오던 도인 행색의 사내가 월랑에게 달려와 넙쭉 엎드려 절을 하며 대성통곡을 하는게 아닌가!
어찌된 영문인지 옆에 서 있던 소옥 마져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함께 따라 울었다.
월랑은 영문도 모른체 울고있는 두 남녀를 번갈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쳐 든 사내가,

"마님!
저 대안이 입니다." 하고는

또 다시 울기시작했다.

이윽고 월랑은 울고 있는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안이 틀림없었다.
그렇게도 오매불매 찾아헤매었던 하인 대안이가 아닌가!

 

삼년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낮게 드리워진 암울한 구름사이로 해가 반짝 빛나며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 듯,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만났으니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월랑도 그제서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초조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효가는?
효가는 어디 있지?
설마,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이번에 소인하고 같이 길을 나서서 회수(淮水)입구까지 왔었습니다. "

"정말?
내 아들이 아직 살아있어?
지금 어디 있는데?"

월랑이 아들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말에 금새 희색이 만면하여 다시 묻자.
대안이 난감한 표정이 되어 울먹거리며 말했다.

"도련님도 출가하셔서 중이 되셨습니다요.
그런데 마님을 찾으려고 같이 오다 어느 절에서 노숙을 하였는데,

토적들이 들이닥쳐 토적에게 잡혀가서 지금 어찌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월랑은 조금 아까까지 아들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번에는 다시 토적에게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는 엄청난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그만 고꾸라져 버리고 말았다.

"쿵" 하며 땅에 머리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났다.
소옥이 깜짝 놀라 월랑을 부축했지만 월랑은 턱뼈가 딱 굳어버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옥은 당황하여 다급하게 맹옥루를 불러왔다.

맹옥루도 대안을 보자 깜짝놀라며 반가워 어쩔 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반가워하고만 있을 겨를이 없었다.

맹옥루는 얼른 월랑의 턱을 힘껏 당겨 입을 벌리게 하고는

닭털을 목구멍에 넣어 목에 걸린 점액을 토해내게 했다.
월랑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끄억하는 목소리를 토해내며 다시 깨어났다.

맹옥루는 대안이 효가를 극적으로 만나 마님을 만나러 오는 중

회하에서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월랑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그칠 것 같지 앉자, 늙은 비구니가 다시 한마디를 했다.

"아니구, 그만울어.
그런 모든 어려움을 견더내야 해탈 할 수 있는 거야,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만 들었으면 되었지 죽었다는 소식은 없는데 뭐뭘 그렇게 슬퍼해?
이렇게 속세에 정이 남아 있으니 말로만 출가한 거지 무슨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있겠누?"

그 말에 월랑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눈물을 닦고,

관음보살상 앞에 끓어앉아 절을 올리며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염불을 되뇌었다.
마음이 가라앉은 월랑은 그제서야 대안부부 생각이 났다.

"여보게,

그동안 고생 많이 했네 그려.
이제 부부가  다시 만났으니,

이 앞 마을에 내려가 우선 방을 얻어  당분간 같이 지내도록 하게나.

그런 후에 차차 앞날을 이야기 하세나."

"아, 아니 올시다 마님.
소인은 호심사의 절방에서 묵고 낮에는 이 암자로 와서 남정내가 해야 할 일을 도와 드리죠.
지금 도련님도 함께 하지 못한 판에 소인이 소옥과 부부 생활을 한다면, 

그건 마치 소인이 마누라 찾으려고 길을 나선 꼴밖에 더 됩니까요?
나중에 도련님을 찾구나서 다같이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함께 지낼랍니다요."

모두들 대안의 마음 씀씀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안은 그날부터 암자의 굿은 일을 도맡아 하였다.
저녁에는 호심사로 돌아가 잠을 자고는 다음 날에도 암자로 와서는

장작을 패고 마당을 쓸고 암자 주위를 정리하였다.

저녁에는 다시 호심사로 돌아가 잠을 자는 생활을 시작했다.
소옥도 오랜만에 남편을 만나 남녀의 정이 그리웠으나,

사사로운 정에 연연하지 않고 매일 신랑 얼굴을 보는 것으로 행복해 하며 참고 지냈다.

두 부부가 모두 불심의 교화를 받은 덕일 것이다.
늙은 비구니 스님의 가르침으로 일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던 월랑은

며칠이 지나자 또 효가 생각에 눈물을 보였다.

대안은 그런 월랑을 보자 안스러운 마음에 차라리 자기가 다시 회북으로 가서

효가를 찾아 보겠다고 월랑에게 말했다.

그러자 월랑은 점쾌를 뽑아 보더니 조용히 때를 기다리라는 패가 나오자,

혹시 자기 욕심에 대안을 보냈다가 이 난리통에 오랑캐와 토적들이 설쳐되고 있으니

잘못하면  대안 마져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대안을 보내지 않고

점쾌에 나온데로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한편 효가 요공 스님은 그날 밤  낡은 절에서 잠을 자다 정체불명의 무리들에게 붙들려

오랏줄에 묶여 어디인지도 모르는 깊은 산속에 있는 그들의 소굴로 끌려갔다.
그들은 그 지방의 토적들이었다.
이 소굴에는 두령이 두명이 있었다.

큰 두령은 '아홉머리 지네' 란 별명의 이달(李达)이었고,

작은 두령은 '하늘로 솟구치는 매'라는 별명의 양보(杨保)였다.

이들은 회북(淮北) 지방의 다른 토적들과 함께

'진해대왕(镇海大王) 이전(李全)을 총두목으로 떠받들고

그의 산채에 매달 상납을 하면서 토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 근처 백리 이내의 모든 토적들은 감히 이전(李全)의 명령을 거역 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이 이전에게는 꽃다운 딸과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부인 양씨(杨氏)는 창을 잘 다뤄 일당천(一当千)의 뛰어난 무술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방년 열 여섯의 그의 딸 금병(锦屏)은 백보 밖에서 표창을 던져

정화하게 적의 인중(人中)을 맞히는 신기를 지니고 있어

근방에 있는 모든 토적들이 벌벌 떨며 그 명령에 절대복종 하였다.

요공을 잡아온 이달과 양보는 그동안 노획한 패물과 옷감,

그리고 사로잡아 온 두 계집과 요공을 그 달의 상납품으로 삼아 이전의 산채로 갔다.
이전의 산채는 과연 토적들의 우두머리 소굴답게 들어가는 입구부터

무시무시한 것이 경비도 철저했다.

양 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절벽과 절벽사이의 협곡은 미로(迷路)와도 같았다.
그 미로를 이리저리 돌아가니, 세길이 넘는 목책(木柵)이 협곡을 가로질러 막고 있었다.
목책에는 해골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핏자국도 무수히 보였고 시궁창에는 머리를 풀어해친 시체들도 있었다.
어떤 시체는 심장과 내장이 그대로 터져나와 있었다.
어떤 이유로 죽여 버려진 시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무법 천지의 살아있는 지옥이 바로 이곳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총두령 이전은 군사 오천을 이끌고 오랑캐를 지원하여 남송(南宋)을 치기 위해 산채를 떠나 있었다.
지금은 그의 부인 양씨와 딸 금병이 산채를 관리하고 있었다.

"두령님께 아뢰오!
이달 소두령이 이달 노획품을 상납하러 왔다 합니다!"

"음,

들라해라!"

보고를 받은 양씨가 두령의 자리에 앉아 이달과 양보를 맞이했다.
양쪽에 늘어선 호위 두령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가운데 호명을 하였다.
대단히 엄숙하고 위풍있는 분위기 였다.

이달과 양보가 들어와서는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양씨는 상납 품목표와 쌓아놓은 물건들을 일일이 대조한 후,

사로 잡아온 두 계집은 갸름하며 곱다랗게 생겨 안채로 보내 시중드는 하녀로 배치했다.
그리고는 요공에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진짜 중이냐, 아님은 스님 행새를하는 땡중이냐?
추호라도 거짖말을 한다면 선채 입구에서본 시체와 같이 될 것이다."

양씨는 남루한 승복을 입은 요공을 어떻게 처리 할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비록 입은 옷은 남루하고 꾀죄죄하나 어쩨 귀공자의 품위가 얼굴에 베어 나오는 것이

예삿 스님이 아닌것 같은 느낌에 양씨가 직접 문초를 하였던 것이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