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양주성은 오랑캐에게 점령당하여 재물을 약탈당하고

오토산 2021. 6. 25. 16:34

금옥몽(속 금병매) <159>

색녀와 요부로 가득차 흥청되든 양주성은 오랑캐에게 점령당하여 재물을 약탈당하고,

계집들을 징벌 하지만...


구비구비 돌아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
뉘엿뉘엿 낙조에 얼굴가리고 흔끼네.
화려하던 꽃잎지니, 푸른 풀 더 진하다.

 

절세가인 황제무덤 속에 생매장되고,
미녀 애기 고관 대작 애첩 되었다가,

 

북풍 한설에 오랑캐의 노리개 되는구나!
부모님, 날 나으실 제 차라리 박색이라면.
천하에서 으뜸으로 번화하고 흥청대는 곳이 어디더냐?

열의 아홉 수많은 사람들이 첫손으로 꼽는 곳이 아마도 이름하여 강도(江都)

혹은 광릉(光陵)으로 불리는 양주(杨州)라고 말한다.

중원 천지 드넓은 벌판의 교통과 문물의 중심지요

국방의 요충지인 이곳은 온갖 사치가 범람하고 물자 또한 흥청대는 유흥의 성도였다.

양주는 옛부터 널리 이름을 날린 시인이나,

미녀와 명창(名唱)들이 허다하게 배출된 도시였다.

현세가 그러하니,

수(隋)나라 양제가 이곳으를 흠모하여 개봉에서 이곳까지 운하를 뚫고

수시로 놀러와 즐기고 간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바람에 나라까지 말아먹었으니

이곳 양주땅도 어찌 그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겠다.

춘삼월 벚꽃이 만발하면 성안의 고관대작의 마누라나 애첩들과 성내의 부녀자들이

장농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아름다운 옷을 꺼내 입고는 마차타고 꽃놀이도 하며 즐겼다.

 

또한 양자강의 푸른 물에 두리둥실 배 띄우고 밤새도록 술마시며

봄을 즐기는 상춘객(赏春客)들이 울려대는 풍악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절세미인 득실득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홍등가 또한 양주의 명물이거니와

그러한 홍등가를 유지하는 색다른 장사가 이곳에서 무척 번성했다한다.
색다른 장사는 바로 '마른 말 기르기'였다.

이 해괴망칙한 소리가 또 무었일까?
딸많은 가난한 집에서 열살도 안된 어린 딸을 기방에 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데,

그로부터 그 딸네미는 전문적인 기생훈련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가야금 비파 퉁소 생황등의 악기와 시화(诗昼)와 서예 시 같은 문학과 바둑 골패등의

잡기까지 다양하게 배웠다.

그중에서도 기가 찬 일은 어떻게 하면 침상에서 남정네들을

깜빡 죽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방중술을 특히 피나게 연마 시켰다.
그러하니 이름난 명기들을 한번 접해 본 남정네라면 온갖 재물 다 싸들고

만나게 해 달라고 줄을 섰다 하지 않던가?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던 개봉의 이사사(李师师)를 비롯한 서파석(徐婆惜) 봉의노(封宜奴)

손삼사(孙三四) 이은병(李银瓶), 양주의 동옥교(童玉娇)등이 그런 명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녀들은 화장이며 몸치장은 물론이요,

방뎅이를 실룩실룩 흔들면서 남정네를 유혹하는 걸음법과

손님 맞아 정성스레  목욕을 시켜주는 요령이나 춘궁도(春宫图)를 갖다놓고

이런저런 온갖 야릇한 방술 자세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양주전체에 여편네들은 물론이고 양가집 규수들까지

유행하여 양주땅엔 요부(妖妇) 색녀(色女)가 득실거렸다.
가르치고 배우는 짓거리가 모두 다 이 지경이니,

그 딸네미들도 일찍부터 춘정(春情)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밤마다 온몸이 근질근질 하고 배배꼬여서

어서 빨리 낮에 배운 방중술을 실습해 보고파 안달을 피웠다.

그렇다고 아무 남정네 품에 안길수도 없었다.
때가 무르익어 한 미천 두둑이 건져낼 남정네를 만나야 하나 그게 그리쉬운 인연인가,

그러하니 도리없이 자신의 손가락이나 가지 오이같은 것을 사용하고

과부들은 방물 장수에게서 구한 신목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였다.
그방의 노련한 기생에미들은 그런 일들을 휀희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가난뱅이집 어멈은 많은 돈을 받고 기생에미에게 팔기도 하였다.
또 어떤 계모밑에 구박을 받던 처녀들은 스스로 기생을 자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팔려온 처녀라도 기생어미들은 손님을 맞이한 아이가

파과(破瓜)의 교홍지혈(娇红之血)이 보이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손님에게

엄한 누명 뒤집어쓰고 돈 물러 주기도 하여 애시당초 계집들이 춘정이 무르익을 그때쯤엔

손과 아랫도리를 무명으로 꽁꽁 침상에 묶어놓고 잠을 재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 계집들이 허리부터 방뎅이까지 살이 피둥피둥하게 쪄서

그것을 막고자 기생에미들은 계집들이 살이 못찌도록 소식(小食)을 시키는데

하루 한끼 밥반고기에 쇠고기 한 두쪽과 야채만 먹이니 날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생집에 있는 비쩍 마른 계집들을 '마른 망아지'라 불렀다.
양주땅에는 마른 망아지들이 홍등가에 하도 많이 득실대어

권문세가 자제하며 부자집이나 장사로 한미천 잡은 벼락부자 오입쟁이들이

오늘밤엔 어떤 망아지를 올라타 보나하고 좋은 망아지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하다보니 기생에미들은 망아지의 장단점과 특색 장기등을

일목요연하게 적어논 명단들을 한량들에게 보여주고 입맛대로 골라 내어 시승을 하도록 했는데,

삐쩍 마른 망아지 한마리 빌리는 시세가 물경 백 오십냥(일반 계집 매매 값이 오백냥 정도)이라고 하니

홍등가 기생집이 번창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송 소흥(绍兴)삼년이었다.
회안성을 점령한 올술의 오랑캐 군사들은 아리해아와 장죽산의 군사들과 연합하여

물밀듯이 양주로 쳐들어 왔다.

양주의 외곽을 지키고 있던 송나라의 근왕병들은

오랑캐의 기세에 눌려 싸워보지도 않고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양주의 화려하고 질퍽한 분위기에 빠져 전란중에도 불구하고

허벌레하게 정신을 놓고 있던 고종(高宗)과 간신 황잠선  왕백언 두 재상은

가족도 버린채 구사일생으로 강남으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미쳐 피난하지 못한 수많은 백성들은 밀려오는 오랑캐들에게

무자비하게 참변을 당하고야 말았다.

양주성의 흥청대던 물자와 금은보화들도 닥치는대로 약탈했다.
그리고는 부녀자들도 눈에 보이면 겁탈을 하였다.

한편 장죽산과 내통한 묘청(苗青)은 오랑캐들이 성을 공격할때

사전에 약속한대로 '번(番)'자가 쓰인 깃발을 성곽에서 경계가 가장 취약한 곳에 걸어놓고

오랑캐 군사들이 침공을 해오도록 유도해 주었다.

마침내 양주성이 오랑캐들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되자,

올술 왕자는 곧 묘청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핫!

참으로 잘하였도다.
허나, 아직도 해줄 일이 많이 있다.
네가 이 성안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터인즉,

부잣놈들이 숨겨놓은 재물을 낱낱이 찾아내어 내게 가져 오너라,

알겠느냐?"

올술의 명령에 묘청은 신이나서 평소에 유감이 있었던 집의 재물부터 몽땅 털어

미녀 오십명과 함께 올술에게 바쳤다.
그 뿐이 아니었다.

'마른 망아지' 와 기생 삼천명의 명단을 찾아내어

올술에게 보고 하니, 오랑캐 왕자 올술은 입이 귀에 붙을 정도로 좋아했다.

"하하핫!
과연 충성스런 부하구려,

여봐라!
이계집들을 모두 찾아내어 천명은 연경에 계신 황상폐하께 보내도록 하고,

천명은 양주성 공략에 공이 많았던 장수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도록 하여라!

그러고 나머지 천명은 나에게 데려오도록 하여라?
당분간 나와 병사들은 이곳에서 즐기고 쉬면서 체력을 충진하도록 하여라,

하하핫!"

명령을 받은 묘청은 다시 앞장서서 삼천명의 '마른 망아지' 를 징발해

내기 위해 집집마다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사람을 징발하는 일은 재물을 강탈하는 일보다도 훨씬더 녹록치 않았다.
'마른 망아지' 들은 성이 점령당하자 이미 징발을 예상하고

뒷산 동굴 속이나 피난민들과 섞여 도망을 가버렸다.

어쩌다 피신을 못한 자들은 다락방 깊숙한 곳에

숨거나 지하실등에 필사적으로 깊숙히 숨어버렸던 것이다.
어쩌다 끌려온 '마른 망아지'들도 고혹적이고 색정적인 모습 보다는 허연 재를 뒤집어쓰고

머리도 감지 않아 꾀제제한 얼굴 하며 누더기 옷에는 이가 득실거리니

보기만 하여도 혐오스러워 도저히 올술에게 진상 할 수가 없었다.

고민이 된 묘청은 양주 도독으로 있는 장죽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양주 도독 장죽산은 과거 이병아의 자태에 메료되어 주제넘게 장가를 들었다가

서문경에게 곤욕을 치루었으나 운이 좋게 오랑캐에게 잡혔다가 돌팔이 의술로

올술 왕자비의 병을 낫게하는 바람에 양주 도독까지된 교활한 자였다.

장죽산은 오랑캐 왕자 올술의 힘을 등에 업고 양주의 재물을 닥치는대로 갈취하고

부녀자들을 유린하느라 하나밖에 없는 그의 물건이 말랑말랑하게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양물이 백개쯤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헛생각 까지하니 한심하기 짝이없었다.
묘청의 요청을 받은 장죽산은 교묘한 꾀를 생각해 내었다.

숨어있는 미인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여자들만의 과거시험 제도를 생각해 낸것이다.
그래서 올술 왕자의 윤허를 받은 장죽산은 도독 명의의 방을 내 붙였다.

<여인 과거 시험 공고>
아래의 사항에 해당되는 모든 양주의 여인은 과거 시험에 빠짐없이 응시하라.

첫째. 용모가 뛰어나고 시문(诗文)에 능통한 나이 열여섯 이하의 양가집 규수는

반드시  일갑(一甲) 시험에 응시하라.

둘째. 재색이 출충하고 가무와 음악에 능통한 나이 스물 이하의 아낙들은

반드시 이갑(二甲) 시험에 응시하라.

셋째. 용모와 기예를 갖춘 기녀(妓女)들은

반드시 삼갑(三甲) 시험에 응시하라.

만약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계집이 있으면 이웃의 열집까지 모두 엄한 처벌을 받으리라.
시험에 응시하지 않기 위하여 자살하거나, 얼굴에 흠집을 내는 계집이 있다면

그 집안의 삼족(三族)을 능지처참 하리라! 

        양주도독  장죽산 백(白)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