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올술은 고종이 있는 항주까지 쳐들어가

오토산 2021. 6. 26. 17:05

금옥몽(속 금병매) <160>

*장죽산은 계집 징발이 어렵자 기묘한 '여자과거시험'을 치루고

올술은 고종이 있는 항주까지 쳐들어간다.


양주의 모든 백성들은 난리가 났다.
서방 잃은 열녀 과부들은 차라리 목을 메어  자진하고 싶었으나,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참변을 당해야 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기방의 기녀들이나 양가집의 음란한 계집들은 이틈을 타서

오랑캐 황제 오걸매의 비빈이 되어 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얼굴 화장과 옷치장에 가일층 신경을 써가며 과거날이 다가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워낙 음란하고 퇴폐적인 양주땅이었던지라 과거날을 학수고대하는 여인들이

필경 열에 일곱은 족히 되었다.

드디어 과거날이 되었다.
'여과시(女科试)'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진 패가 대궐 정문에 내걸렸다.
현란한 오색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웅장한 주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양주성의 여인네들이 속속 과장(科场)으로 몰려 들었다.

요란한 복장에 화려하게 치장을 한 여인이 있는가 하면,

마지못해 가마를 타고 끌려나와 훌쩍이는 여인,

벌써부터 오랑캐 복장을 하고 희희덕거리는 기생들,

각양 각색의 응시자들은 모두 이천 오륙백명이나 되었다.

시험장 바깥의 길가에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조금더 가까이에서 보기위해 안으로 밀치고 들어가다가 시비가 붙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딸네미가 과거에 제발 떨어지기를 기도하는 선비가 있고,

데리고 있는 기생이 장원급제하기를 고대하는 기생에미도 있었다.

딸 덕분에 오랑캐 황제의 장인 노릇을 해보겠다는 가난한 집의 노파,

별별 생각을 다하며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은 수많은 인파가 한 덩어리가 되어

과거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과거 시험이 시작되었다.
오랑캐 장수 아리해아가 당상의 왼쪽에 앉고 장죽산이 오른쪽에 앉아

총감독관 노릇을 하였다.

뼈대있는 사대부집 출신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시문을 공부해 왔던터라

간단한 문장쯤이야 식은 죽 먹기로 써내는 실력이지만, 자칫 평상시의 실력을 발휘했다가는

오랑캐의 첩이나 노리개로 끌려가기 쉬운지라 적당히 뽑히지 안을 만큼 써내려고 하니

오히려 시험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반면에 어떻게 해서든 과거에 뽑혀보려는 계집들은

짙게 화장한 눈썹을 찡그리며 열심히 시상(诗想)을 떠올리다가 이윽고 긴 소매를 젖히고

섬섬옥수 하얀 손가락을 휘둘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듯 붓을 놀렸다.

장죽산은 어여쁜 계집들이 땅바닥에 멍석을 깔고 앉아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에

그만 눈이 튀어 나오고 뼈마디가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약초이름이나 조금 알고 있지 시부(诗赋) 같은 것은 까막눈이며

아리해아와 또한  다를 바가 없는지라 그의 관심은 오직 이 계집 저 계집 훔쳐보며

예쁜 미모에 쩝쩝 입맛을 다시는 일뿐이었다.

두 식경쯤 지나자 모두들 완성하여 시험감독관에게 답안지를 제출하였으나

정작 시험관이 오히려 까막눈인지라 젊은 유생을 시켜 채점하게 하였다.
다음 날 아침 과거시험에 대한 결과 방이 붙었다.

일갑(一甲) 장원은 송연(宋娟) , 이갑(二甲) 장원은 왕소아(王素娥) ,

삼갑(三甲) 장원은 유미선(柳眉仙)이 차지했다.

그 중, 송연의 문장은 양귀비(杨贵妃)와 당 현종(唐玄宗)의 사랑을 주제로 다룬 것이었는데,

절세가인의 미모도 화무십일홍(花无十日红)과 같은 것이니,

여색에 빠져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남정네들은 이를 전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뼈있는 경고의 내용이었다.

모두들 그녀의 날카로운 필봉에 감탄하여 답안 내용을 베껴갔으니 그녀의 문장은

삽시간에 양주 전역에  퍼져 글을 아는 선비나 여인네들 모두가 읽어야 하는 화재거리가 되었다.
왕소아와 유미선의 시도 시선(诗仙) 이태백이나 시성(诗圣) 두보에 필적할만한 수준이라

칭송이 자자했다.

그로부터 양주땅에서는 아들자식보다 딸 자식에게 공부를 더 많이 시켜

재자가인(才子佳人)의 명성을 얻도록 노력하는 풍습이 생겼으니

처음 과거시험의 목적과 상관없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장죽산은 시문(诗文)의 재주보다는 용모와 교태를 눈여겨 보고 마음대로 채점을 한지라,

요 계집 저 계집 다 포기하기가 아쉬워 무려 팔백명이나 뽑았다.

그리고는 뽑힌 여인들이 집에 돌아가 나름대로 불만를 품고 도망 가거나

숨어버릴 것을 우려하여 팔백명을 한꺼번에 수용 할 수 았는 거대한  도관(道观)인

경화관(璟花观)에 모두 들어오게 한 후 뽑힌 분들에게 특해를 준다는 명목하에

대문을 봉해 출입을 봉쇄해 버렸다.

수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찾아와 울고 불고 면회를 요청했지만

장죽산은 아직 시험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핑게로 일절 허용치 않았다.
경화관에 갇힌 여인들은 부모 친척이 전해준 옷과 음식 따위만을 전달받고

오로지 연경으로 가던지 올술 왕자에게 가던지 양주에 남던지 선택의 날만을

기다리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꽃같이 아름답고 제비같이 날렵하다,
풍광명미 남방 양주의 팔백 미녀들,
폭풍우에 우수수 떨어진 하얀 배꽃들,
남방의 풍속잊고 오랑캐 노리개 되네.

올술 왕자와 장죽산이 양주 여인들의 교태어린 시중을 받으며

술과 음악으로 매일같이 음탕한 환락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오랑캐 황제 오걸매는 다시 올술에게 양자강을 건너 항주로 도망친 고종을

기어이 죽이고 천하를 통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올술은 양주를 장죽산에게 맡긴 후,

다시 대군을 휘몰아서 항주로 쳐들어갔다.
그 사이 전항은 더욱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개봉을 포기하고 황제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삼군을 지휘하여 남으로 내려온 두충(杜充)은

악비 장군의 용전분투에도 불구하고 몰래 오랑캐 올술 왕자에게 투항해 버렸다.
중과부적의 악비 장군은 몇 번의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눈물을 삼키고 안휘성(安徽省) 광덕현(广德县) 으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떨어진 항주에서 안심하고 지내고 있던 고종은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 너무 심려치 마옵소서.
오랑캐들은 육전에 능한 기마병(骑马兵)들이 대부분이라 배를 타고 싸우는 수전에는 매우 약하옵니다.
게다가 이제 곧 찌는 듯한 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되오니, 추운 곳에서만 살아공 오랑캐들은

무더위를 견더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적은 절대로 장기전은 못할 것이니 폐하께서는

잠시 배를 타고 남해바다로 피신하시면 적들도 어쩌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

재상 여이호가 다시 남쪽 명주(明州)로 피신하자고 권하자,

고종은 너무 좋아하며 항주도 포기하고 큰 배를 타고 남해 바다로 도망을 쳐버렸다.

그러나 올술은 끈질겼다.
항주를 점령하고 다시 고종을 뒤쫓아 명주로 쳐 들어오니,

놀란 고종은 더욱 남쪽인 온주(溫州)로 도망갔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중국 땅은 왜 이리도 넓다더냐!
여봐라, 고종이 도망간 온주땅이란 곳은 대체 어디 붙어 먹었느냐?
그곳이 중국 땅의 끝이더냐, 아니면 그 남방이 또 있더냐?"

올술이 고종을 잡지 못해 약이 올라 호통을 쳐대니,

부하 장수들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

"아뢰옵기 항공하오나,

온주의 남방으로는 복주(福州)가 있사옵고,

그 밑으로는 천주(泉州), 조주(潮州), 광주(广州)가 있으며

다시 그 밑에 있는 섬 해남도(海南岛)가 중국 땅의 가장 남방이옵니다."

"무엇이라고?
무슨 놈의 땅덩어리가 그리도 크다더냐?"

올술은 그만 기가 막혔다.
날은 점점 더워오는데다가 수전에 약한 병졸들은 배멀미에 기진맥진하여

쓰러지는 자가 속출하였다.

북방에서 남방으로 너무 멀리내려와 보급로도 언제 끊어질지 몰라 걱정 거리였다.
올술은 할 수 없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도망치기만 하던 고종은 다시 오랑캐가 물러나자 항주로 복귀하였다.
땅덩이와 기후덕을 톡톡히 본 못난 황제 고종은 절대절명의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다시 한번 목숨을 건졌다.

올술의 십만 군사는 양자강을 건너기위하여 금산(金山)까지 퇴각하였다.
그런데 강건너 초산(焦山)에서 송나라 한세충(韩世忠) 장군이 팔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강 도하를 막고 있었다.

올술은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면서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러나 싸움이란 병사의 숫자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의 지략 병사들의 사기, 지형 무기등 여러가지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과연 곧 벌어질 전투에서는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흥미진진한 결과를 기대해본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