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66>
설간 선사는 진주 염주를 팔아 준제암을 다시 지으려 하였으나,
요진이 훔처 도망을 가버리자 낙심을 하는데,
왕행암이 가산을 헌납하여 새로 짓다.
사실 이 염주는 애시당초 설고자 비구니가 생전에
월랑이 오랑캐를 피해 피난와 있을때 시주한 그 물건이었다.
그러나 욕심많은 설고자가 불사(佛事)에 보테 쓰지 않고 몰래 불상 속에 숨겨 놓고
나중 필요시 꺼내쓰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고자는 오랑캐의 칼에 맞아 죽었고
제자 묘청과 묘취도 모르고 그냥 절을 떠나버렸으니 어쩌면 이 우연도 업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십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다시 세상에 출현하여 새로 절울 짓고
불상을 만드는 일에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아야 누가 알았겠는가!
설간 스님과 왕행암등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아마도 하늘이 이 진기한 보석을 하사해서
불사를 완성하라는 계시를 주신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설간선사(雪涧禅师)는 급히 향을 피우고 예불을 올렸으며,
같이 있던 사람들도 다 함께 큰소리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합창했다.
뜻밖에도 진주 염주를 얻은 노스님은
새로 큰 불사를 일으키기로 하고, 우선 이 보석을 잘 보관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땅히 숨겨둘만한 장소가 없어서 생각끝에 낡은 승복 한벌을 꺼내어 실밥을 뜯고
그 속에 염주를 집어넣은 다음 다시 실로 꼼꼼하게 꿰메어 표시가 나지 않게 하였다.
그때 절간에 불을 지른 요진은 처음에는 몰래 도망을 가려 했으나
수중에 땡전 한푼도 없이 이대로 도망치다가는 결국 빌어먹지 않는다면 굶어죽기 십상이라
시치미를 딱뛰고 절에 눌러있다가 시주하는 돈이라도 좀 챙겨서 도망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주 염주를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염주를 가로채서 도망가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야밤에 칼을 들고 들어가 노스님을 죽이고 이 보석을 빼았으리라 마음먹은 요진은
삼경이 되자 시퍼렇게 날이선 칼을 들고 설간 스님이 거처하는 선방(禅房)으로 다가갔다.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방안을 창밖에서 가만히 살펴보니
마침 노스님이 낡은 승복속에 진주 염주를 집어넣고 바늘로 꿰메고 있는것이 보었다.
"후후, 잘되었네.
이미 어디에 숨겼는지 알았겠다, 구태여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게 되었군.
늙은 중이 운이 좋구만!"
요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날이 밝자, 요진은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스님에게 가서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설간 스님은 어제 진주 염주도 나왔고 하니 타고난 법당이라고 해도
우선 부처님에게 공양도 올리고 독경을 해야하니 불당의 재와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라고 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이 뒷간을 치우겠다고 이야기 하며 똥통을 들고는 뒷간 쪽으로 가며
청소가 끝나면 알려달라고 했다.
"옳지, 때는 이 때다.
저 영감탱이가 뒷칸을 치려면 한참 걸리니 여유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군,
후후 하늘이 도와 주네!"
요진이 유유히 선방에 가서 방문을 열어보니
어제 밤에 본 낡은 승복이 방구석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후후, 늙은 게 제법 꾀를 잘내었네,
내가 어제 밤에 선방을 훔쳐보지 않고 하루 이틀 늦었다면
죽이고도 보석을 찾지 못해 도로아미타불이 될뻔 했군,
하늘이 내게 복을 내려 주시니 그걸 어떻게 말리겠노?"
요진은 더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성큼 방안으로 들어가 승복을 챙겨들고는
목탁 하나와 지팡이만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큰길로 가지 않고 산속 오솔길로
황급히 도망쳐 사라져 버렸다.
한편 평소에 부처님 공양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던 왕행암은
평소에도 스님들의 뒷바라지를 게을리 하지 않았건만,
고희를 넘긴 지금 까지도 부인이 일찍 죽은 후로 피붙이나 형제 한명 없이 외롭게 지내왔다.
재물은 만금을 넘는 부자였지만 어디 마땅히 쓸 데도 없었다.
그렇다고 노랭이도 아니었다
주위 이웃들에게도 선행을 많이 베풀어 칭송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자신이 역사한 준제암(准提庵)이 다시 불이나 잿더미가 되고
그 잿더미 속에서 찾은 그을린 불상 속에서 진주 염주가 나오는 기적을 목격하고는
크게 감동을 받아 전재산을 희사하여 크게 불사(佛事)를 일으켜 보고 싶었다.
결심을 굳힌 왕행암은 설간 선사를 찾아가 불사할 생각을 밝히자,
안그래도 요진이 자신의 낡은 승복 아니 진주 염주를 훔쳐 도망가
이젠 불사를 할 돈도 없어 그에 대한 낙담을 하고 있다가
아침 공양을 마치고는 요진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왕행암이 느닷없이 찾아와 불사를 하겠다고 하자
모두 다 이것이 부처님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왕행암은 준제암에서 집으로 내려와 동네사람들 중에
불교에 뜻이 있는 신도들을 불러 자기집에 모이게했다.
"여러 이웃 불자님들도 아시다시피,
암자가 불에 타 다시 새롭게 지으려 하는데 거기에 드는 돈을 금방 모으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평생 모아 둔 재산이 조금 있지만, 마땅히 재산을 남겨줄만한 혈육도 없고,
또 어디 따로 쓸 데도 없는지라 부처님의 뜻에 따라
불에탄 암자를 새로 건축하는데 쓰려 합니다.
오늘 여러 처사님들을 이렇게 오시라 한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금전. 양곡과 가축등을 여러분께서 장부를 만들어 주십사 하고
확인 부탁드리려 한 것입니다.
어차피 저 혼자서는 암자 건축의 공사를 다 관여할 수 없으니
여러분이 서로 분담하여 각 공정별로 감독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각 종목별 기술자와 인부를 모아 오는사람, 목재나 재료를 조달하는 사람,
일꾼을 관리하는 사람 불상, 단청등 툭수한 기능공을 섭외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공사에 필요한 비용은 제가 얼마가 되든지 지불할 것입니다.
한해를 목표로 새 불전이 만들어 지도록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봅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모두가 보람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왕행암은 곧 재산 관리인 두명을 불러 창고 하나하나를 열고는
창고 목록과 대조 재산 기록을 오늘 온 처사들에게 확인하게 했다.
창고문 하나를 열자 하얀 은전 누런 금전이 쌓인 상자와 희귀한 보석들이 서랍에 가득했다.
어떤 창고는 비단 옷감이 무명 옷감들이 층층이 쌓여있기도 했으며,
고색 창연한 골동품이 진열된 창고가 있는가 하면,
뒷켠의 창고에는 각종 곡식들이 몇년을 먹어도 못 먹을 만큼 쌓여 있었다.
그리고는 가축의 목록과 논 밭 임야등 부동산의 장부도 내 놓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재산이었다.
왕행암은 재산을 삼분(三分)하여, 하나는 새 불당을 짖는데 쓰고, 또하나는 빈민 구제에 쓰고,
그리고 나머지는 저의 생활비와 함께 집안일을 하는 분들과 먼 친척들 을 위한 양육비로 내놓았다.
모인 처사들은 왕행암의 통큰 결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윽고 이웃 사람들은 각자 맡은 일을 분담해서 공사를 착수했다.
모두 신바람 나게 자기 맡은바 소임을 다하자,
이웃 마을에서도 준제암 새불사 소문을 들은 불자들이 몰려와
남자 거사 들은 잡일을 거들고 여자 법사들은 부엌일과 세탁등
아낙네들의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였다.
불사를 시작한지 반 년이 지나자 웅장한 대웅전이 모습을 들어내고,
대웅전 안에는 단향(檀香) 비로불상(毗卢佛像)을 모셨는데 전에 타버린 불상보다 두 척이나 더 높았다.
그밖에도 선당(禅堂) ,경각(经阁), 천왕문(天王门), 일주문(一柱门)도 새로지어 단청을 하여 놓으니
아름답고 번쩍번쩍 하였다.
설간 스님은 절이 완공될 때까지 불사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절이 점차 완성되어가자 설간 스님은 자신이 늙어 이제는 더이상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
개봉(开封)에 있는 상국사(相国寺)의 성랑(性郎) 스님에게 인편을 보내 모셔와서 새로지은 준제암을 맡겼다.
왕행암은 또 자신이 살고 있던 집까지 암자로 개조하여
관음보살을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공양을 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설간 스님과 이웃 불자 신도들을 불러와
몇마디 유언을 남기고는 합장을한 자세로 극락왕생을 하였다.
화장을 한 그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수습하여
준제암 뒷편에 사리탑을 세우고 안치해 주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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