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78>
월랑과 소옥은 효가와 기막힌 상봉을 하였으나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욕을 하며 쫒아 보내고 만다.
날이 밝았다.
소옥에게 어제밤 도둑이 든 것이 아니라 요공은 비구니가 아니라
사미승이 변장을 하고 기도나 암자에 묵으러 온 부녀자를 겁탈 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것 같다며 자신을 겁탈 하려해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은 일행은 화도 났지만 타향에서 잘못하다가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짐을 챙겨서
아침 공양도 하지 않은채 암자를 떠났다.
그러자 암자의 노 비구니는 요공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랑일행이 떠나는 것을 본뒤 거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지거리를 해되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촌년들이 스님행세하며 남의 암자에 굴러들어와서는
따신밥도 주고 잠자리까지 제공하였는데 한밤중에 도둑질 까지 해?
내 당장 뛰어가서 관아에 고소해서 혼이나게 해버릴꺼야!"
억지 땡깡을 부리는 그 비구니의 말에 화가 치밀었지만 괜히 시비에 휘말려,
가는 길에 차질을 빗을거라 모두 꾹 참고 암자를 나와 큰 길로 들어셨다.
이제는 다시는 이 곳의 비구니나 중들을 믿지 말아야 겠다고 맹세하였다.
드디어 일행은 영파(宁波)의 정해(定海)지방에 이르렀다.
만경창파 드넓은 남해 바다가 은빛 햇살을 받으며 넘실거리고 있었다.
사흘이 지나도록 맞은 편의 육지로 건너갈 배는 출항하지 않았다.
건너갈 사람들이 배의 전 좌석을 다 채워야 출항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육지로 돌아서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달이 걸릴지 반년이 걸릴지 모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네째되는 날에 겨우 좌석이 다 채워져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공들이 부적을 바다에 던지고는 무사히 건너가기를 빌었다.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염불을 외우며 무사히 목적지에 닸게 해달라고
부처님의 공덕을 기렸다.
배는 순탄하게 반대편 육지를 향하여 서서히 미끄러져 갔다.
한편 한 발 앞서 남해에 도착한 요공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 곳에 어머니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설사 계신다 하더라도
이 드넓은 땅에 크고 작은 절이 이백개를 헤아리니 어떻게 찾아낸다는 말인가?
또 대안이 어머니 일행과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극적으로 만난다 하여도 알아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생각 저 생각 여러생각을 하던 요공은 묘안를 생각해 내었다.
작은 판자에 '요공이 동냥을 구함(了空化斋)' 라고 써서 목에 걸고 다니면
처음보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요공이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요공은 절간으로만 다니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면
혹 어머니 일행에게도 전달이 되어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바로 목판에 글씨를 써서 염주와 함께 목에 걸고 다녔다.
요공이 그렇게 에미를 찾아 다닐때 월랑 일행은 이미 남해를 건너와 한 민가를 빌러 묵고 있었다.
월랑은 늙은 스승이 여로에 지쳐 피곤해 하는 까닭에 며칠 동안 쉬면서 심신을 다지기로 하였다.
그동안 도인 복장을 한 대안이 동냥을 하면서 요공의 행적을 탐문하고 다녔다.
동냥나간 대안이 저녁무렵까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된 소옥이 대문밖에 나가 대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꾀제제하고 누더기 승복을 입은 사미승 하나가
문밖에 서성이고 있는 소옥에게 다가와 힘없이 말을 해왔다.
"아미타불!
사람을 찾아 남해에 왔으나
오늘은 날이 저물어 절간을 찾지 못하여 하루밤 묵게 허락해 줄 수 없나요?
소승은 나뿐 사람이 아닙니다."
글을 어느정도 읽을 줄 알던 소옥은
무심코 사미승 목에 걸고 있는 판자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올랐다.
'요공화재(了空化斋)'라고 쓴 글자를 보았던 것이다.
순간 소옥은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은 효가의 법명이 '요공(了空)' 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자가 남해로 오던중 조그만 암자에서 자기를 겁탈하려 하였던 가짜 비구니 요공이
남해까지 따라가 헤꼬지 하겠다더니 정말 사미승으로 변장하고 남해까지 쫒아 온 것으로 생각하여
비명을 지르며 안으로 달려 들어가 월랑에게 알렸다.
"이 나쁜 놈!
네놈이 무어라고 여기까지 쫒아와!
어서 꺼지지 못해!"
뛰어나온 월랑이
영문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던 요공에게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다.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을했다구 이러시요?
싫으면 그만이지, 이게 무슨 날벼락이요?"
어찌 바구니가 그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그렇게 함부로 퍼부어 댄담.
참 이상한 일이네.
요공은 속으로 투덜대며 쭈볏쭈볏 물러나서 아무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막힌 그렇게도 바라던 모자 상봉이었다.
그러나 월랑이 아무리 제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해도 일곱살의 효가가
벌써 열일곱에 장성한 스님이 되어 있으니 어떻게 효가 요공을 알아볼 수 있었겠는가?
거기다가 남해로 오던중 전염병에 걸려 얼굴이 반쪽이 될 정도로 홀쭉해졌으니
대안이가 있었다 해도 몰라 볼뿐 하였으니 월랑이 알아본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더군다나 요공도 마찬 가지였다.
헤어질때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머니의 모습은 오로지 자식찾기에 애닯아 폭싹 늙어버린 모습은
전과는 전혀 딴판인 할머니 모습이었던 것이다.
대안은 밤이 이경이 되었을때에 쌀 다섯 되를 손에 들고 싱글벙글 거리며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중나온 소옥에게 말했다.
"아이구,
오늘은 아주 재수가 좋은 날이야,
마침 불공 드리는 집에서 대접을 잘해 주더라고, 이렇게 동전 백닢까지 주더라니까."
그리고는 집안에 들어와 월랑에게 말했다.
"도련님에 대한 희소식이 있어요!"
"무슨 일인데?"
"불공을 드리는 집 사람들에게 혹시 남해 어느 절에 요공이라는 젊은 스님이 계시는지 물어보았더니,
아 글쎄 그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요사이 자주 이곳에 동냥오는 요공이라는 스님이 계시는데,
목에 '요공화재'라고 쓴 팻말을 목에 걸고 다니면서 모친의 행방을 수소문 하고 다닌다고 했어요.
제가 도련님 하고 마님을 찾으려 처음 나올때 만약 정 찾지 못해 만남을 못가진다면
남해 낙가산에 가서 관세움보살님의 불력에 희망을 가져보겠다고 했었어요.
아마 남해에 오긴 오셨나 봐요?
소인이 내일 일찍 일어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찾아보겠습니다.
목에 팻말을 걸고 다닌다고 하니 쉽게 찾을 겁니다."
"어머, 이일을 어쩌나!
참, 도련님 법명도 요공이었지?
이 일을 어째!"
대안의 말이 끝나자 마자 소옥이 펄쩍 뛰며 안타까워했다.
대안이 영문을 몰라하자,
옆에 있던 노 비구니 스님이 한숨을 쉬며 설명해 주었다.
"오늘 저녁 무렵에 방금 자네가 말한 그 요공이란 스님이 와서는
하루밤 잠을 재워달라고 물어왔다는 구만.
그런데 자네 처가 일전에 소흥부(绍兴府) 암자에서 당한 일 때문에
가짜 비구니 요공이 쫓아온 줄 알고 욕을 해대서 쫒아버렸다네."
"뭐라구?
아니, 그렇게 찾던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왔는데 욕을해서 쫓아보내?
이 여편네가 정신이 있나 없나?"
대안이 펄펄 뛰며 마누라 소옥에게 야단을 쳤다.
소옥은 남편에게 욕을 먹어서가 아니라 찾아온 효가 도련님을 못알아 보고
쫓아보냈다는 자책감에 얼굴울 파묻고 흐느꼈다.
너무나도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월랑은 멍하니 눈물만 흘리고 있다가 대안에게 말했다.
"그만 하게,
어미인 나두 나가서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같이 욕을 했는데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이 상한 월랑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쳤다.
대안은 동이트자 마자 요공을 찾으려 집을 나섰다.
요공은 어머니를 찾기위해 동분서주 하였으나 찾을길이 없자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되어 산 속에 들어가
고행을 해서 부처님을 감동시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요공이 어머니를 만났으나 서로 알아 보지 못하고
어머니와 소옥에게 욕을 먹고 쫓겨난 그날 밤이었다.
요공은 커다란 나무 밑의 바위에 좌선(坐禅)을 하고 앉아 잠을 청하였다.
아무리 남방이라 하나 계절이 이미 초겨울에 접어들었는지라 산속의 밤은 무척 추웠다.
밤이 깊어지자 산속 여기저기에서 이름 모를 산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조그마케 들려오던 늑대의 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 오기도 하였다.
뱀이 지나가는지 풀을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맹수들의 울부 짖음도 어머니를 찾고야 말겠다는 요공의 굳건한 고행길을
방해 하지 못했다.
길고 긴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새벽이 찾아왔다.
공포의 밤을 무사히 지낸 요공은 부처님의 가호가 반드시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자
다시 한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추위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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