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월랑은 사월초파일에 소원 불공을 드리려 감로사에 갔다가

오토산 2021. 7. 14. 23:57

금옥몽(속 금병매) <176>

*월랑은 사월초파일에 소원 불공을 드리려 감로사에 갔다가,

여혜 스님으로 부터 요공의 소식을 듣는다.

배에서 내린 월랑 일행은 노 스님을 따라 감로사로 갔다.
감로사는 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과연 유명한 고찰답게 각종 누각과 대전이며 암자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월랑 일행은 요공을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그 장관을 눈여겨 볼 겨를이 없었다.
우선 대웅전으로 가서 부처님께 간단히 예불을 올리고 재당(斋堂)으로 들어갔다.
재당에는 이백여명이나 되는 많은 스님들이 때마침 공양을 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서오세요.
여기 앉아서 공양 하시구려. "

한 승려가 월랑 일행에게 자리를 내 주었지만 그저 여기 둘러보며 효가 아들 모습 찾기에 바빴다.
대안도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요공을 찾아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요공은 보이지 않는지라 대안이 난감해 하고 있는데, 

같이 배를 타고 왔던 노스님이 쌀자루를 어깨에 메고 뒤뚱 거리며 들어오고 있어

얼른 다가가 쌀자루를 받아 메면서 물었다.

"스님 배에서 말씀하셨던 요공 스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아, 그 스님이?
그 스님이야 관리 일을 하는 분인데 여기서 찾으면 계실 까닭이 없지,

쌀 자루는 저기 갔다 두시고 날 따라 오시오."

노승이 일행을 데리고 간 방은 매우 정갈하게 정돈된 선방(禅房) 이었다.
노승이 그 스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하며 나간 사이에 월랑은

벽에 걸린 관음출산도(观音出山图)를 바라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선방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니

지위가 꽤 높은 모양이지?"

조금있으니 한 사미승이 차 네 잔을 들고 즐어왔다.
곧 방장(方丈) 안에서 운판(云板)을 두두리는 소리가 들리며

네명의 사미승이 한 법사를 모시고 나왔다.

하얀 백발에 차가운 별빛처럼 빛나는 눈빛의 그 고승은

온 몸에 범접할 수 없는 의연한 기상이 넘쳐 흘렀다.

"소승이 바로 보공(宝公)이오.
비구니 스님께서는 소승에게 무슨 가르침이 있으신지요?"

월랑은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그저 어리둥절하고만 있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같이 왔던 노스님이 가는 귀가 먹어 '요공 과 보공' 을 혼동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털어놓기가 민망스러워 쭈뼛대며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등에서는 공연히 식은 땀까지 흘러내렸다.
보공 스님도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아미타불!
무슨 사연인지 모르오나 소승은 괜찮으니 솔직하게 말씀하여 주시지요?"

"소승은 회안 호심사 근처에 있는 조그만 암자 관음당의 비구니 입니다.
고승의 고명하신 설법이 유명하길래 한번 가르침을 받고자 온 것입니다."
월랑의 사부 노 비구니가 말을 돌려대며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했다.

"허허!
가르침을 얻고서야 승려가 될 수 있는 법이거늘,

이제와서 어찌  이제 다시 가르침을 받겠다 하시오?
여기 이 비구니 스님은 필시 노 비구니 스님의 제자인듯 싶은데,

사연이 많아 보이는 구려."

"전란통에 아들을 잃고 불가에 귀의한 가엾은 비구니 지요.
남해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그 소식을 알고자 하니

보공 스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기바랍니다."

노 비구니 스승이 다시 간청하자,

보공 선사는 묵묵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선방에는 한참동안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리는 침묵이 계속 되었다.
보공 선사는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을 떳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우리들의 만남이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구려.
이 비구니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산동 청하현 서문 집안의 오씨 마님이 맞지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월랑이 깜짝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공 선사를 바라보았다."

"소승은 과거 보살님을 한번 뵈온 적이 있지요.
전에는 법명을 설간(雪间)이라 불렀소."

알고보니 이 스님은 바로 준제암의 설간 노 스님이었다.
당시 왕행암이 준제암의 불사를 완공시키고 극락왕생하자,

설간 스님은 개봉 상국사의 성랑(性郎) 스님을 모셔와 맡기고는
요혜가 훔쳐 도망간 진주염주를 찾으려 남해로 길을 떠났던것이다.

그러다 오랭캐 올술과 송나라 한세충 장군이 양자강 도강을 두고 혈전을 벌이는 바람에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이곳 감로사에 머물다

주지 스님의 권유로 법명을 보공으로 바꾸고

전쟁중에 죽은 원혼(寃魂)을 위로하는 위령제(尉领斋)를 주야로 집전하고 있었다.

"아니 그럼 제가 아기를 가졌을 때

출가를 한다고 예언 하셨던 바로 그 스님!"
월랑이 너무나 기이한 인연에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에 바로 소승이 맞습니다.
이제 모든 업보가 가까웠으니 모자 상봉의 그날이 곧 다가올 것이오.
그리 알고 기쁜 마음으로 길을 떠나도 좋을것 같습니다."
월간 스님의 말에 모두 고무되었다.

그날 밤에는 월랑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치다가

날이 밝자 공양을 마치자 마자 남쪽을 향해 바로 길을 떠났다. 
한편 감로사에서 이틀이나 묵었던 요공이지만 어머니의 소식은 고사하고

같은 절에 있는 스승 설간 스님도 만나지 못하고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나고 말았다.

소원을  꼭 한가지는 이루어 준다는 남해 낙가산에 가서

어머니를 찾게 해달라고 관음보살께  불공을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진강 땅과 단양(丹阳)을 지나갈 무렵이었다.
절간이 없으면 동냥질로 끼니를 잇고  밤에는 묘당을 찾아 잠을 자며 고행길을 걷던 요공은,

원래부터 강남땅은 비가 바주와 날씨가 무덥고 습한데다가 오랜 고행길에 몸이 쇠약해져

그만 전염병에 걸려버렸다.

거기다가 물까지 갈아 먹다 보니 구토에 배탈까지 몸에 왔다.
낡은 묘당안에 누워 몸을 추스러 보았지만

고열에 땀까지 많이 흘리고 아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갈증에 물이라도 먹어야하는데 배탈이 나 먹을 수가 없으니

이젠 고열에도 땀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 지나자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 하니 이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이승에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들자 가슴에서 서글픔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러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자 요공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정신은 혼미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요공의 상반신을 부축하여 주고는 입에 시원한 물을 넣어 주는것이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입에 흘러 들어오는 물은 아주 시원하고 달콤했다.
그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요공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엷은 미소를 띤 관음보살께서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오색 구름을 타고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요공은 몸을 움직여 보니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고열도 사라지고 언제 아팟드냔 듯이 날아갈듯 했다.
요공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참선을 시작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