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누상촌을 떠나는 청년 유비

오토산 2021. 9. 16. 21:00

삼국지(三國志) (3)
누상촌을 떠나는 청년 유비

황건적의 난동으로 나라가 어지러움에도 불구하고

소년 유비는 탁현 누상촌에서 낮이면 돗자리를 짜거나 무술을 연마하며,

밤이면 글을 읽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서,

어느덧 그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 되었다.

이제는 소년이 아니라 체구가 늠름하고 눈이 이글거리는

당당한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어느 봄날 아침.
이날도 유비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돗자리를 짜고 있는데,

언제나 일찍 일어나시던 어머니께서

웬일인지 이날따라 늦게까지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한 유비는 돗자리를 짜다 말고 방문앞으로 가서,

"어머니 오늘은 어디 몸이 불편하십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방안에서는 이내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이 나온다.

"현덕아 !

이리 좀 들어오너라 ! "

유비가 어머니의 부름에 따라 방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직까지 주무시고 계시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아랫목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늦게까지 방안에만 앉아 계시니 웬일이세요 ?"

"현덕아,

거기 좀 앉거라."

유비가 어머니 앞에 공손히 앉자,

이미 칠십이 다 된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오랫동안 그윽하게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현덕아 !

내가 너한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네가 내 말을 들어주겠느냐 ?"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소원이시라면 제가 무슨 말씀인들 안 듣겠습니까 ?"

"네 효성이 지극한 것은

나도 잘 알고있다."

"무슨 소원이신지

어서 말씀해 보세요."

"음 ......"
어머니는 사랑이 넘치는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보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이제는 칠십을 바라보고 있어서 앞으로는 오래 살 것 같지도 않구나.

그래서 죽기 전에 입에 맞는 차(茶)를 한번 마시고 싶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젊어서부터 차를 좋아했느니라."

"네,

어머니가 차를 좋아하시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직까지는 차다운 차를 한 번도 마셔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죽기전에 낙양(洛陽)에서 가져오는 상품차(上品茶) 맛을 한 번 맛보고 싶은데,

네가 나를 위해서 그 차를 좀 구해 올수 있겠느냐?"

어려운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주문이었다.

낙양에서 가져오는 극상차는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값 또한 비싸기가 짝이 없어서

유비같이 가난한 사람은 도저히 손에 넣기가 어려운 차였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유비는 어머니가 차를 좋아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생전에 극상차를 한 번 대접하려고,

어머니도 모르게 얼마간의 돈을 모아 오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만한 돈으로 극상차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런가 ?

 

그렇다고 효성이 지극한 유비로서

어머니의 소원을 못 들어드리겠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 ! 염려 마십시오.

제가 어떡하든지 어머니 입맛에 맞는 차를 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고마운 일이로다.

그러면 오늘로 길을 떠나거라."

"네,

아침을 먹고 곧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

어머니는 말없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들을 불렀다.

"애,

현덕아 !"

"네 ?"

"너 지금 돗자리를 짜고 있었지 ?"

"네 밖에서 짜고 있었습니다."

"네가 짜고 있던 돗자리를 이리 들여 오너라 ! "

유비는 두말없이 밖으로 나와,

절반쯤 짜다 둔 돗자리를 틀에 매어둔 채 방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어머니 왜그러십니까 ?"

"....."

어머니는 대답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 속에서 검을 들어내었다.

언젠가 소년 유비에게 설명해 주었던 조상님께로부터 물려 오는 유서 깊은 검이었다.

어머니는 그 검을 칼집에서 뽑아내어,

앞에 놓여있는 돗자리의 줄을 말없이 <탁 ! > 끊어 버린다.

"앗 ! 어머니 !

왜그러세요 ?"

유비는 깜짝 놀라며 어머니를 쳐다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조용한 표정으로 검을 칼집에 넣어 아들에게 내어주며 말한다.

"자,

길을 떠날 때 이 검만은 꼭 차고 가거라.

너는 이 검에 달려있는 거룩한 정신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네,

검이 가지고 있는 정신은 분명하게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돗자리를 쓰지 못하도록 줄을 끊어버리신 뜻은 어디 있사옵니까 ?"
유비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음....,

네 나이가 이미 스물네 살.

너는 이 누상촌 구석에서 돗자리나 짜고 있을 인물이 아니다.

세상이 하도 어지러우니,
이제는 그동안에 생활을 청산하고

차도 구해 올 겸 세상 구경이나 하고 돌아오너라.
다시 돌아오더라도 혼탁한 세상을 구해야 될 일이지,

행여 돗자리를 짤 생각은 하지 말거라."
유비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다시 한번 머리를 수그렸다.

"어머니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거라."

"예,

그러면 저는 길을 떠나겠습니다만,

제가 길을 떠나게 되면 빨리 돌아오지는 못 할것 같은데,

그동안 어머니는 혼자 어떻게 지내시겠습니까 ?"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다녀오너라."
유비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 산 너머에 사는 주랑(朱郞)이에게

제가 없는 동안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도록 부탁을 하겠습니다."

"네가 안심이 안 된다면 그애를 데려 오려무나...

어쨌든 너는 지체 없이 오늘로 길을 떠나도록 해라."

유비의 어머니는 어째서 사랑하는 아들을 어지러운 세상으로 내보내려고 했을까 ?
그는 과연 극상품의 차를 마시고 싶어서 아들에게 먼 길을 떠나라고 했을까 ?

아니다 !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장차 큰일을 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경험하도록 길을 떠나 보내려는 것이었다.

지금 세상은 황건적으로 인해 극도로 어지럽기 짝이 없건만,

누상촌에서 돗자리나 짜고 있는 아들 유비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벌서부터 아들을 세상에 내보내려는 뜻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인정에 이끌려서 오늘날까지 미루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어젯밤에는 놀라운 꿈을 꾸게 되었다.

새벽 꿈에 ....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깊은 산골 길을 외로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바라보니,

저 멀리 들판에서는 전쟁이 벌어졌는지 아우성과 고함 소리가 연실 들려오고 있었다.

유비가 그 소리를 듣고,

"어머니 !

제가 저기로 달려가서 싸움을 말리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어머니는 아들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으면서 이렇게 꾸짖었다.

"이애야 !

네가 이 늙은 어미를 버리고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 ! "

그러자 그때, 어디선가 우뢰 소리가 "우르르" 울리며 하늘이 진동하는 듯 싶더니,

홀연 면류관(冕旒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은 오 대 조상 경제(景帝)가 구름 속에 나타나며,

"이애,

현덕 어미는 듣거라 !

네가 왜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 주지를 않느냐.

지금은 세상이 어지러워 그애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도다.

너는 하루라도 빨리 그애를 세상에 내보내도록 하거라 ! "하고

점잖게 호령을 하는 것이 아닌가 ?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 보니. 황망한 꿈(夢)이었다.
유비의 어머니는 새벽에 그런 꿈을 꾸었기 때문에,

한참을 생각한 끝에 드디어 오늘 아침에는 아들을 보다 큰 세상으로 내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차를 구해 오라고 한 것은 집을 떠나게 하려는 구실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지난 밤 꿈 이야기를 아들에게 하지 않은 것은,

혹시라도 아들이 꿈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교만해질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은 유비는 허리에 검을 차고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등에 짊어 지고,

집을 나서며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였다.

"어머니 !

그럼 길을 떠나겠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두세 달은 걸려야 돌아올 것 같으니,

그동안 몸조심하십시오."

"오냐 !

내 걱정은 말고 잘 다녀오너라.

한번 집을 나섰으니 세상을 골고루 돌아보고 오너라."

"그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유비는 어머니에게 두 번 절하고 누상촌을 나섰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스물네 해 만에 처음으로 떠나 보는 먼 길이었다.
길을 떠난 그 날은 벛꽃이 만개한 화창한 봄날이었다.

청년 유비는 허리에 검 한 자루를 차고 걸음도 씩씩하게,

황하(黃河)를 향하여 남으로 남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상촌에서 나서 누상촌에서 자란 청년 유비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너무도 넓어만 보였다.

("아아,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도 넓은데,

나는 이제까지 너무도 좁은 곳에서만 살았구나 ! ")

유비는 넓고 넓은 들을 바라보니,

갑갑하고 옹졸하던 마음이 한꺼번에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때는 춘시절(春時節)이라,

산마다 꽃이 피고, 들에는 푸른 곡식이 힘차게 자라고 있었다.
유비는 산천경계를 유감없이 즐기면서 걸음을 유유히 옮겼다.

그렇게 어느 촌락을 지나갈 무렵,

어디선가 예사스럽지 않은 인기척이 나더니 별안간 등 뒤에서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게 섯거라 ! "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가슴에 관리의 표찰을 단 무장 군인 두 사람이 유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놈아 !

너는 어디 사는 놈이냐 ?"

"탁현 누상촌에 사는 사람입니다."
유비는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공손히 대답하였다.

"누상촌에서 뭘 해 먹는 놈이냐 ? "

"돗자리를 짜서 생활하는 사람이올시다."

"돗자리를 짜 먹는 놈이 무슨 일로 검을 차고 다니는게냐 ?"

무장 군인중에 한 사람이 유비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더욱 공손한 대답을 한다.

"이 검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물려 주신 유물이옵니다."

"허어,

검 자루에 황금 문양(黃金紋樣)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보통 검이 아닌걸 ! "

두 군인은 검을 어루만져 보면서,

아까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소리로 다시 물었다.

"네 이름은 뭐냐 ?"

"성은 유가이고,

이름은 비올시다."

"허어....

성이 유씨라고 ?

탁현에 사는 유씨라면 제법 양반의 집안이군 그래 !
내 고향도 그 부근이다."
군인 하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요즘 황건적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데,

젊은 사람이 왜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거냐 ?
이 부근 일대에는 어젯밤에도 황건적의 약탈이 심했기 때문에

오늘은 경계가 삼엄하니까,

괜히 욕보이지 않도록 빨리 돌아가도록 하거라...."
군인 하나가 그렇게 좋은 말로 타일러 준다.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것을 잘 알아듣고 속히 행선지로 가보겠습니다."

유비는 정중히 인사하고 다시 남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황건적이라는 도둑의 무리가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여,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소문을 유비도 들어 알고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무장 군인들이 백주에 지나는 행인을

일일이 검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들의 행패가 심한 줄은 몰랐다.

(황건적의 행패가 그처럼 심하다면,

백성들은 공포에 떨게 될 것이 아닌가 ?)

무엇보다도 먼저 걱정되는 것은 백성들의 고통이었다.
산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들에는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날씨조차 온화한 이런 화창한 봄날에,
무고한 백성들이 도둑놈 무리에게 시달려야 한다니,

세상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

(내 힘으로 그 도둑놈들을 없애 버릴 수 만 있다면 ....)

유비는 저도 모르게 검을 움켜 잡으며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이날 저녁 유비는 어느 농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주인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어서 유비를 친절하게 대해 주면서,

"모처럼 우리집을 찾아온 손님인데,

아무것도 대접할 것이 없구려."하고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것이었다.

"아니올시다...

그런데 댁에서는 생계가 곤란하신가 보지요 ?"

유비는 하룻밤 신세를 지는 집의 규모나 크기로 보아서는

곤궁하게 지낼 것같지 않아서 물어보았다.

"몇 해 전만 하여도 제법 넉넉하게 살았었죠.

그런데 근래에는 황건적의 등쌀이 어떻게나 심한지

한 달이 멀다하고 재물을 빼앗기는 바람에,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오."

"황건적의 행패가 그렇게도 심합니까 ?"

"말도 마시오. 한 달 전에도 한 번 다녀갔으니까,

또 언제 올지는 모르오....

어쨌든 그놈들이 없어지기 전에는

어느 백성이라도 마음놓고 살 수가 없을 게요."

"관군들이 그들을 없애지는 못하나요 ?"

"관군이 황건적보다도 힘이 약한 것을 어떡하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황건적을 소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천자가 될 수 있을거요."

(음...

황전적을 때려부수는 사람이 있면

그 사람이 천자가 될 수 있다...?)

이날 밤이었다.

유비가 곤하게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만,

십여명의 장정들이 손에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대문을 박차고

안마당으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횃불 빛에 바라보니,

그들은 저마다 머리에 누런 수건을 쓰고있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황건적이라는 도둑들의 행패를

오늘밤에는 유비 자신이 몸소 당하게 된 것이었다.

4회에서~~~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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