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황건적들의 악행

오토산 2021. 9. 16. 21:01

삼국지(三國志) (4)
황건적들의 악행

몰려든 황건적들의 소란에 주인 내외가 문을 열고 내다보니,

건장한 놈이 대뜸 주인 내외를 마당 한복판으로 끌어내린다.

주인 내외는 양같이 온순한 사람들이건만,

의외로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

(저런 죽일 놈들이 있나 !

양같이 순한 저 사람들을 ...)

유비는 문틈으로 바깥 광경을 내다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황건적 일당들은 인정사정없이 주인의 등을 창대로 후려갈기며,

"이놈아 !

우리가 누군지 알거든 가진 것을 모두 다 내놓으란 말이다 ! "하고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주인이 공손한 어조로 말한다.

"저희가 쓸만한 것이 있어야 말이죠.

보시다시피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는 없는 걸입쇼."

"뭐 어째 ? 이놈아 !

쓸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구 ?"

생김생김이 우악스러워 보이는 대장인 듯한 황건적 한 놈이 주인을 윽박지르더니,

이번에는 주위의 부하들을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죄다 가지고 나와 ! "하고

냉혹한 명령을 내린다.

십여 명의 도둑놈들은 명령에 따라 뿔뿔히 흩어져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유방은 웃방 바람벽에 바짝 달라붙어서 그들의 정세를 엿보고 있었다.

(만약 저놈들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

허리에 검을 차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쏜살같이 달려나가,

모조리 죽여 없애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옛날 어머니가 검을 물려주실 때,

"이 검은 한나라의 황실 정신을 상징하는 검이다.

백성을 무력으로 다스리라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격멸하는 데는 추상같이 준엄하고 양민을 보호하는 데는 어버이같이 자애로우라는 검이다.

후일 네가 큰인물로 성장할 때 까지는 이 검이 지니는 고매한 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

유비는 그때에 다짐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나가 도둑의 무리와 싸워야할 지 모른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황건적 무리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몇 놈만이 아니다.

그들은 개미떼 처럼 수도없이 많은데다가 가는 곳마다 행패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몇 놈을 죽여보았자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 ?

유비는 몇 놈의 도둑을 때려잡기 위해 나서기 보다는 천하를 구할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만약 도둑들에게 발각되면 어쩔 수 없이 대항할 마음을 먹고

일단은 숨어서 지켜보기로 하였다.
아랫방에서는 도둑들이 부산스럽게

장롱과 벽장을 뒤지는 모양이었다.

"제길헐 ! ...

이놈의 집구석에는 도대체 쓸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구나 !"하며

저희들끼리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곳간에 들어갔던 도둑들도 마당으로 나오며,

"두목님 !

곳간에 있는 것이라곤 겨우 옥수수 몇 됫박 밖에는 없는 뎁쇼.

그것이라도 가져갈까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유비는 그 소리에 귀를 바짝 기울였다.

두목이란 자가 어떻게 대답할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둑이라도 그들에게 양심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설마하니 식량을 쓰려고 둔 몇 됫박 안 되는 옥수수마저

가져가자고 말하지는 않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목이란 자는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가져가기로 할까요가 무슨 소리야 ?

우리가 이 집에 인정을 베풀러 왔다는 말이냐 ?

옥수수 몇 됫박은 재물이 아니더냐 ?"

두목이란 놈은 화를 벌컥 내면서

씹어 뱉듯 말하자 부하의 당황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이것까지 가져가면 이 집에서 당장 끼닛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죠."

"아가리 닥쳐 !

그런 걱정까지 해 주려면 도둑질을 어떻게 하자는 거야 ?"

무서운 소리였다.

피도 없고, 눈물도 없는 악날한 소리였다.
유비는 잔학무도한 황건적의 참된 모습을 이제야 생생한 목격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내가 오늘 이 집에서 자게 된 것은,

하늘에서 나로 하여금 저 잔학무도한 황건적의 무리를 쳐부수고,

선량한 사람들을 도탄 속에서 구하라는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 )

유비는 도둑놈들의 동태를 경계하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안방을 살펴 보았던 도둑놈이,

"이거 정말 형편없는 집구석이구먼 !

웃방에라도 뭐가 없을까 ?"하고

다른 놈에게 투덜거리자,

한 놈이 대꾸한다.

"안방이라고 없는 쓸만한 물건이 웃방이라고 있겠나 ?

그냥 나가기는 안됐으니, 방문이라도 한번 열어 보기로 하세 !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비가 등을 바짝대고 서 있는 방문이 탕 ! 하고 열리더니,

횃불이 확 들어오는 것이다.

유비는 바람벽에 착 달라붙은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에 도둑들의 눈에 발각되는 날이면 부득이 놈의 목을 잘라 버릴 각오로,

검을 바짝 움켜 쥔 채로,

그러나 도둑들은 얼굴도 들이밀지 않은 채,

횃불만 한번 휘익 비쳐보더니,

"역시 빈털털이야 ! "하고 중얼거리며,

그냥 마당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유비는 이렇게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윽고 도둑놈들이 안마당에 모두 모여들었을 때였다.
두목이라는 자가 주인을 보고,

"이놈아 !

이렇게 가난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우리들을 따라 다니며 심부름이나 하면서 얻어먹을 일이지,

뭣하러 이런 고생을 하는거야."하고 나무랐다.
주인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한다.

 

"소인이야 어디,

그만한 담력인들 있어야합지요."

"허기는 너 같은 놈은 내 부하가 될 자격도 없을거야 ! "
도둑놈은 씹어 뱉듯이 말하고 나서,

부하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자,

이 집에서는 허탕을 쳤으니 이제는 다음 마을로 가자 !

이왕 나섰으니 밤잠을 못 잔 값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나 ?"

황건적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유비는 부리나케 마당으로 뛰어나와 주인을 부등켜안았다.

"주인장 !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주인은 안방으로 들어가자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뭘요.

나는 그놈들의 행패에 여러 번 당해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도둑놈들을 겁내는 것도 쓸 만한 것이 있을 때야 말이지,

아무 것도 뺏길 게 없는데 겁이 왜 나겠소."

"그래도...."

"그놈들이 기껏 행패를 부려 봐야 사람을 죽이기밖에 더하겠소 ?

나는 죽는 것이 무섭지 않아요 !

어차피 망해가는 세상인데,

살면 무슨 재미요."
주인은 절망어린 소리를 하더니,

"다만,

오늘밤은 손님에게 피해가 미칠까 봐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 손님이 그놈들에 눈에 띄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소 ! "하고

새삼스럽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염려해 주신 덕택에 무사했습니다."
유비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서,

"황건적의 행패가 이렇게나 심한 줄은 정말 몰랐네요.

차라리 내 손으로 그놈들을 죽여 버릴까 하고,

나는 몇 번이나 검을 움켜잡았는지 모릅니다."

주인은 그 소리를 듣자,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그건 잘못 생각하신거요.

지금 전국적으로 득실 거리는 것이 황건적인데,

그까짓 몇 놈 죽여본들 무슨 소용이겠소.

내가 보아 하니 손님은 아직 젊은 데다가,

범상해 보이지 않으니

정말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보다 큰 뜻을 행동에 옮겨,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토록 해 주시오."

"....."

주인의 의미 심장한 충고에 유비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리하여 한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다가,

"그놈들이 옥수수 몇 됫박마저 가져 갔으니

주인 댁에서는 당장 끼니가 걱정 되시지 않겠습니까 ?"
그러나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런 놈의 세상에서 언제는 먹을 것을 쌓아 놓고 살았겠소.

정말 배가 고프면 나도 그놈들처럼 도둑질을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유비는 주인장의 말을 듣기가 하도 딱해서

차를 사려던 돈에서 절반을 꺼내 주인에게 주었다.

"이거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다만 며칠간이나마 식량을 구하는데 쓰십시오."

"아니 이건, 안 될 말씀이오.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넉넉하지 못한 노자를 받아 서야 되겠소 ?"

집 주인이 굳이 사양하는 것을 유비는 억지로 돈을 떠맡기고 웃방으로 올라왔다.
날은 어느덧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머니께 드릴 차를 사기 위해, 또다시 황하(黃河)를 향하여 길을 떠나야 했다.
황하의 연안 일대는 끝없는 벌판이었다.

가도 가도 벌판은 끝이 없어서 해는 지평선에서 떠서 지평선으로 저문다.

 

(아아,

천하는 넓기도 하구나 ! )

탁현 산속에서 자라난 유비는 광막무변한 허허 벌판을 걸어가면서 무한한 감격을 누렸다.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벌판을 계속해 걷노라니까,

답답하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들판만 걷기를 닷새 만에 황하 강변에 도착하였다.

유비로서는 처음으로 구경하는 강물이었다.

황하의 만리 장강의 강물은 구비구비 흐르는데,

늦은 봄의 강바람이 흙냄새와 물냄새를 교묘히 섞어서불어와,

코끝과 옷자락을 여지없이 희롱했다.

게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강물 위로는

십여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은 것이었다.

 

(아아,

강이란 것이 이렇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인 줄은 미처 몰랐구나 ! )

강가에 서서 생전 처음보는 강의 모습과 풍경에

정신을 빼앗긴 청년 유비는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이렇게 한참을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를 바라보다가,

문득 가까이 지나가는 노인이 있어 이렇게 길을 물었다.

"노인 어른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이 부근에는 낙양(洛陽)에서 차를 싣고 내려오는 배가 가끔 정박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배가 언제쯤 어디로 들어 오는지 아십니까 ?"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걸. 지금 낙양에서 내려온 배가

저기 보이는 포구에 한 척 있으니 그리로 가서 물어보게나 ! "

노인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과연 저 멀리 포구에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이는데,

그 부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노인 어른 감사합니다."

유비는 인사를 하기 무섭게,

노인이 가리킨 포구로 달려갔다.

과연 그 배는 낙양에서 싣고 온,

온갖 물건으로 가득한 배였다.

장사꾼들은 그 배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가려고 분주하게 흥정을 하고 있었다.

유비는 늙수구레한 뱃사공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정중하게 굽혀보이며 물었다.

"저는 낙양에서 생산한 차를 사러 왔는데,

이 배에 차가 있거든 저한테 조금만 파실 수 없겠습니까 ?"

"뭐 !

자네가 차를 사겠다고 ?"
늙은 뱃사공은 유비가 차를 사겠다는 말을 하자

깜짝 놀라며 아래 위로 행색을 훑어 보며,

"미안하지만 자네 같은 사람에게 팔 차는 없는걸 !

이 배에는 낙양에서 생산하는 극상품 차밖에는 없는데,

값이 얼마나 비싼지나 알고서 그런 소리를 하는가 ?"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밖에는 못 사겠으니,

돈이 자라는 데까지만 사게 해 주십시오."

유비는 앞가슴 속에서 돈자루를 꺼내어

뱃사공에게 보이며 간곡히 말하였다.
그래도 뱃사공은 상대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관절 자네같이 젊은 사람이

차를 언제 마셔 보았다고 극상품의 차를 사겠다고 하는가 ?"

"제가 마시려고 사려는 것은 아닙니다.
집에는 칠십 노모가 계신데,

그 어른이 차를 좋아하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좋은 차를 한번 대접해 드리려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허어....

젊은 친구가 효성이 지극하네그려 !

그렇다면 대관절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

"저어 북쪽에 탁현이란 곳에서 왔습니다."

"뭐, 탁현 ? ....

여기서 탁현까지는 천 리가 넘는데 그 먼데서 일부러 차를 사려고 왔단 말인가 ?"

"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좋은 차를 한번 대접하려구요..."

"음 ....

내가 아무리 장삿꾼이라도 이런 소리를 듣고서 차를 안 판다고 할 수는 없겠는 걸 ...

돈을 이리 내보게 !"

중국은 물이 나빠서 반드시 끓여먹게 되는데,

이때 차를 넣어 끓이는 것이 보통이고

더구나 차가 극상품이라면 누구나 마시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뱃사공은 돈자루를 받아서 살펴보고 나서,

"이 만한 돈은 절반 값도 못 되지만

자네의 갸륵한 효성에 감동해서 특별히 한 통을 주겠네 ! "

"고맙습니다.

너무도 고맙습니다."

유비는 뱃사공이 배에서 내다 주는 조그만 차통을

두 손으로 우러러 받들며 고맙다는 말을 거푸하면서 허리를 정중히 굽혔다.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서

뱃사공의 호의가 너무도 고마웠던 것이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황하에 강변이 어둑해 오기 시작하였다.
유비는 강가에서 가까운 객주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유비는 초저녁부터 곤히 자고 있었는데

한방중쯤 되었을 무렵에 주인이 부산스럽게 잠을 깨우는 것이 아닌가 ?

깜짝 놀라 잠을 깨어 보니

문틈사이로 밖에 수많은 횃불들이 분주하게 이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앗 !

밖에 불이 났습니까 ?"

"쉿 !

불이난게 아니라,

옆집에 황건적들이 습격을 왔소.

낙양선에서 물건을 사려고 모여든 장삿꾼들이

이웃집에 묵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몰려온 것 같소..."

"옛 ?

또 황건적이 ?"

"당신도 그놈들에게 붙잡히면 큰일이니까,

빨리 뒷문으로 몸을 피하시오 ! "

유비는 그 소리를 듣자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애써 구한 차통이었다.

황건적들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꼼짝없이 천신만고 끝에 구한 차를 빼앗기게 되겠기 때문이었다.

유비는 부리나케 일어나 뒷문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면서 이웃집을 건너다 보니,

이웃집 마당에서는 횃불을 밝혀 든 수십명의 황건적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음...

.선량한 백성들이 밤마다 도둑놈들에게

이렇게나 시달려서야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

유비는 몸을 피해 도망을 가면서도 속으로는 의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떡하든지 황건적 무리를 씨알머리도 없이 없애 버리고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윽고,
객주집에서 십 리쯤 벗어났을 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문득 주위를 살펴 보니 길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커다란 기와집이 보였다.

한 고을에 하나씩 있는 공자의 사당(祠堂)인 듯 싶었다.
공자는 유비가 어려서부터 숭배해 오는 성인인지라

유비는 공자의 사당에 들려 예를 드리고 가고 싶었다.

 

(공자님은 지금부터 칠백여 년 전에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시려고,

모든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영도하셨던 위대한 성인이셨다...)

유비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자의 사당으로 들어가 위패에 허리를 굽혀 참배를 하면서,

"칠백여 년 전에도 세상이 어지러웠던 모양이지만

오늘날에는 황건적이란 도둑들 때문에 그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자님 께서는 글을 가지고 어려운 세상을 구하려고 하셨지만,

저는 덕(德)과 검(劒)의 힘을 가지고 어려운 세상을 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하고

소리 내어 축원하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런 소리를 지껄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마치자 마자 사당 뒷편에 재실(齋室)에서 별안간,

"하하하하....."하고

커다랗게 비웃는 웃음소리가 벼락같이 들려 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별안간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비호같이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유비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단도(單刀)를 들이대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

뭐가 어쩌구 어째 ?

네깟 놈이 황건당을 뭘로 어째구 세상을 구하겠다고 ?

이런 건방진 놈이 있나 !
이 자식아 너는 오늘 임자만났다.

오늘 한 번 죽어 볼테냐 ?"하는

말과 함께 유비를 재실로 잡아 끄는 것이었다.

유비는 영문도 모르고 질질 끌려갔다.

이렇게 재실로 끌려가니

그곳에는 제법 옷을 잘 입은 또 한명의 호걸로 보이는 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유비의 얼굴을 보자,

"하하하하...."하고

조소가 담긴 웃음을 호탕하게 웃어 보이고 물었다.

"이 자식이

바로 도둑들을 없애고

세상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큰 소리친 놈인가 ?"

"네, 바로 이놈입니다.

대방(大方)님 !

이놈을 당장 물고를 내 버릴까요 ?"

"그냥 놓아 주게 !

보아하니 주제도 변변치 않아 보이는 제깐놈이 뛰면 어디로 가겠나.

날아 보았자 하루살이요,

뛰어 보았자 벼룩이겠지 ! "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이자는 바로 황건적의 네 번째 두목인 마원의(馬元義)였고,

유비를 끌고온 자는 그의 심복 부하인 감홍(甘洪)이었던 것이다.

유비는 지금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들 모두가 머리에 누런 수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황건적 일당인 것만은 간단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놈아 !

너는 대관절 어디 사는 놈이냐 ?"
마원의가 유비를 보고 묻는다.

"탁현에서 돗자리를 짜 먹고 사는 사람이옵니다.
유비는 공손히 대답하였다.

"그런 산골에서 돗자리나 짜 먹고 사는 놈이

건방진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거냐 ?

설마 미친 것은 아니겠지 ?"

"......"

"왜 대답이 없어 ? ...

보아하니 얼굴은 제법 잘생긴 놈이 왜 그런 쓸개빠진 소리를 하는 거야 ? ..

이봐 감흥이 ! "

"넷 ! "

"이놈을 그냥 죽이기는 아까우니

네가 지고 오던 짐을 이놈에게 지워서 데리고 가자 ! "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젠 날도 밝았으니 떠나 봐야지 ! "
마원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자 감홍이라고 불린 사내놈은,

 

"이봐 넌 운이 좋았어,

목숨을 건졌으니 말이야,

어서 짐이나 지고 따라와 !" 하며
유비에게 등짐을 지워주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기가막혔다.

황건적을 피해 밤도망을 쳤다가,

이제는 그놈들의 포로기 된 데다가 놈들이 약탈한 짐짝까지 짊어지고

그놈들과 동행하게 되었으니, 한 말로 <재수 더럽게> 되었다.

마원의는 말을 타고 가면서 유비에게 묻는다.

 

"보아하니 너는 시골놈이기는 하지만 제법 쓸모가 있어 보이는데,

너는 내 부하가 될 생각이 없느냐 ?"

"글쎄올시다.

어른께서는 무슨 장사를 하시는 분이옵기에...?"

유비는 그렇게 말하면서 등에 진 짐짝을 출렁거려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황건적을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감홍이라는 자는 정말로 몰라서 물어 보는 줄 알았는지,

"이 자식아

너는 우리 황건당의 대방님이신 마원의 장군님도 몰라뵙는단 말이냐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마원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제 내가 누구란 것을 알았으면,

내 부하가 되어 보지 않겠냐 ?"하고 다시 묻는다.
유비는 죽으면 죽었지 도둑놈의 부하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말씀만은 고맙습니다만,

저한테는 칠순 노모가 계셔서,

그 어른께 한 번 여쭈어 보기 전에는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음....

효성이 제법 극진한 놈이로군 그래 !

그러나 늙은 어미는 가만히 내버려두더라도 얼마 못 살고 죽어 버릴테니까

별로 걱정할 게 없잖아 ?"

도둑놈은 어쨌거나 도둑놈인지라

말버릇부터가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가 워낙 늦게 본 외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님은 제가 없으면 식사조차 제대로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내 부하가 되라구....

이제 몇 해만 더 지나면 우리 세상이 되는 판인데,

이거야 참, 시골뜨기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니까 할 수 없는 걸 ,

허허허...."
그때 마침 세 사람은 절간 앞을 지나게 되었다.

"여기서 간단히 요기 좀 하고 가자."
마원이가 말했다.

그러자 감홍이,
"네 ! 좋습니다.

그러잖아도 저 역시 시장해서 아침 생각이 간절하던 차였습니다....
이봐 ! 촌놈의 자식아 !

너도 절간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가자."

유비는 아무런 대답도 아니하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절은 이미 오래 전에 폐사(廢寺)되었는지 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고 누군가 관리를 하지 않는지,

마당은 낙엽이 어지럽게 딩굴고, 잡초가 무성하였다.

그래도 절의 대문에는 황전적 도당의 구호가 적힌 누런 종이는 붙어 있었다.

蒼天己死 (창천기사)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黃天當立 (황천당입) 누런 하늘이 마땅히 일어서리
歲在甲子 (세재갑자)                   갑자년만 되면
天下大吉 (천하대길)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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