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5)
황건적으로 부터의 탈출
유비는 십 년 만에 만나 본 노승과 작별을 하고 나자,
마음속에 여러가지 감회가 떠올랐다.
십 년전,
그 당시에 자신을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했던 노승은
지금의 자신을 도둑의 짐짝이나 지고 다니는 변변치 않은 인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유비는 그런 걱정과 함께,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황건적 두목을 건성으로 따라가고 있노라니까,
마원의가 감홍을 돌아보며,
"지금쯤은 다들 돌아와 있겠지 ?"하고 물었다.
"어젯밤 낙양선 장삿꾼들을 치러 갔던
동지들 말씀입니까 ?"
"응 !
이주범(李朱範) 동지 말이야.
오늘 아침에 이곳 산성(山城)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지 않았나 ?"
"아마 지금쯤은 산성에 먼저 도착하여 대방님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어서 산성으로 올라가 보시죠."
산길을 얼마쯤 더 올라가니 깊은 산속에 절반쯤 허물어진 성곽(城郭)이 나왔다.
어젯밤 낙양선 물주(物主)들을 습격한 황건적들이 거기서 모이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그 산성에는 어젯밤 유비가 잠들었던 객줏집을 습격한 도둑놈들이 득시글 거리고 있었다.
마원의 일행이 산성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이주범이란 자가 마중을 나오며 말한다.
"대방님,
이제 오십니까 ?"
"응 ...
어젯밤 수확은 괜찮았겠지 ?"
"별로 대단치는 않았습니다만,
그다지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놈 하나를 아쉽게도 놓쳐 버렸습니다."
"젊은 놈이라니 ?
어떤 놈이었나 ? ...
그놈이 값 나가는 것이라도 많이 가지고 있었던겐가 ?"
"그런것은 아니고,
최고급 낙양차를 한 통 가지고 있는 젊은 놈이였습죠.
우리의 맹주이신 대현량사 장각님께서는 낙양차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른이 아니옵니까 ?
만약 그 젊은 놈에게서 차를 빼았았다면 맹주님께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텐데,
그만 그놈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자 간담이 서늘하도록 놀랐다.
그러면서 가슴속에 품고 있는 차통을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만져 보았다.
마원의는 그 말을 듣자, 유비를 힐끗 쳐다보면서,
"그놈이 몇 살이나 먹은 놈이던가 ?"하고
물었다.
"제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부하들이 본 바에 따르면, 나이는 스무 살 중반쯤 되는데
그놈의 특징은 귀가 유난히 컷다고 합니다."
"음 ... 그렇다면,
바로 여기 있는 자가 아냐 ?"
"넷 ?"
이주범은 깜짝 놀라며 유비를 쳐다보다가,
흥분하며 바로 말한다.
"그러면 이놈이 바로 그놈인가 봅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정봉(丁峰)이한테 물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애 정봉아 ! 정봉이 어디 갔느냐 ?"
"네...
저 여기 있습니다."
정봉이란 자가 저만치서 이주범 앞으로 달려왔다.
"어제 낙양선에서 젊은 놈이 차를 사는 것을 네가 보았다고 그랬지 ?
그때 차를 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더냐 ?"
정봉은 유비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네 틀림없이 이놈입니다."하고
꼭 집어서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자 이주범은 대뜸 유비의 팔을 뒤로 비틀어대는 것이었다.
"이 자식아 !
차를 당장 내놓지 않으면 목을 잘라 버릴 테다.
어서 내놓거라! "
그러나 유비는 어머니를 위해,
천신 만고 끝에 구한 차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이놈이 말을 듣지 않으려는 모양으로 보니,
아에 목을 잘라 버리죠 ! "
옆에 서 있던 감홍이 한마디 거든다.
유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지난 1년간 피땀 흘려 일해 모은 돈으로 산 차인데,
이 자들에게 넘겨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자 감홍이와 정봉이는,
"이놈 보기보다는 고집불통이로구나,
그렇다면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겠구만 ! "하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대로 유비를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딱 ! 퍽 ! " ...
유비는 두 놈이 연달아 후려갈기는 통에 땅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 순간 조금 전에 헤어진 노승의<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기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을 늙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어떡하든지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하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정신을 차린 유비는 마원의에게,
"대방님 !
이 차는 칠순 노모에게 대접하려고 천리길을 달려와 간신히 구한 것 입니다.
이 검을 드릴 테니, 제발 차만은 제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통사정을 하며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풀렀다.
그러자 마원의는,
"그래,
나도 네가 가지고 있는 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 ! "하며,
"좋아 !
나는 이 검을 받기로 하지.
그러나 차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겠어 ! "하며,
검을 가지고 다른 자리로 피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도둑놈 심보였다.
그러자 이주범이 잔뜩 약이 오른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이 자식이 요령을 부려도 분수가 있지.
장각 양사님도 좀처럼 손에 넣을 수 없는 귀한 차를 너같은 산골 촌놈이 가지고 가겠다구 ?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 "하며
창대로 유비의 등허리를 연달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유비는 어쩔 수없이,
품안에서 차통을 꺼내 이주범에게 주었다.
결국은 차를 빼앗기지 않으려다가 검까지 빼앗겨 버린 셈이었다.
차 문제가 해결되자 황건적 무리들은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멀리서 정탐꾼 하나가 달려왔다.
"대방님 !
지금 길을 떠나시면 큰일 납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강가에 관군 오백여 명이 진을 치고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하루 지체하시면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 보시고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마원의는 산성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러자 이주범이는 정봉이에게 묻는다.
"이 놈은 우리가 쉬는 동안에 도망을 치려고 할 지도 모르니까,
어디에 가두어 두면 좋겠는데..."
그러자 정봉이는 반색을 하며 대답한다.
"여기에 두 길 깊이의 토굴이 하나 있습니다.
이 놈을 결박을 지운 채로 거기다 처넣어 버리면
제놈이 날개가 있더라도 도망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래 ?
그럼 이놈을 거기에 넣어 두면 되겠구먼."
이리하여 유비는 결박을 당한 채로 두 길 깊이의 수직 토굴로 사정없이 밀려 떨어지게 되었다.
토굴로 떨어진 유비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뜩>하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리위에는 빤히 하늘만 보일 뿐,
토굴 아래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도록 캄캄하였다.
(이젠 정말 죽었구나 ! )
유비의 입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험악한 함정 속에 갇혀 있어서는 도망을 치려 해도 될 일도 아니었지만,
몸에 결박을 지고 있으니, 도망을 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없는 일이 아니런가 ?
더구나 놈들이 내일 아침이라도 꺼내 준다면 요행히 살아날 길이 있겠지만,
꺼내 주지 않고 그대로 길을 떠나 버린다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과 다름없을 것이 아닌가 ?
갇혀있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비는 자포 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제길.... 될 대로 되라지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은 죽지 않겠나 ?
지금 죽으나 몇십 년 뒤에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아닌가 ?"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은 늙으신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하지 못하게 된 것뿐이었다.
다만 이왕 죽을 바에는 도둑놈과 한 번 맞서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쉬웠다.
어느덧 날이 저무는지,
함정속에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은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보였다.
유비는 황망한 심정으로 토굴속에서 하늘만 올려다 보는데,
문득 허공에서 무언가 스물스물 내려오는 것이 있었다.
(저게 뭐지 ...? )
유비가 정신을 차리고 유심히 살펴 보니,
그것은 외줄기 밧줄이었다.
(아 !
누가 나를 구해주려고 위에서 밧줄을 내려 보내는 모양이구나 ! )
유비가 성큼 일어나서 몸을 휘저어 보니,
몸에 부딪쳐지는 것은 분명히 밧줄이었다.
(아 ! 누가 나를 위해 ?)
유비는 뚫린 구멍위로 하늘을 우러러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그때 밧줄은 빨리 행동하라는 듯이 두세 번 다급하게 흔들렸다.
유비는 물론, 밧줄이 흔들리는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온 몸이 묶여있는 상태로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지 않은가 ?
그래서 위를 향하여,
"칼 ! 칼 ! "하고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포승줄을 끊어야 하니 칼을 내려보내 달라는 뜻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자 위에서 내려온 밧줄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리하여 밧줄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니, 밧줄의 끝에는 이미 칼이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치밀한 준비였다.
유비는 뒤로 묶인 손에 칼을 움켜잡고 전신을 묶고 있는 포승줄을 끊기 시작하였다.
칼이 잘 들어서 포승줄은 어렵지 않게 끊어졌다.
행동이 자유스럽게 된 유비는 토굴 위에서부터 늘어진 밧줄을 두 손으로 힘차게 움켜잡고
두 길 길이의 함정에서 버둥거리며 줄에 기대어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그리하여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지옥같은 함정에서 자기를 구출해 준 사람은 아침에 폐사(廢寺)에서 만났던 바로 그 노승이 아닌가 ?
"아, 스님 !
제가 여기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
유비는 너무도 고맙고 감격스러워 노승의 손을 와락 움켜잡았다.
"쉿 !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오 !
아무소리 말고 나를 따라오게 ! "
노승은 유비의 소맷귀를 잡아 당기며 어서 피하자는 몸짓을 보였다.
유비가 노승을 따라 온 곳은 마원의와 함께 노승을 만났던 바로 그 절간이었다.
"스님 !
스님은 제가 함정 속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 저를 구해 주셨습니까 ?"
유비는 노승의 구원을 받은 것이 하도 고마워서 아까와 같은 말을 다시 한번 물어 보았다.
그러자 노승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지금은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네.
자네는 지금부터 몸을 피해야 할 상황이니,
기왕에 몸을 피하는 길에 나의 부탁을 하나 들어줌세.
그러나저러나 자네는 말을 탈 줄 알겠지 ?"
노승은 유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아니하고
무엇이 급했던지 자신의 말의 대답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노승의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네,
말은 잘 탈 줄을 압니다만,
어떤 부탁을 하시려는지요 ?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제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스님의 부탁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어서 말씀을 해주십시오."
"고마운 말씀이오.
그러면 나와 함께 저기로 갑시다."
노승은 대답 대신 부엌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더니 하얀 말 한 필을 끌고 나오며 방 안에다 대고,
"부용(芙蓉)아가씨,
이리 나오세요 ! "하고
사람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부용 아가씨 ?
부용 아가씨가 누구일까 ?
절간에 여자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
유비가 의아스럽게 여기며 지켜보고 있노라니까,
곧 방안에서 천하 절색의 꽃같이 아리따운 처녀 하나가 나오는데,
나이는 십칠팔 세 되었을까,
아래 위를 하얗게 차린 옷맵시도 귀족스럽거니와,
수줍은 듯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품이 그야말로 말로만 듯던 선녀 그 자체였다.
이어서 노승은 아가씨와 백마를 번갈아 보며 유비에게 말한다.
"이 아가씨는 이 고을에 성주이셨던 어른의 따님이시오.
몹쓸 황건적 때문에 성은 불타고 성주님은 그놈들의 손에 비통하게 돌아가셨소.
그래서 아가씨를 내가 보호하고 있었는데,
나도 이제는 조석으로 대접할 쌀이 없어서
부득이 부용 아가씨를 관군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하는 것이오.
여기서 북쪽으로 십 리쯤 가면 강가에 관군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다행히 그 사람들은 모두가 돌아가신 성주님의 부하들이오.
그러니 부용 아가씨가 그리로 가시면 모두가 정성껏 보살펴 드릴 것이니,
수고스럽겠지만 자네는 몸을 피하는 길에 이 아가씨를 거기까지만 좀 모셔다 주기바라오."
듣고 보니,
아가씨의 신세가 딱하기 짝이 없었다.
유비는 부용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흥분조차 느끼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제가 무사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하고
즉석에서 쾌락하였다.
"어려운 부탁을 쾌히 맡아 준다니 고맙소.
나는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려.
자, 날이 밝으면 그놈들이 또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빨리 떠나시오...
부용 아가씨 ! 이 분을 믿고 빨리 말을 타십시오."
부용 아가씨는 말없이 걸어오더니 말옆에 고요히 선다.
그러자 유비는 아가씨의 가는 허리를 붙잡아 말 안장 위에 올려 놓고 나서,
노승을 돌아다 보며 말했다.
"스님,
이제 작별을 하면 언제나 뵙게 되겠습니까 ?"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모두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오.
앞길이 총총하니 어서 떠나시오 ! "
유비는 노승의 재촉을 듣고서야 말위에 올라 탔다.
그러자 노승은 울고있는 부용 아가씨를 보고,
"아가씨 !
지금은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시간을 지체하면 더욱 위험하니 빨리 떠나셔야 합니다.
부디 무사하게 관군 진지에 도착하시어 위험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하고
다시 한번 속히 출발하라는 염려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 떠나겠습니다."
유비는 마상에서 노승에게 허리를 굽혀 보이고 말에게 채찍을 가했다.
이렇게 밝아 오는 새벽 공기를 뚫고 한 쌍의 남녀는 인마일체(人馬一體)가 되어
북으로 북으로 질풍과 같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부용 아가씨도 이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유비의 허리를 두 팔로 힘차게 끌어안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황건적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십리길의 절반쯤 미쳤을 무렵에 뒤에서
무엇인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유비가 힐끗 돌아보니,
아뿔싸, 네다섯 필의 말이 그의 뒤를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다시 한번 뒤를 돌아 그들을 쳐다보니,
그들은 머리에 누런 수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필시 황건적이 틀림없었다.
("앗 ! 저놈들이 나를 추격해 오는구나 ! ")
유비는 달리는 말에 맹렬히 채찍을 가했다.
그러나 이쪽은 한 필의 말에 두 사람이 타고 있어서,
아무리 채찍을 가해도 뒤쫒아 오는 자들보다 빠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유비는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말에 채찍을 가하며 달렸다.
조금만 더 가면 관군 오백 명이 진을 치고 있는 강가에
도착할 수가 있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6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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