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철새

오토산 2021. 9. 17. 15:05

- 삼국지(三國志) (16)
철새

유비의 고향인 유주의 탁현으로 가려면,

스승인 노식 장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광종을 지나가야 한다.
광종을 눈앞에 둔 어느 산모퉁이를 지나려니,

문득 고개 너머에서 요란스런 함성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
세 사람은 말을 멈추고 군사들과 함께 귀를 기울였다.

 

"와아... 와아..."
고개 넘어 들리는 함성소리는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장비 !

자네가 얼른 알아보고 오게."

 

"넵,

금방 알아보고 오죠 ! "

조금 전까지 침울했던 장비가,

별안간 신바람을 내면서 언덕위로 말을 달려 올라갔다.
그러더니, 건너편 언덕 아래를 뚫어져라 바라 보던 장비가

말을 달려 불같이 달려오며 외친다.

"형님들, 큰일났소이다.

광종 방면에서 관군들이 형편없이 도망쳐 오는데,

그 뒤에는 황건적 총수인 장각의 대현량사(大賢良師)라는 깃발을 치켜 든

적들이 관군을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소.

이대로 가면 관군이 전멸하게 될 것 같구려."하고

본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유비와 관우의 얼굴에는 돌연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그러면 광종의 관군이 장각에게 참패를 당하는 모양인가 ?

죄없는 노식 장군이 낙양으로 붙들려 가는 바람에 적들이 그 기회를 노려서

총공격을 가하는 모양일세그려 ! "
유비는 칼집을 움켜잡으며 탄식하였다.

 

"형님 !

어떡하시렵니까 ?"
관우가 유비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관군이 황건적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

자, 이제 우리가 나가서  싸워야 할 때인 것 같네..."
유비는 그렇게 대답을 하기 무섭게 군사들을 향하여,

 

"전군은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고 총진군하라 ! "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천 오백명에 달하는 유비군은기마병을 필두로

언덕 위를 향하여 구름떼처럼 치달아 올랐다.
그리하여 산상에서 살펴보니,

관군과 황건적이 한덩어리로 엉클어져 격전을 벌이는데,

그중에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고 쓴 깃발이 눈에 띠었다.

 

"저놈이 장각이구나 !

우리도 빨리 내려가 저놈들을 무찌르자 ! "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군사를 휘몰아치며 말을 달려 싸움터에 뛰어들었다.

북소리.
징소리.
꽹과리소리.
쫒고 쫒기는 고함소리에 아우성소리.

유비의 쌍고검이 번쩍번쩍 !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휘잉휘잉 !
장비의 장팔사모가 이리 번쩍 저리 번쩍 !

무기가 번쩍거릴 때마다 황건적 무리가 수없이 거꾸러진다.
이렇게 유비,관우,장비가 앞장을 서서 생사를 무릅쓰고 날쌔게 싸워대니,

휘하의 군사들도 용기 백배하여 적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갈긴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적장 중에 대장인 듯한 한 놈이 다급히 소리를 치는데,

 

"관군의 수많은 원군이 나타났다 !
빨리 후퇴하라 !

빨리 빨리 ... ! "

이렇게 관군을 맹렬하게 추격해 오던 황건적들은

유비군의 벼락같은 공격을 받고 오십 리 뒤로 황급하게 패주하고 말았다.

유비,관우,장비는 그제서야 무기를 거두며 싸움을 그쳤다.
적의 사상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유비군의 사상자는 거의 없는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관군의 대장 동탁은 사지에서 구출되었다.
동탁은 진지로 돌아와 부하들에게 물었다.

 

"산상에서 우뢰와 같이 쏟아져 내려와

우리를 도와 준 군사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군사들이냐 ?"

"어디서 온 군사들인지 저희들도 잘 모르옵니다."

"그들의 정체를 아무도 모른단 말이냐 ?

그러면 내가 직접 알아볼 테니, 대장을 이리로 불러들여라."
유비는 동탁 앞에 불려 나왔다.

 

"오, 당신이 지휘관이오 ?

위험한 순간에 나타나 구해 주어서 고맙소이다.

그런데 그대와 그대의 두 장수는 어디서 무슨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오 ?"
동탁은 유비를 보자 고마워 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저희들은 아무 벼슬도 없는 평민입니다.
탁현 누상촌에서 황건적으로 인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뜻있는 동지들이 모여서 만든 의용군입니다."

 

"뭐라고 ?

그럼 잡군(雜軍) ...? "

유비의 말을 듣는 순간, 동탁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과 함께 냉소의 기색이 뚜렸하게 번졌다.

 

"아무튼 좋아.

잡군치고는 아주 잘싸웠다.

앞으로 우리 군을 따라다니면서 공을 세워준다면 후하게 대접하겠다."하며

동탁의 태도는 그때부터 매우 달라졌다.

이렇게 말한 ,

동탁의 자(字)는 중영(仲潁)으로 농서 임조(臨兆)태생으로

벼슬은 하동 태수(河東 太守)를 지내다가

노식을 대신하여 중랑장에 발탁된 자로서 몸이 비대하고 천성이 게이르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천성이 오만하기로,

황건적의 공격으로 다 죽게 된 목숨을 살려주고,
큰 전공을 세운 유비군을 이렇게나 천대 할 수가 있을까 ?

"형님을 보고 뭐라고 합디까 ?"
유비가 매우 불쾌한 안색으로 진중에서 나오자, 장

비가 다가오며 묻는다.

 

"우리더러

지금 무슨 벼슬을 하냐고 묻더군."

 

"그래서 뭐라고 했소 ?"

 

"아무 벼슬도 없는 평민이라고 했지."

 

"그러니까

뭐래요 ?"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면서

나가 있으라고 하더군."

 

"뭐요 ?

다 죽어가던 제놈 목숨을 살려 준 사람이 누군데,

고맙다고 발밑에 없드려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그놈이 우리를 그렇게나 홀대 하다니 말이나 되는 수작이오 ?"

 

"...."

유비도 내심 무척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더욱 화를 내면서,

 

"형님 !

우리가 죽기로 싸워서 겨우 살려 주었는데,

그자가 그렇게 나온다면, 아예 내 손으로 그놈을 죽여 없애리다 ! "
장비가 칼을 뽑아들고 진중으로 달려 들어가려는 것을 유비가 얼른 가로막았다.

 

"형님 ! 비키시오.

이젠 정말 못 참겠소.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으란 거요 ?

관군이라면 다야 ?

의용군은 사람도 아니라는 거야 뭐야 ! "

"이 사람아 ! 왜 이러는가 ?

동탁이  사람은 돼먹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명으로 내려온 중랑장이 아닌가."

"그러니 어쨌다는 말이오 ?

공을 세우고도 상을 못 받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우리를 무시하는 저런 놈은 가만 둘 수가 없소 ! "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우리가  천자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

분하지만 참아 주게 ! "

"관우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나도 현덕 형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네.

비위에 거슬린다고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야 세상이 제대로 되어 가겠나.

나도 자네만큼 분하지만 참아 두기로 하겠네."

"나 원 참, 형님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소.
두 분 형님이 기어코 그러신다면 나는 차라리 다른 데로 가버리고 말겠소."
그러자 유비는 얼른 장비의 끌어 안고, 등허리를 정답게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보게 아우 !

우리가 생사를 같이하기로 천지신명께 함께 맹세를 올렸는데,

자네가 우리를 떠나겠다니 말이 되는가 ?

나도 여기 머물러 있을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우리 다 함께 이곳을 떠나세."
세 사람은 즉시 동탁의 진지를 떠났다.

어디를 가나 싸움은 무섭게 싸워 이기면서도

아무런 공명도 남기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관군을 도와 기사회생의 전공을 세우면서도 누

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방랑길의 의병대였던 것이다.

 

(그래도 천지신명만은 우리의 대의를 알아 주시겠지 ! )
유비는 군사를 거느리고 광야를 지나면서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덧 가을이 왔는지,

저물어 가는 하늘에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유비,관우,장비는 자기네의 신세가 노을지는 가을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 떼와 같아 보여서,

창공을 우러러보며 한숨을 지었다.
               
17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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