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31)
예기치않은 동탁의 선언
십상시의 난리가 끝나자 낙양거리도 안정을 되찾았다.
거리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일 뿐이었다.
동탁은 승지에 주둔시켜 두었던 20만에 달하는 군대를
성문 근처로 가까이 이동시켜 놓고,
그 자신은 날마다 천기(千騎)의 무장병을 거느리고
황궁을 지킨다는 명문하에 낙양성 안을 제 집 드나들 듯 횡행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했다.
그 무렵에는 각처에서 이미 죽어 버린 하진의 밀서를 받아본 지방에 산재한 많은 장군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속속 낙양으로 몰려왔으나,
그들이 몰고온 군사의 숫자는 작심하고 달려온 동탁의 20만 대군에는
훨씬 못미치는 소수에 불과하였다.
"원소 장군님 !
동탁이 암만해도 딴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자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
후군교위 포신이 보다못해, 원소를 찾아와 말하였다.
"조정이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지금,
경망되이 군사를 움직일 수 없으니 당분간 두고 보기로 합시다."
원소의 대답이 이렇다 보니,
포신은 다시 사도 왕윤을 찾아가 같은 뜻을 말하였다.
그러나 왕윤 역시 <두고 보자>는 말만 할 뿐이었다.
포신은 마침내 화가 동해, 낙양을 떠나 태산(泰山)으로 가버렸다.
한편,
동탁은 매일 같이 황궁에 들어와 천자와 진류왕을 배알하였다.
그 자리에는 하 태후도 있었는데
어느날은 천자의 배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탁의 맏사위인 동시에 부장(副將)과 모사(謀士)인 이유(李儒)가 동탁에게 말했다.
"장군님,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
"저 아름다운 여인이
진류왕의 생모인 왕미인(王美人)을 독살했다니 말입니다."
이유는 방금 전에 본 황제 모자(母子)와 진류왕의 애틋한 관계로 보아서는
하 태후가 왕미인을 독살시켜 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흐흐흐,
너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알고 있느냐 ?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게되지,
하 태후도 곧 그 대가를 치르게 될거다."
황궁을 나온 동탁은 이유에게 다시 말했다.
"너는 하진 장군의 밀서를 받은 각지의 장군들이
낙양성 안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라.
그리고 그들이 도착하는대로 지체없이
온 곳으로 돌려 보내도록 하여라."하고
말하였다.
동탁이 말한 대로
그 무렵 하진의 밀서를 받은 각지의 장군들이 속속 낙양에 도착하였다.
형주(荊州)의 정원(丁原)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정원은 군사를 이끌고 낙양성 가까이 접근해 오면서
성밖에 진을 치고 있는 대규모 부대를 발견하고 , 측근에게 물었다.
"저건 누구의 부대냐 ?"
"깃발을 보니,
서량의 동탁군 같습니다."
정원의 의자(義子: 수양아들)이자 부장(副將)인
여포(呂布)가 대답했다.
"흐음...
낙양을 덮어버릴 듯한 숫자구나 ! "
이러는 동안에 누군가 말을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누가 오고 있습니다."
말을 달려온 사람은 마상에서 정원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며 말한다.
"형주에서 오신 정원 장군님이시죠 ?"
"그렇소만 그대는 누구요 ?"
"동탁 장군의 부장 이유입니다."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
정원이 마상에서 묻자,
이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수그려 보이며 말한다.
"예,
도착이 너무 늦으셨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늦었다고 ?"
그러자 이유는 다시 말한다.
"예,
장군께서도 하진 장군의 밀서를 받고 오셨겠지만,
하진 장군은 이미 십상시한테 암살을 당하셨습니다."
"뭐라고 ?"
정원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이유는,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그동안 나라를 크게 어지럽히던 십상시는 모두 처단되고, 황궁은 평화를 되찾았으니까요.
먼 길을 오셨는데 헛걸음이 되셨습니다."
"으음,
그렇게 되었구먼.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
황제 폐하께 인사라도 드리고 돌아 가는 것이 신하의 도리지..."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하며
이유는 말을 돌려 가버리는 것이었다.
정원은 뒤를 돌아 몰고온 군사에게 명한다.
"여기서 야영을 할 테니 준비를 하여라."
정원은 황제를 배알하고 돌아갈 생각에서
먼 길을 달려온 군사들의 휴식을 주기로 하였다.
한편, 동탁은 이유를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천자를 폐하고 진류왕을 황제로 내세워서,
내가 뒤에서 나라를 움직여 볼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
"좋으신 말씀입니다.
진류왕을 제위에 앉혀 놓고
천하를 호령하시겠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자면 시일을 끌것 없이 바로 단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탁은 이유의 대답을 듣자,
이튼날 온명원(溫明園)에서 대연회를 베풀기로 하고
만조 백관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문무 백관들은 초대장을 받고 내심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동탁의 위세가 무서워서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자리에는 정원과 여포도 같이 참석하였다.
연회는 성밖에 주둔하고 있는 20만에 이르는 동탁의 군사로 인해
동탁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연회에 참석한 장군들 중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동탁 장군의 위세가 대단하군 ! "
"그러게말야,
성 밖엔 20만 병력까지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
우리로선 도저히 못당하지."
"앞으로는 죽은 하진 장군 대신에
동탁 장군의 눈에 들어야겠어."
이 자리에는 정원과 여포도 참석해 있었다.
연회의 분위기를 감지한 정원이 여포에게 말한다.
"여포야,
나는 괜히 온 것 같구나."
"아버님,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이유도 없이 거절하면 실례가 될까 생각되어서였지.
그런데 이곳에 와 보니,
여기 있는 자들은 완전히 동탁의 위세에 눌리고 있는 것 같구나."
그때, 집사가 큰소리로 고한다.
"동탁 장군께서 드십니다 ! "
장검(長劍)을 찬 호위 무사를 좌우에 거느리고 나타난 동탁은
연회에 참석해 있던 문무 백관들을 굽어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소.
황제는 천품이 고상하고 인덕을 갖추어
백성들이 우러러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할 것이오.
그러나 새로 등극한 금상은 의지가 박약하고 성품이 너무도 나약하오.
그러나 황제(皇弟)인 진류왕은 학문이 도저하고 기개도 호락하시니,
태어나면서부터 황제감이었소.
지금은 세상이 불안하기 짝이 없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뛰어난 황제가 필요한 것이오.
그리하여 차제에 황제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
천자를 바꾼다는 것은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탁은 방약무인하게도 선언이라도 하듯이 지껄여 버리는 것이 아닌가.
좌중은 겁에 질려 침만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러자 만좌중에 장수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32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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