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99)
맹의 화타(盲醫 華陀)
관운장의 장례에서 업혀 돌아온 조조는
그 길로 자리를 보전하고 들어누웠다.
아들 조비와 정욱이 지켜보는 가운데
궁중의가 진맥을 마친 뒤 밖으로 두 사람을 불러낸다.
"대왕 전하께서는 연로하신 데다가 과로에 시달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계절적 풍한으로 인해 고질병이 도지셨습니다."
"어찌되었든 잘 치료하시오."
"용서하십시오.
전하의 두통은 오랜 고질병입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 그동안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지요.
더구나 이번 병세는 범상치가 않습니다."
"사직을 맡고 계신 몸이라 일어나셔야 하오 !
방법이 없소 ?"
"그 사람이면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요 ?"
"화타라는 의원인데,
의술이 입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과연 어디있소 ?"
"여기서 이백 리쯤 떨어진
연근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근에 사람을 보내 당장 데려오시오 !"
조비는 정욱에게 거두절미 화타를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아, 알겠습니다 !"
정욱이 조비의 명을 즉각 전달하고
날랜 장수가 말을 타고 날아갈 듯이 화타를 찾아 달려갔다.
이렇게 불려온 화타가 조조의 상태를 살펴보고 진맥을 한 뒤에,
"대왕의 두통은 환풍(患風)이 뇌수(腦隨)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은 보통 약을 써가지고서는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어 ? ..
그러면 언제까지나 이렇게 앓고 계셔야 한단 말이오 ?"
"방법은 있으나 대왕께서 허락치 않을 겁니다."
"말씀해 보시오."
"먼저 마비탕(麻沸湯 : 화타가 제조한 마취약)을 써서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한 뒤에 날카로운 도끼로 두골(頭骨)을 쪼개고
뇌수를 꺼내어 풍연(風涎)을 제거하면 완쾌되실 수 있겠습니다."
"으,흐,흐, 흠 !"
조조가 병석에서 그 소리를 듣자
별안간 불신이 가득한 소리를 내뱉더니 화를 내며 꾸짖는다.
"네 이놈 !
도끼로 내 머리를 가르겠다니 !
날 죽이겠다는 것이냐 ?"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화타가
조조를 향해 공손히 절을 해 보이고 입을 열어 말한다.
"두통의 원인이 머릿속에 있어,
탕약만 드셔가지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됩니다.
머리를 열어야만 합니다.
일전에 관우가 독화살에 맞았을 때에도
제가 칼로 팔을 가르고 뼈를 긁어내 치료를 했었지요."
"팔이야 가를 수가 있겠지만 머리를 어찌 가르겠느냐 ?
관우와 교분이 있었다면...
치료를 구실로 나를 죽이려는 것이겠지.
여봐라 !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고 나를 해치려 했다는 속셈을
이실직고(以實直告)할 때까지 사정없이 고문에 처하라 !"
조조는 자신의 머리를 가르고 머릿속을 헤쳐보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몸서리를 치며 화타를 고문하라 명하였다.
(세상에 !
머리를 갈라 그 속을 들여다 보겠다니 !..
이것은 나를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
조조는 이제까지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치료 방법을 설명하는 화타의 소리를 듣자,
가뜩이나 두풍으로 시달리는 데다가
적이 의심이 많은 그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화타는 쫒겨나 옥에 갇힐 위기가 닥치자,
"대왕 !
저는 환자는 치료만 할 뿐, 해치지 않습니다.
어찌 부질없는 오해를 하시나이까 ?""하고,
말했지만 조조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조조는 말하기도 귀찮은 듯이 눈을 감은 채로 손짓을 해보인다.
그리하여 명의 화타는 조조의 명에 의해 병사들에 의해
조조의 앞에서 쫒겨나 옥에 갇힌 채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화타는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는 환자를 고쳐주려는 일념 외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타는 옷이 찢어지고 살이 문드러져 나가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은 환자를 고치려 했을 뿐이었고
도끼로 머리를 가르는 것 조차도 치료를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였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타가 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그를 극진히 생각해 주는 옥졸(獄卒)이 하나 있었다.
오압옥(吳狎玉)이란 옥리였다.
화타는 그의 은정을 고맙게 여겨,
하루는 그를 보고 말한다.
"내가 이번에 조조의 손에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니,
내가 죽는 것은 원통하지 않으나
나의 의술(醫術)을 소상히 적어 놓은 청낭서(靑囊書)를
세상에 전하지 못하는 것만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오.
그래서 내가 그대에게 편지를 써 줄 터인즉,
만약 내가 죽거든 그 편지를 내 아내에게 보여 주며
청낭서를 그대가 받아서 세상에 전해주도록 하오.
그 책만 있으면 옥리 신세를 면하고 구차스럽지 않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오."
"선생님, 고맙습니다.
만약 선생께서 불행하게 되시면 그 책을 꼭 저에게 물려주소서."
옥리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화타는
이미 예언한 대로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무참히 죽고 말았으니,
화타는 조조에게는 맹의(盲醫)로 보였던 것이다.
아니면 그 자신이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진정한 맹의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오압옥은 화타를 거두어 장사를 지내 준 뒤에
그의 집으로 찾아가 편지를 보여주고 청낭서를 물려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그 책을 소중히 간직하라 당부하고 옥사에 잠깐 나갔다 돌아오니,
옥리의 아내는 그 사이에 그 귀중한 책을 모조리 찢어내어
불쏘시개로 태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압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내가 찢어 아궁이에 던져넣고 있는 의서를 빼앗았다.
"이년아 !
네가 미쳤느냐. 천하에 둘도 없는 의서를 불쏘시개로 태우다니 이게 웬일이냐 !"
그러나 빼앗아 놓고 보니
이미 중요한 부분은 모두 찟겨나가 불타 버리고
우마(牛馬)만을 치료하는 부분만이 두어 장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년아 !
어쩌자고 이 귀중한 의서를 찢어 불태운단 말이냐 !"
오압옥은 너무도 화가 동하여 마누라를 마구 때려주었다.
그러나 매를 맞으면서도 대답하는 마누라의 말이 걸작이었다.
"그까짓 의술을 배워서 뭘 하오.
기껏해야 화타 같은 명의가 되어 본들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모진 고문에 못이겨 죽기 밖에 더하겠소 ?
나는 내 남편이 비명횡사 하려는 것을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오 !...."
이리하여 신의 화타가 지은 귀중한 의서는
어이없게도 영원히 재가 되고 말았다.
300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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