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97)
관운장의 사후(死後) <상편>
손권이 허창의 조조에게 보낸 예물이 도착하였다.
정욱이 예물 보따리를 한 장수에게 들려서 조조를 알현한다.
"전하, 전하 ? .."
정욱이 들어올 때부터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앉아있던 조조는
정욱이 두번 씩이나 부르자 그때서야,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대꾸한다.
조조는 이즈음 때때로 지병인 두풍(頭風)으로 시달리는 데다가,
반평생에 이르도록 각종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느라고 심신이 늙고 지친데다가
근자에 들어서 여기저기 잔병치례를 하는 터인지라,
지금같이 추풍(秋風)이 산란한 계절이 되자,
더욱 생활의 활력을 잃어가는 터였다.
"동오의 손권이 전하께 예물을 보내왔습니다.
예순 다섯 번째 생신이라고 말입니다."
"동오의 손권이 나에게 예물을 보내 ?
꿈에서도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을 터인데 예물을 보냈다구 ?
그래 뭔가 ?"
정욱은 조조의 대답을 듣게 되자,
그자리에서 예물 보따리를 풀어, 나무 목함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어,어,엇 ?"
정욱이 예물함 뚜껑을 열자,
곁에서 이를 본 장수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고,
정욱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딱> 벌리고 말문을 잃었다.
"뭔가 ?"
두 사람의 느닷없는 놀라움에 조조가 물었다.
정욱이 다시 한 번 목함 속을 들여다 보며,
"아, 아, 아 !....
과, 과...관우의 목입니다 !"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아뢰었다.
"뭣이 ?"
그제서야 조조가 고개를 쳐들며 정욱을 쳐다 보았다.
그때,
예물함을 들고 있던 장수가 조조에게
목함 속을 보이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가자 조조가 손을 들어 제지한다.
"전하,
서신이 있습니다."
예물함 속을 본 정욱이 목함과 함께 있는 서신을 발견하고 아뢰었다.
"읽어 !"
장수는 관우의 수급이 들어있는 목함을 가지고 나가버렸고,
정욱이 손권의 서신을 읽어내린다.
<손권이 위왕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관우를 협공해 형주를 얻었으니, 이는 전하의 공입니다.
폐하의 예순 다섯회 생신에 적군의 우두머리 관우의 목을 바치옵니다.>
"손권 !...
형주를 얻고 관우를 죽여 큰 이득을 얻고도
화근 덩어리를 나한테 떠넘기겠다구 ? 응 ? ...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로 맹세한 걸 알면서,
내 명을 받들어 형주를 취했다구 ?
음 !...
유비가 화풀이 할 대상을 우리쪽에 떠넘기겠다 ? ...."
"전하 !
어찌 대처해야 합니까 ? ..."
정욱이 조조의 명을 기다렸다.
소심한 성격의 정욱으로서는
영웅 관우의 죽음을 처리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조조는 침을 꿀걱 삼키며 생각에 잠긴다.
그런 뒤 곧,
"천자께 상주하여 관우를 형왕(荊王)으로 추서하고,
그의 수급을 향나무 몸체에 붙여 낙양성 남문밖에
왕후지례(王侯之禮)로 안장토록 하게."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정욱이 대답하고 나가려 하자,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장사를 치를 때에는
문무백관들도 함께 출상시켜 ..."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관운장의 출상날이 왔다.
조조의 명대로 출상에 참가한 모든 관원과 재상, 장군들은
모두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에는 흰띠를 둘렀다.
남문밖 언덕위에 양지 바른 곳에 관운장의 유택(幽宅)이 마련되었고,
그의 직함(職銜)이 뚜렷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졌다.
<漢故壽亭侯 關羽君之碑 >
아래로 그의 생전의 업적과 활동이 뚜렷이 새겨 넣어졌다.
몸이 불편한 조조는 관운장의 비석앞에
몸에는 한기(寒氣)를 쫒을 두꺼운 덮개를 두르고
임시로 설치한 평상에 올라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며,
관우를 앞에 둔 듯이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옛 일을 회상한다 더니..
요 며칠 자꾸 옛 일이 생각나네.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베고, 또 안량과 문추를 베고, 나를 훌쩍 떠나며
관문의 여섯장수를 베어버렸으니 자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헌데 어쩌다가 쥐새끼 같은 놈들에게 죽었나 ,
응?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래...
내 수하로 그냥 눌러앉았다면 이지경에 이르렀겠나 !...
유비는 가식적인 자이고, 나야 말로 천하의 군주야 !...
자넨 모든 걸 갖췄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거야 !...
그래도 말은 바로해야지...
그때 정말 날 따르고 옛 주인에게 가지 않았다면,
내가 자넬 우습게 봤겠지, 왜냐 ?...
나도 일편단심 충성스런 사람이 좋으니까,
충성스런 사람이 최고지 !... 됐네, 됐어 !...
내세에서 우리 다시 만나세...운장 !...편히 쉬게 ..."
조조가 관우의 무덤앞에서 이렇게 혼잣말을 마치자
아들 조비가 제주(祭酒)가 담긴 잔을 들어 바친다.
조조가 잔을 들고 다시 혼잣말을 한다.
"옛 친구들이 가을 바람에 낙옆처럼 하나 둘 씩 떨어지는구나 !..."
조조가 관우의 비석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 뒤에
관우의 무덤 가장 가까운 곳에 잔을 뿌려 술을 흘려보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머리가 그대로 고꾸러지며 쓰러져버렸다.
"부왕 !"
"전하 !"
조비와 허저가 급히 달려와 쓰러진 조조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왜그러십니까 ?"
"전하 !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
달려온 측근들이 걱정하며 말하자
조조가 몸을 제치며 짜증섞인 소리로 말하였다.
"머리가 아프구나...
바늘로 찌르는 듯이 ..."
"어서 전하를 모셔라 !
어서 !"
허저가 수하들에게 급히 소리쳤다.
한편,
한중왕 유비(漢中王 劉備)는
그 무렵에 동천(東川)에서 성도(成都)로 돌아와 있었다.
어느날,
법정(法正)이 찾아와 아뢴다.
"주상(主上)의 부인들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이미 오래이고,
손부인은 강동으로 돌아가신 뒤로 소식도 없는 형편이니,
이제는 왕비(王妃)를 새로 들이시는 것이 좋을까 하옵니다."
"어디 적당한 여인이 있어야 말이지요."
"신이 보기에는 적당한 여인이 한 분 계시옵니다."
"그 여인이 누구요 ?"
"오의(吳懿)의 여동생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으로 말씀드리면 용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행실이 매우 현숙하옵니다.
어렸을 때부터 관상가들이 보고 후일에 반드시 귀인이 되리라고 말해 왔는데,
한때는 유언(劉焉)의 아들 유모(劉摹)와 결혼했다가
유모가 일찍 죽는 바람에 지금은 과댁(寡宅)으로 있사오니,
그를 비로 삼으심이 어떠하시오리까 ?"
"그러면 공의 말대로 하리다."
이리하여 유비는 새로운 아내를 맞게 되었으니,
후일 그의 몸에서 난 아들이 유영(劉永)과 유리(劉理)였다.
유비가 새아내를 맞은 지 열흘이 지났다.
하루는 날씨도 춥지 않은데,
어둠이 내리자 까닭없이 한기가 찾아왔다.
그리하여 유비는 의원을 부르기도 뭣하여
혼자 앉은 채로 공문을 결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비몽사몽하는 가운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관우가 웃으며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
유비가 글을 쓰다 말고,
"둘째 !
자네가 웬일인가 ?"하고,
반색을 하며 관우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운장,
형주는 어찌하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관우가 말한다.
"형님,
작별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전 갑니다. "
"가다니 어딜 ?"
"구천으로요."
"응 ? "
"형님,
부디 복수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한 관우는 유비를 향해,
두 손을 맞잡아 올려 예를 표해 보인다.
"운장 ?
뭐라고 했나 ?"
"운장 ?
어딜 간다구 ?"
"이보게,
운장 ! ..."
유비가 관우에게 손을 뻣으며 다가서자
미소를 머금은 관우가 문쪽으로 돌아선다.
"운장 ! 어디가나 !
거기 서 ! 운장 ! 운장 !..."
관우는 유비가 따라 잡기도 전에
홀연히 문밖으로 사라져버렸다.
298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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