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300)
간웅의 죽음
화타를 죽이고 난 뒤에 조조의 병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런 중에도 조조는 촉(蜀)의 유비와
동오(東吳)의 손권의 동태에도 계속해 신경을 썼다.
하루는 정욱이 들어와 아뢴다.
"전하,
동오의 손권이 상주문(上奏文: 임금께 아뢰는 글)을 보냈습니다."
"뭐라하던가 ?"
"전하께서 제위에 오르시길 권한다고 합니다."
"손권이 ..
갈수록 영리해 지는구만 !..."
"상주문에는 또..
천명이 대왕께 있음을 알았으니,
대세에 맞게 속히 제위에 올라 유비를 제거하고 서천을 평정하시면
그때쯤 동오의 문무백관들을 데리고 투항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쯤 ? ...
그때가 언제인데 ?
오년 ?...십 년 ?...
이 몸이 그때까지 살 수있겠나 ? ..."
최근들어 부쩍 쇠약해진 조조가 손권의 상주문을 비웃으며 말했다.
"아 !...."
정욱은 손권의 상주문 내용을 아뢰면서
조조의 현실적인 판단 사이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조조는 눈을 감은 채로 계속해 말한다.
"영리해 !...
정말 영리해 !...
곧 있으면 죽을 사람한테 황제는 무슨 황제 ?..."
"전하,
문무백관들 모두가 대왕 전하의
천지를 뒤덮는 무한한 공덕에 전하를 실질적인 황제로 여기옵니다.
속히 제위에 오르시어 그들의 바람에 부응하시고 이름을 역사에 남기시옵소서."
정욱은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밖을 향해,
"여봐라 !"하고,
부르니 궁중 시종 둘이 조심스런 거동으로 두 가지 물건을 가지고 들어온다.
"보십시오.
새로만든 황관(皇冠)과
백관들이 올린 권진표(勸進表: 제위(帝位)에 오르기를 권하는 상소문) 입니다. "
조조는 그 말을 듣자,
그제서야 눈을 뜨고 시종이 가지고 들어온 황관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손을 뻣어 안으로 구부려 보이니,
시종은 조조가 황관을 잘볼 수있도록 그의 앞으로 가까이 가져간다.
조조가 새로 만든 황관의 백옥 옥루(白玉 玉淚)을
부드러운 손가락 사이로 끼워넣은 채로 훝어보며,
"아 !...
아름답군 !...아름다워 ...
이렇게 좋을 것을 지금까지 내가, 왜 몰랐을 까 ?..."
조조는 마치 연극무대의 배우가 독백을 하듯이
황관의 옥루가 쓸고간 손을 허공에 들고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전하, 의관을 갖추시지요.
백관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욱은 조조가 새로 만든 황관을 보고 감격에겨워 하자,
조조에게 즉시 황제의 즉위식을 거행토록 하자는 의견을 아뢰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황관을 보고 기뻐하던 조조는 의외로,
"모두 물러가라고 하게."하는,
명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정욱은 의외라는 듯이,
"생각이 바뀌셨나요 ?..."하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아니 !...
난 황제가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네."
"전하 !
한실(漢室)은 이제 쇠락하고 모두 허울 뿐입니다.
대왕 전하의 크나 큰 공덕에 백성들이 우러르고,
손권마저 상주문을 보내와 즉위를 권하지 않습니까 ? "
"손권 ?..
놈이 진심인 것 같나 ?
놈의 속셈은 나를 화롯불 위에 올려놓고 두고보자는 게야.
내가 공덕이 있다곤 해도,
왕후란 명의의 작위(爵位)를 이미 가졌으니 충분해 ! ~..."
조조는 이렇게 말한 뒤에 고개를 쳐들고 천정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데 이를 지켜보던 정욱이 가까이 다가가며,
"전하 !
괜찮으십니까 ?"하고,
염려하며 조조의 곁에 부복하자.
"조비...
조비를 불러오라 !.."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아, 아..아 !
알겠습니다."
정욱이 급히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갔다.
* 붙임글.
조조는 무슨 연유로
실권없는 천자를 폐하지 아니하고 자리를 보전시켰으며,
황궁의 살림살이가 옹색 하지 않토록 지원해 주었는지 ? ...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겠으나,
삼국지를 처음부터 잘 보아오신 분들은 그 이유를 추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답은 다음 편에 있습니다.
조조의 아들 조비(曺丕)는
조조의 호분대장 허저(許楮)의 호위를 받으며 궁으로 들어와 조조를 알현하였다.
"소자,
부왕의 부름을 받고 왔사옵니다."
조조에게는 비(丕), 창(彰), 식(植), 웅(熊)의 네 아들이 있었다.
식은 문재(文才)는 풍부하나 위인이 허화(虛華)하고,
창은 용기는 있으나 지혜가 부족하고,
웅은 병약하여 단명할 것 같았다.
그러니 오직 맏아들인 비 만이
대업을 계승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허저에게 부탁한다.
"허저,
자네는 내가 죽더라도 조비를 나를 대하 듯이 보필해줘라."
"예 !"
허저가 침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짧게 대답한다.
조조가 허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나가 보라."하고,
허저를 내보내 놓고,
조비에게 당부를 하기 위해 그를 손짓해 불렀다.
조비는 아버지의 부름에 무릅으로 기어가 그의 앞에 부복한 뒤,
명을 기다렸다.
조비의 얼굴은 눈물로 인해 범벅이 되었다.
조조가 아들을 내려다 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비야,
너에게 대업을 물려줄 것이다.
너같은 주인에다가 사마의 같은 중신과 허저같은 무장이 있다면
우리 집안의 대업은 길이 이어질 것이야.
잘 듣거라."
"사마의는..
천하의 기재(技才)이니, 중용해야 한다.
그의 도움 없인 너는 제갈양의 적수가 못 된다.
다만, 명심해라. 사마의는 영원히 경계해야 한다. "
"명심,
하겠습니다..."
"영원히..
명심해 !..."
"영원히...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네가,
우리 집안의 맏형이자 ,
조정의 군왕이다.
형제 자매를 잘 대해 주거라. "
"하늘에 맹세코 부왕의 당부를 반드시 실행토록 하겠습니다.
영원히 ..."
조조가 아들의 다짐을 받자,
손을 뻣어 아들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명한다.
"모두 들라고 해라."
조비가 아버지의 명을 전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데 그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아버지의 대권을 물려받는 결정의 순간을 맞았기 때문이다.
"대왕 전하의 명이오 !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오 !"
조비가 밖을 향하여 소리하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무백관이 일제히 조조의 앞에 부복한다.
사관(史官)이 받아 적는 가운데 조조가 맥(脈)이 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
삼십여 년간 천하를 누비며
군웅(群雄)들을 거의 평정했지만,
오직 강동의 손권(孫權)과 서촉의 유비(劉備)는 멸(滅)하지 못했다.
이제, 내 병이 중해,
더 이상 경(卿)들과 일할 수 없어, 후사(後事)를 부탁하려 한다.
나의 장자 조앙(曺昻)은 일찍이 완성에서 죽었고...
환 부인의 소생인 조충(曺忠)은 매우 총명했으나 불행히 요절(夭折)했다.
변씨 소생의 네 아들, 비, 창, 식, 웅 ...
내가 조식을 아꼈지만,
녀석은 ...헛되고 경박한 데다가
술로 인해 방종하여 후계자가 못 된다.
조창은 지략이 부족하고,
조웅은 심신이 미약하여 대권을 수행할 자질이 아니다.
오직 조비 만이 후덕하고 성실하여 대업을 이을 수 있으니,
경들이 잘 보좌하라."
"대왕 전하의 뜻을 잘 받들겠나이다 !"
자리한 대신들 모두가 두 손을 올려,
조조의 마지막 당부에 화답하였다.
그리고 복종의 맹세로써 모두 그 자리에 엎드린 채로 큰 절로서 의지를 표현해 보였다.
조조가 마지막 당부를 마치고 옷깃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내가 평생 죽인 사람이 많아 ...
이제 내가 죽으면 창덕부 강무성(彰德府 講武城) 밖에 나의 능(陵)을 만들되,
그 주변에 의총(疑塚) 칠십 기(基)를 만들어 내가 묻힌 곳이 어느 무덤인지 모르게 하라.
그리고 남은 처첩(妻妾)들은 가고 싶으면 가게 하고, 개가(改嫁)를 원하면 개가 해도 좋다.
비는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줘라..."
"흐 흐 흑 !...."
조비는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를 들으며, 소리죽여 흐느껴 울었다.
조조가 그 모습을 보고, 끊었던 말을 잇는다.
"죽는게 어때서 ?
죽음은 서늘한 여름 밤처럼 근심없이 잠 들 수 있는 것인걸 ...
세인(世人)들은 어제도 이 조조를 잘못 봤고, 오늘도 잘못 봤다.
어쩌면 내일도 잘못 보겠지...
허지만 난, 여전히 나다 !
날 잘못 본 것은 두렵지 않다 ! ..."
이렇게 말 한 조조는 좌중의 뒤를 향하여 손을 들어 가리켰다.
"...."
조비를 비롯한 허저, 정욱, 사마의 등이
조조가 가리키는 곳으로 의문의 시선을 보냈다.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왕이 카리켜 보이는 뒷쪽으로 가본다.
그곳에는 술이 가득 담긴 술잔 하나가 있었다.
조비가 술잔을 들고 부왕에게 가져가 이를 바친다.
조조가 술잔 안에 손가락을 넣어 적신 후,
손가락을 오무려 손가락을 적신 술을 튕켜낸다.
"대왕 전하 !"
정욱을 비롯한 문무 백관들이 조조를 부르며 통열히 울부짖었다.
유언을 끝낸 조조는 그대로 큰 한숨을 쉬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때는 건안 이십오년 정월이었고, 그의 나이 향년 육십육세였다.
조조는 탁월한 군주이자 정치가였고 문학가였으며,
비범한 모략가이기도 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삼국시대 이후,
중국의 새 통일을 위한 기초가 만들어진다.
더러는 그를 효웅(梟雄)이라고 불렀다.
더러는 그를 만고의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를 폄하는 사람은 그를 간웅(奸雄)이라 불렀다.
그야 어쨌든 위(魏), 촉(蜀), 오(吳),
삼국시대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도
기어코 죽음만은 면하지 못하였다.
천하를 호령하며 천년 대계에 분망하던 그도
역시 죽음을 면하지 못한 점에서는
전야(田野)의 한 필부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물평.
조조(曹操) : 155 ~ 220년
위(魏), 촉(蜀), 오(吳) 삼국시대 위왕조(魏王朝)를 세운 인물.
자는 맹덕(孟德).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다.
패국(沛國)의 초(譙) 사람.
환관의 양자로 들어가 황건적난(黃巾賊亂) 때에
평정의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화북(華北)의 원소(袁紹)를 지략으로 평정하고 남하를 꾀했는데,
건안(建安) 13년 손유 동맹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하였다.
그 때 이후로 그의 세력은 강남(江南)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후로 재건에 힘쓰면서
건안 18년에 위공(魏公),
동 21년에 위왕(魏王)자리에 올랐다.
조조는 실권을 비롯해 정치상 최고의 정점에 달했으나
스스로 제위에는 오르지 아니하고 220년 정월 낙양에서 지병으로 죽었다.
조조는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측근에 불러들였으며
특히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난 아들 조식(曺植)을 사랑하며 아낌으로서
후일 중국의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
근자에 이르러선 중국의 많은 인민(人民)들은 그의 처세(處世)를 따라하며
그의 지나온 말과 행동을 답습하며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붙임말.
독자들께서 두고 보시면 아시게 되겠지만
느끼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 드립니다.
삼국지 등장하는 영웅중에
충의의 화신 <관운장>과 변신과 지략의 천재인 <조조>에 대해서는
어느 누가 저술한 <삼국지>에서도 큰 비중을 두어
그들의 죽음을 애석하게 표현하고 기렸습니다.
그러나 삼국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는
인의에 치중한 <유비와> 용맹의 전사인 <장비>에 죽음에 대해서는
위의 두 사람 보다는 비중있게 다루질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
이렇게 비중의 높, 낮이가 다른 것은..
대중적인 중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웅의 우선 순위에 따라,
그들의 죽음을 표현해 보인 것이 아닐까요 ?
대외적으로 중화민족(中華民族)을 표방하는 중국인들의
다른 속 마음을 보는 것 같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301회에서~~~
'삼국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창의 거병(擧兵),사마의의 담판(談判) (0) | 2022.01.10 |
---|---|
황제 유협(皇帝 劉協)의 굴욕 (0) | 2022.01.09 |
맹의 화타(盲醫 華陀) (0) | 2022.01.07 |
관운장의 사후(死後) <하편> (0) | 2022.01.06 |
관운장의 사후(死後) <상편> (0) | 2022.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