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황제 유협(皇帝 劉協)의 굴욕

오토산 2022. 1. 9. 10:00

삼국지(三國志) (301)
황제 유협(皇帝 劉協)의 굴욕

조조의 빈소(殯所)는 즉각 차려졌다.
그리하여 문무 대신들과 함께 대통을 이어 받은 조비가

빈소를 지키며 엎드려 오열하였다. 

"으 흐 흐 흑 !...

부왕(父王) ! 부왕 !..."
잠시후 허저가 들어와 조비에게 아뢴다.

 

"주공 !

천자께서 오셨습니다.

일어 나시지요."
천자 유협이 조조의 문상을 온 것이었다.

그러려니 조비를 비롯해 문무 백관들 모두가

천자의 영접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는 때에,

사마의가 자리에 앉은 채로 밖으로 나가려는 조비를 손을 들어 막으며 고한다.

"가실 것 없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대신 하나가 입을 열어 말한다.

 

"천자께서 오셨으니

신들이 마중을 가야지요."

"당신들은 가도,

주공께서는 됐소."

 

사마의는 뒤도 돌아다 보지 아니하고 앉은 채로 말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과거 천자께서 위왕을 봉(封)할 때,

열두 줄 백옥의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여섯 필의 말이 이끄는 황금수레를 타고 다닐 때에는

경필(제왕이 거동할 때에 경호를 위해 통행을 금지한 일)을 실시하도록 하셨소.

그리고 아무런 제약도 없이 황궁을 출입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리셨습니다.

 

이런 것에 따르면,

돌아가신 위왕 전하와 천자는 예법상 동등하니,

마중을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조비가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무릅을 꿇고 앉았다.
대신들은 사마의의 말과 함께 조비가 그대로 앉아 버리자.
그들도 천자 영접을 거두고 모두 그 자리에 꿇어 앉았다. 

이윽고 천천히 빈소로 들어온 천자 유협이

조조의 위패 앞으로 다가서며 좌우를 돌아본다.
그런데 빈소에 먼저 와 있던 대신들은

하나같이 영접을 나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빈소로 입장하는 자신에게 눈길을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조조의 위패앞에 이른 황제는 양 손을 들어 모은 뒤,

조조의 위패와 시신이 담긴 관(棺)앞에 반절을 해보였다. 
그리고 돌아서 상주 조비(喪主 曺丕)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경(卿) !"

천자의 부름에 조비가 자리를 경건히 고쳐 앉으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천자가 그 모습을 보고, 조문의 말씀을 시작한다.

"수많은 공적을 쌓은 위왕이 이리 가니,
짐도 가슴이 아프오."
그러나 곧바로 사마의가 입을 열어 말한다.

"말씀이 잘못 됐습니다."

천자가 느닷없는 소리를 듣고,

사마의를 돌아보았다.
사마의는 개의치 아니하고 계속해 앉은 채 말한다.

 

"가신 분은 선왕(先王)이시지요."

 

"응 ?"

 

"선왕께서 임종전에 조비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러자 황제 유협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짐은 조서를 내린 적이 없다."

 

"잘 아시겠지만,

선왕의 유명이 바로 조정의 뜻입니다.

의문점이라도 있으십니까 ?"

사마의에 말은

신하가 황제에게 할 수 없는 뻣뻣하고 거친 요구였다.
황제는 당황하며 현실을 직시한 대답을 한다.

 

"없다. 없어 !

짐도 극히 지당하다 생각한다..."

천자 유협이 이렇게 당황하며 대답하자,
꿇어 앉아 있던 화흠(華歆)이 천자를 향해 대뜸,

 

"선왕께서 서거하셨으니,

폐하께서도 절로써 예를 올려야 백성들의 바람에 부합됩니다 !"하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내뱉어 버린다. 
헌제(獻帝) 유협이 화흠을 돌아다 보며,

 

"아 ! 화흠 ? ..

짐은 황제다 !

황제가 대신을 문상 온 것 만으로도 특별한 예우인데,

어찌 절을 하라는 것인가 ?"

 

그러자 화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아니하고

고개를 쳐든 채로 대답한다.

"선왕께서 안 계셨다면,

조정은 벌써 붕괴 됬을 것이고,

폐하도 어찌 되셨을 지 모릅니다 !

폐하께서는 선왕을 아부(亞父: 제왕이 나이 많은 공신을 존경하여 부르던 말)로 여기셨으니,

아부의 빈소에서 절로써 예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 
더구나 선왕은 폐하의 장인(丈人)이 아니십니까 ?"

과연 그것은 사실이었다.

조조가 천자 유협의 장인 동승을 숙청한 뒤,

그의 딸이자 천자의 애비(愛妃)인 동 귀인을 제거하고

자신의 딸을 천자의 새로운 황후로 떠 넘긴 바 있었다. (관련글= 116회)

화음의 대꾸에 천자는 대답할 바를 몰라하며 쩔절매고 있었다.
천자는 비록 조조가 장인이라 하여도 두 사람 사이에는 먼저,

군신(君臣)의 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천자는 빈소를 가득 메운 대신들을 돌아 보았지만,

자신을 두둔하여 입을 여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침묵으로써 황제를 위협하고 있었다. 

 

대신들의 거동을 찬찬히 돌아 보던 황제 유협이

이들의 무엄한 요구에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조조의 위패와 관 앞에 무릅을 꿇고 앉았다.

"아, 아, 아 !..."

 

황궁 시종이 전례없는 상황을 맞아,

쩔쩔매며 천자의 뒤를 따라 꿇어 앉았다.

천자 유협이 양 팔을 벌려 모은후,

조조의 위패 앞에 절을 하기위해 거동하자,

조비는 물론, 사마의를 비롯한 빈소의 대신들도 모두

천자의 거동에 맞추어 함께 예를 표하며 절을 하는 것이었다. 
               
천자 유협은 조조의 빈소에서 나오는 대로

조상과 구국 공신의 위패가 기려져 있는

공신각(태묘: 太廟, 선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찾았다.
헌제는 공신각(功臣閣) 계단을 오르며 비틀거렸다.
조조의 빈소에서 황제로써 당할 수 없는 치욕으로 온 몸이 분노로 떨렸기 때문이다.

눈물을 지으며 제단앞에 꿇어 앉은 헌제가 조상의 위패앞에 절을 한다. 
고개를 든 헌제가 조상의 위패앞에 고한다.

 

"유협이 조상님들께 아뢸 것이 있습니다."

"조조가 죽었습니다 !
무례를 일 삼던 역적 놈이 죽었습니다 !
흐,흑 ! ...
그런데 이 불효자가 조조놈의 영전에 무릅을 꿇었습니다 !...
그 많은 대신들 중에 말리는 자 하나 없었지요 !...흐, 흑 !...

 

조상님들이시어 !

소자가 무능한 탓이옵니다.

흐, 흑 ! ... 소자가 사백 년을 이어온 황실의 위엄을 무너뜨렸습니다 !

흐,흑 !...

 

조조와 그 아들 조비가 원망스럽습니다 ! 
조비 그놈은 소자가 조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

흐, 흑 !..."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

 

늙은 황궁 시종이 헌제를 염려하여 아뢰었다.

그러자 헌제가 돌아서며 발끈 성을 낸다.

"닥치거라 ! 

조조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는 데도 눈치를 봐야 하느냐 !"

 

"물론, 그런 것은 아니오나,

걱정되는 것이 있어서 그만..."하고,

말을 접는다.

 

"무슨 말이냐 ?"
헌제는 즉각 되물었다.

그러자 시종은,

"조조가 괘씸하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조정을 유지시켰고,

천자를 폐 하지는 않았습니다.
매 달 바치는 공물도 적지 않았습니다.

 

허나,

지금은 조비가 위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조조처럼 폐하의 자리를 지켜 줄 지,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헌제가 퍼뜩 뒤돌아 늙은 시종을 마주보며 급히 묻는다.

"황위를 찬탈 한다구 ?"

"소문을 듣자 하니,

문무 백관들이 조비의 용좌(龍座)를 준비해 두었다고 하옵니다.

위왕 즉위식 때 사용하려고 말입니다.

 

헌데 ...
폐하의 용좌보더 더 큰 것이라고 하옵니다.

폐하 ! ...조비는 그 아비 조조보다 더 간사하고,

음흉한 자 이옵니다 ! 으,흐,흑 !..." 
헌제가 그 말을 듣고 즉각 조상의 위패 앞으로 몸을 돌린다.

 

"조상님들이시어 ! 들으셨습니까 ? 
조정에 역적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
이들을 모두 숙청할 수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헌제는 조상들 위패 앞에 엎드려 울면서 호소하였다. 
                 
302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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