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선비의 멋, 갓(笠)'전시회를 다녀와서
2022년 1월 11일
'2'자가 세글자인 해, '1'자가 세글자 겹쳐지는 날에
안동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국립대구박물관과 안동민속박물관이 공동으로
2021.12.30~2022.6.30.까지 전시되고 있는
안동 선비의 멋, 갓(笠) 전시회를 다녀왔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머리에 쓰는 갓과
착용하는 의복이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었고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달랐던 차림새를 볼 수 있었다,
갓은 순수 우리말이고
한자로는 립(笠) 또는 입자(笠子)라 하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보호하기 위해 썻던 건(巾)과
장식적인 요소가 더해진 모(帽),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관(冠),
더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써썼던 갈모(笠) 등으로 구분되며
고구려 고분인 감신총의 기마인물도와 삼국유사 기록에서
갓의 착용을 확인 할 수 있고 시대변천에 따라 변모해 오다가
1367년(공민왕 16) 흑초방립이 관리의 공복으로 제정되어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패랭이에서 초립으로 이어져 오면서
조선중기 흑립이 양인남성의 일상 예복 차림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외출하기전
상투를 올리고 망건과 탕건을 착용하고 도포를 입고 갓을 쓰는
일련의 과정으로 의관을 정제하여 선비의 기품을 보였고
모자를 쓰지 않는 '맨상투차림'은 유교적 예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
공식적인 자리에는 공복에 사모를, 의례적인 행사에는 조복에 금관을,
실내에서는 탕건, 유건, 복건이나 정자관, 사방관을 썼다고 전하며
갓에 딸린 관자, 풍잠, 갓끈 등 장식물로 신분과 지위를 표시하여
갓을 쓰지 않을때는 갓집에 넣어 모양이 틀어지지 않고
먼지가 묻지 않도록 소중하게 관리 하여 왔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 지고
1984년 의복간소화가 있었고 1894년 신분제도가 폐지되어
선비의 상징이었던 갓은 모든사람들이 착용할 수 있게 되었고
1895년(고종 32) 단발령으로 몸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되면서
모자를 의관의 개념보다 패션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동지역은
단발령이 내려지자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의 기본이념을 고수하며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며
요즘도 향교석전, 서원향사, 불천위제사, 시제 등 유림행사에서는
갓과 도포를 착용하는 유교문화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오늘도 전시회를 돌아보며
의 양태를 둥글게 만드는 과정에서 유래한 '트집잡다'와
상투를 틀때 수박화채를 만들 듯 속알머리를 파고 주변머리를
말아 올려 상투를 트는 모습을 보고 '소갈머리 없다' '백호친다',
부녀자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귀는 내놓고 이마를 가리는 장신구인
'아암'을 쓰고 비단댕기가 흔들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양떤다',
맥박뛸때 망건을 매어 놓은 관자가 움직이는 자리란 뜻의 '관지놀이'
등 갓과 관련된 일상용어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한국은 모자의 나라이며 모자를 명예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긴다.
집안에 들어갈 때 신발은 벗고 들어가지만 모자만은 꼭 쓰고 들어간다'
- 퍼시벌 로엘-
'한국인들은 결혼한 이후부터는 모자를 인생의 반려로 생각하며
평생 곁에 두고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드 팡즈-
등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문화들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전시관을 나서며
우리나라에 선교를 위하여 왔던 선교사들이
갓의 명칭을 듣고 하느님(GOD)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민족.
조선의 조(朝)자를 보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십자가와 함께하는 민족이라 하였다는 일화를 생각하며
오늘도 갓과 함께 우리문화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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