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우뚝솟은 金刚山

오토산 2022. 1. 18. 05:21

김삿갓 13 -
[우뚝솟은 金刚山]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处处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소나무 잣나무 바위가 돌고돌아, 물도 산도 곳곳이 기묘하도다>

​"허!

이거 천하의 名詩일쎄...!

선비들은 글을 읊조리고 나서 무릅을 치며 감탄했다.
그들은 이미 금강산을 두고 읊은 수 많은 시를 많이 보아온 터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쉬운 글자만 사용하여

딱 두줄로 간결하게 적은 것은 처음이다.

"허어,

금강산의 경치를 이렇듯 쉽게 나타내는 방법도 있었구먼."

누군가는 탄식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들은 금강산 곳곳의 절경 앞에 할말을 잊고,

이것을 글로 옮길 적당한 문구를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잘것 없이 초라한 나그네는

물 흐르듯이 쉬운 글자로 술술 읊어 버리니 감탄만이 나올 뿐이었다.

"아니 이런 재주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어찌 그토록 시침을 떼셨습니까?

우리가 그간 실례가 많았습니다.

과히 섭섭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제가 뽐낸다고 이 주제꼴에 빛나겠습니까?

칭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선비들은 하인을 부르더니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술상을 차려 김삿갓을 상좌에 앉혔다.

"자, 드십시다.

거 볼수록 수작(作)이로군"

​ 김삿갓은 배불리 먹고 마셨다.
마신 술이 얼큰하게 올라오자

세상살이 사람의 일생이 한낮의 일장춘몽으로 여겨졌다.

​"선비양반,

이제 취향이 도도하시니 한수 더 들려 주십시오.

귀를 씼고 기다리겠습니다."

김삿갓의 구술을 받아 적던 선비가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하자

나머지 선비들의 이목이 김삿갓을 향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어떤 시가 나올까 기대하면서

김삿갓의 거동을 주시한다.

​"원 귀까지 씼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처럼 대접을 잘 받았으니 감사의 뜻으로,

한수 더 읊어보겠습니다."

​김삿갓은 성큼 붓을 잡고 쓸줄 모른다는 글씨를

달필로 청산의 유수가 흐르듯이 쓱싹 휘갈기는데,

​태산재후 천무북 (泰山在后 天无北)   
대해당전 지진동 (大海当前 地尽东)
교하 동서남북로 (橋下 东西南北路)    
장두 일만이천봉 (杖头 一万二千峰)

​<큰 산이 뒤에 있으니 하늘은 북(北)이 없고 
큰 바다가 앞에 있으니, 땅은 동쪽에서 끝났도다>

​<다리 아래로는 동서남북 길이 뻗어있고,

지팡이 든 머리에는 일만이천봉이 걸렸도다>

​"명시로다, 명시야!

오늘 우리들이 운이 좋아 诗神을 만났구려...!

좌중은 모두 넋을 잃고 있었다.

诗도 诗려니와 막힘없이 써 내려가는 김삿갓의 재주가 더욱 놀라웠다.
술김에 흥이 도도해진 김삿갓은 다시 한수를 읊고 싶었다.

​"이번에는 五言詩를 지어보겠습니다..! "

​선비들은 다시 긴장했다.

자기들은 한나절이 지나도록 시 한줄 못 이루고 쩔쩔매었는데

남루한 차림에 삿갓을 쓰고 불현듯 나타난 젊은 선비는 그대로 시신이요 천재였다.
김삿갓은 다시 필을 들어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글자를 휘갈겼다.

촉촉 금강산은 / 고봉이 만이천이라
(矗矗金剛山 / 高峰萬二千 )
수래 평지망이나 / 삼야숙청천이라
(遂來平地望 / 三夜宿靑天 )

우뚝우뚝 솟은 금강산은
높은 봉우리가 일만이천이라
평지를 바라보고 내려왔건만
사흘밤을 청천에서 잠이들었네.

"허 , 또 ..

기가막히군."
선비들은 다시 무릅을 치며 감탄했다.

 

"처음에 두 줄은 평범하더니

끝에 두줄에 삼야숙 청천이라,

이거 사람 미칠 노릇이군."

 

한 선비가 김삿갓의 화선지를 들고,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젖는다.
​김삿갓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고 마셨으니 볼일은 끝이 났고 진짜 볼일을 보러 가야만 했다.

"아니 어찌 일어서시오 ?"
선비들이 깜짝 놀라며 김삿갓을 붙잡았다.

"어줍쟎은 글 덕에 잘 먹고 갑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게 되겠지요."

 

김삿갓은 그 자리를 미련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곤 시승이 있다는 입석봉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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