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10)
천자 유협의 최후
드디어 길일을 택해 동작대(銅雀臺) 앞에 선양단(禪讓壇)을 쌓고
조비가 천자로 등극(登極)했으니 때는 건안(建安) 이십사 년이었다.
이날,
조비는 황제의 상징인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제단(祭壇)에 올라 하늘에 축원을 고하였다.
뒤이어 천자 유협(天子 劉協)이 세번째 양위 조서(讓位 詔書)를 내렸다.
"위왕은 들어라.
지난 날 요(堯)임금은 순(舜)임금에게,
순 임금은 우(禹)임금에게 양위(讓位)를 한 전례가 있다.
한(漢) 나라는 운(運)이 다하여 짐의 대(代)에 이르러,
반역자들이 들끓고 난(亂)이 끊이지 않았으니 세상이 어지러웠다.
허나,
위왕 조조(曺操)가 난을 평정하고 사직을 바로잡았고,
이를 승계한 신왕 조비(曺丕) 덕분에 한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런 부자(父子)의 공적은 후대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이제 조비는 그 아비의 뒤를 이어
만백성을 잘 보살피니 그 덕행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이렇듯 위왕 조비는 가히 순임금에 견줄만 하기에
짐은 요임금을 본받아 그대에게 제위를 물려주니 사양하지 말지어다.
이제 대례(大禮)를 치뤄 천명을 받들기를 명한다."
천자 유협은 이어서 옥새(玉璽)를 들어 조비의 손에 건네니,
조비는 이를 들고, 천자가 서있던 단상(壇上) 제일 높은 곳으로 올랐다.
그리고 단하로 내려선 천자 유협을 포함한 문무 대신들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짐 ~은 ! ..
천명을 받들어, 대통을 이어받았소 !
오늘부터 국호(國號)는 대위(大魏)로,
연호(年號)는 황초 원년(黃初 元年)으로 하고, 도읍은 냑양(洛陽)이오 !
짐의 부왕(父王)을 태조 무황제(太祖 武皇帝)로 추존(追尊)하고
제위를 넘겨준 유협(劉協)을 산양공(山陽公)에 봉하겠다 !"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
문무백관들의 만세소리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만세 소리는 계속해 이어졌다.
한(漢)나라의 황제이던 헌제는 천자의 지위에서
산양공이라는 형편없는 벼슬아치로 전락되어
임지(任地)로 떠나기 위해 황후와 함께 포구(浦口)로 나왔다.
그러자 사마의가 작별 환송을 나왔다.
"사마의,
무슨 일로 왔는가 ?"
"폐하께서 섭섭해 하시며
산양공과 부인께 이별주를 올리라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두 개의 술잔에 술이 따라졌다.
사마의가 입을 열어 말한다.
"제위에 오르신 황제께서는 어진 군주 이십니다.
산양공께서 임지에서 돌아오지 않으신다면 평생 지켜주신다 하셨습니다."
"그 말을 자네는 믿는가 ?"
"신은 폐하의 인품을 믿습니다.
그만 출발하시지요."
"비옥한 땅을 물려받았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 땅을 물려줘야 하겠지..."
폐위된 유협은 사마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윽고 배는 산양땅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司馬昭)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님 그만 가시죠.
날이 저물어 갑니다."
"조금 더 있다가 가자,
그래도 지금까지 몇 십년간 황제 자리를 지켜오신 분이다.
망국의 군주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이렇게 말한 사마의는
산양공으로 격하되어 허창을 떠나는 유협이 탄 배가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한편,
산양땅을 향해 가고 있는 배 안에서는
조황후가 천자 유협에게 술 한잔을 따라 주고 있었다.
"황후,
나의 인생이 참으로 기구한 것같소.
사람들이 나를 억지로 황제로 만들더니,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폐위를 하는구려.
하 ! ~.. 내 나이 아홉 살...동탁이 날 황제 자리에 앉혀, 허수아비 인간으로 만들었소.
그날부터 나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소.
조상님들께도 너무나 부끄러웠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오."
황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러고 보면 처남에게 감사해야겠구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줬잖소.
오늘이 내 평생 가장 행복한 날인 것같소."
유협은 이렇게 말한 뒤에 술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조비는 신첩의 동생이 아닙니다.
간신배에 역적이지요.
신첩은 조비가 원망스럽습니다."
조황후는 눈물을 지으며 말하였다.
"하 ! ~...
그럴 것 없소이다.
내곁에는 강한 권력을 지닌 네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 못난 허수아비 대신 당당한 주인 노릇을 했소 .
동탁, 곽서, 조조, 조비...
생각해 보면 그래도 처남은 내게 대우를 잘해 준 편이오.
드디어 청산으로 갈 수있게 되지 않았소 ?
그 곳은 시(詩)를 통해서 들어보기만 했을 뿐,
가본적이 없다오.
허허허허 ...허허허허 !..."
그때 배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어,엇 ?
배가 , 배가 !..."
사공의 외침에 황후가 당황한 어조로 말한다.
"폐하,
배가 이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천자 유협은 입가의 미소를 그치지 아니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밖에서는 소수의 수행원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리고 궁중 시종 하나가 뛰어들며 아뢴다.
"폐하 !
배가 가라앉고 있으니 속히 피하십시오."
"너희들이나 피하라.
그리고 물러가라 !"
"예,엣 ?"
시종이 놀랐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명을 받았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폐하 !
조비가 전하를 죽이려 합니다 !"
황후가 천자를 붙잡아 일으키며 외쳤다.
그러나 천자는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황후,
앉으시오. 상관 마시오,
응 ? 자, 술 한잔 주구려, 어서. "
천자는 황후의 손을 붙잡아 앉히며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배의 구멍은
사마의나 조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한 것이오.
흐흐흑 !... 조상님의 나라를 내가 망쳐버렸는데...
무슨 자격으로 땅에 묻힐 수가 있단 말이오.
강물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어 조상님들께 속죄해야지..
흐흐흑 !..."
천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황후 ? 떠나시오.
나 혼자 여기 남겠소. 흐흐흑 !..."
"평생 참으시더니...
마지막에는 영웅이 되시는군요...
신첩은 떠나지 않을겁니다.
폐하곁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조황후는 눈물을 지으며 천자의 품에 안겼다.
"황후,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제왕하고 혼인하지 마시오. "
"폐하의 내세가 있다면
부디 제왕으로 태어나지 마십시오. 흐흐흑 !..."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을 때,
배는 점차 기울어 강에 가라앉고 말았다.
* 천자 유협(天子 劉協) 생전의 연대별 간략 일대기.
서기 189년(이하,서기) 동탁이 정권을 쥐고 소제를 폐한 뒤,
아홉 살 된 어린 헌제(獻帝)를 세우고 전권을 휘두름.
190년 동탁이 장안 천도를 강행하자 이를 따라 나섰다가
191년 동탁을 제압한 왕윤이 이듬 해 곽사,이각 등의 공격으로 죽자
그들에게 볼모로 잡혀 고생함.
196년 곽사와 이각을 멸하고 낙양에 귀환한 조조의 주장으로 도읍과 거처를 허창으로 옮기며
연호를 건안(建安)으로 바꾸며 조조의 딸을 귀비(貴妃)로 맞음,
이후로 조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하여 조조에게 의지하다가
그가 66세로 죽자(220년) 그의 아들 조비의 강요로 재위 삼십이 년간의 황위를 양위하고
산양공으로 격하되어 임지로 가던 중 죽음을 맞이함.
헌제의 죽음은 전하는 바로는 조비가 보낸 자객에 의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곳에서는 임지로 가는 배에 스스로 구멍을 내어 침몰,
익사하는 것으로 그렸음.
311회에서~~~
'삼국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위에 오르는 유비 (0) | 2022.01.20 |
---|---|
한중(漢中)에 태동하는 제위(帝位) 문제 (0) | 2022.01.19 |
두번째 양위 조서(讓位 詔書) (0) | 2022.01.17 |
조비의 자신감 (0) | 2022.01.16 |
강압에 의해 쓰여지는선양 조서(禪讓 調書) (0) | 2022.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