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하)

오토산 2022. 1. 28. 05:53

김삿갓 57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하)]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첫날밤에는 신부가 반드시 옷을 벗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옷을 제가 직접 벗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랑님이 벗겨 주시겠습니까?"

​큰언니는 옷을 벗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소박을 맞았고,
둘째 언니는 자기 손으로 옷을 벗은 탓에 소박을 맞은 고로,
신부 동순은 신랑의 의사를 존중해 줌으로써 소박을 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로 부터 그런 질문을 받자

눈 알이 튀어 나롤 정도로 놀라는 것이었다.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신부가 제 손으로 직접 옷을 벗겠다고?"

​"신랑께서 옷을 벗겨 주시거나,

저더러 벗으라고 하시던가 신랑님 좋으실 대로 하세요."

​신부는 어떡하던지 소박을 맞지 않기 위해서 자기 정신이 아닌 듯 말했던 것이다.
​신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딱 벌린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용수철 퉁기듯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르는데

 

"계집년이 얼마나 많이 놀아 먹었으면 이 모양이야!"하며

쏜살같이 밖으로 달아나 버리더라는 것이다.

​"하하하~~

소박맞을 운명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모두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예요."

​주인 노파는 자기네 삼 형제가 한결같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것을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산소를 잘못 써서

집안이 망하거나 알 수 없는 우환과 질병에 고생 한다는 말은 들은적 있으나
딸 삼형제가 첫날밤에 모조리 소박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은 없었다.

​"그후로 세 분은 아무도 재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주인 노파는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말한다.

​"여자가 한번 혼인을 했으면 그만이지,

재혼은 무슨 재혼이예요."

​"그렇다면 세 분은 명색만 혼인을 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일생을 처녀로 늙어 오신 것 아닙니까?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요.

우리 세 자매는 아버님이 물려주신 이 집에서 함께 살아 오다가,

큰언니는 십년전에 돌아가셨고 작은 언니는 삼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나 혼자 남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주인 노파는 한평생을 처녀로 늙어온 터라,

칠십을 넘겼음에도 말씨가 처녀처럼 상냥하고 정갈스럽기가 이를데 없었다.

​"이 깊은 산중에서 혼자 살아 가시기가 외롭지 않으십니까?"
김삿갓이 이렇게 물어 보니
노파는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으며 대답한다.

 

"낮이면 온갖 새소리를 들으며 농사를 짖고,

밤이면 별과 달을 바라보며 살아 온 탓인지 별로 외로운줄 모른다오.
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외로운 적은 있었지만 시

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그런 외로움 조차 남아있지 않다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란 시조가 불현듯 떠 올라

주인 노파 앞에서 시조를 읊어댓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다섯밖에 또 두어서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걷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 없노매라
좋고도 그칠 적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김삿갓의 시조를 듣고난 주인 노파는 말을한다.

 

​"청풍과 명월은 돈 한 푼 주지 않고도 이곳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김삿갓은 첫날밤에 불행하게 소박을 맞고도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한 평생을 보낸 여인의 삶이 불현듯 애처럽고 불쌍하여

시인 백낙천의 여자들의 신세 한탄을 읊은 구절이 생각났다.

​인생모작여인신(人生某作女人身)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백년고락유타인(百年苦樂由他人)
한평생의 고락이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