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76 -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하)]
김삿갓은 대갈이의 몸짓과 표정이
하도 우스워 아까부터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가루지기 타령에 나오는 사설을
곧이 곧대로 옮기는 재주와 기억력이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연극은 계속 되었다.
변강쇠가 옹녀의 옥문관을 들여다 보며 한바탕 잡소리를 늘어 놓고나자,
이번에는 옹녀가 변강쇠의 사타구니를 유심히 들여다 보는 척하다가
사뭇 감격스러운 듯 노래조로 이렇게 뇌까리는 것이었다.
"낭군님의 물건은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前陪)사령을 서려는지 쌍걸랑을 늦게 차고,
五軍門 軍奴런가 목떠기를 붉게 쓰고,
냇물가의 물방안가 떨구덕 떨구덕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철고비를 둘렀구나.
감기에 들었는가 맑은 코는 무슨 일고
性情도 혹독하다 화가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이런가 젖은 어찌 게워내며
제사에 쓴 숭어인가 꼬장이 궁기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머리 둥글구나.
소년 인사 배웠는가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덴가 검붉기는 무슨 일고.
칠팔 월 알밤인가 두 쪽이 한테 붙어 있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비 걸낭동물
세간살이 걱정없네!"
합죽이가 대갈이의 사타구니를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마치 진짜 물건을 바라 보기나 하듯,
일장 얄궂은 소리를 재미있게 늘어 놓자,
방안은 또다시 떠나갈 듯한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야 ! 옹녀야,
그런 귀물을 변강쇠만 가지고 있는줄 아느냐?
우리들도 가지고 있단다."
"진짜 귀물은 변강쇠 물건이 아니고,
네가 가지고 있는 조개 이니라."
여럿이 제 마다 한 마디씩 놀려대어,
대갈이와 합죽이는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옆방으로 도망가듯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연극이 끝나버리게 되었고,
재미있게 지켜 본 방안의 관객들은 우뢰 같은 박수를 보냈다.
"자!
우리는 술이나 마시세."
누구가가 주전자를 집어 들며 그렇게 말하니,
술은 다시 시작되었고
김삿갓은 술을 마셔가며, 새삼스럽게 감탄을 마지 않았다.
"이 깊은 산중에서
자네들이 인생을 이처럼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오늘 밤의 감격을 나는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걸세."
제제가 술잔을 내밀며 말한다.
"우리가 오늘 밤 이렇게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자네가 삼십 년 만에 찾아와 준 덕택일세.
자네도 우리들의 우정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뜻에서 노래 한 곡조 들려주게나."
제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동은 "와아!"하고 함성을 울리며 박수를 보낸다.
노래가 서투른 김삿갓은 어안이 벙벙해 왔다.
김삿갓은 시에는 자신이 있어도 노래에는 자신이 없었다.
"자네들의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한 마디 부르기는 해야 할텐데,
노래에는 자신이 없으니 어떡하지..."
김삿갓이 머리를 긁으며 난처해 하자,
일동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뭐든지 좋으니 한 곡조 뽑으라고 난리였다.
김삿갓은 선비들이 즐겨 부르는
漁夫辭나 處士歌가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런 노래는 아무래도 이 자리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김삿갓은 무엇이 생각 되었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노래가 하나 있네.
자네들이 '가루지기 타령'을 멋진 연극으로 보여 주었으니
나는 그 연극에 어울리는 '변강쇠 타령'을 불러보면 어떻겠나?"
일동은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뭐야...?
변강쇠 타령이라는 노래도 있던가?"
"있지, 있구 말고!
옛날에 어떤 선비가 가루지기 타령이라는 소설을 읽고,
변강쇠의 못된 성품을 비꼬아 준 일이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변강쇠 타령일세."
일동은 그 말을 듣고, 변강쇠 타령을 꼭 들려 달라고 성화같이 재촉한다.
김삿갓은 무릎을 두두려가며 변강쇠 타령을 익살맞게 부르기 시작 했다.
[천하 잡놈은 변강쇠]
천하의 잡놈은 변강쇠라
자라는 호박에 말뚝박기
우물가에 똥누기
아이 밴 여자 발길로 차기
지어 놓은 밥에 돌 퍼붓기
불붙은 집에 키질하기
정절 과부 호려내기
물에 빠진 사람 덜미 누르기
활 쏘는 양반 줌팔치기
어화둥둥 내 사랑아 !
강쇠의 행실을 볼 지경이면
엄동 설한에 땔감 없어 나무를 하러 나갈 적에
낫은 갈아 지게에 꽂고 도끼는 갈아 옆에다 끼고
납짝 지게를 걸머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원근 산천에 당도하니
봄 들었구나 봄 들었구나 원근 산천에 봄이 들어 나무는 할 것이 없어
길가에 서 있는 장승을 패니 장승이 괴탄하며 하는 말이
"이 몹쓸 변강쇠놈아!
네 어찌 나를 아궁이 귀신 만드느냐"
어화둥둥 내 사랑아.....
김삿갓이 변강쇠 타령을 한바탕 흥겹게 엮어나가는 중에
옆방으로 달아났던 대갈이와 합죽이가 다시 나타나
가락에 맞춰 춤을 덩실덩실 추어대는지라,
방안의 흥취는 절정에 치다른다.
실로 호화로기 짝없는 김삿갓, 환영연이었던 것이다.
이런 환영연은 먼동이 터올 무렵에야 파장이 되었다.
모두들 대취하여 뿔뿔이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계장 제제가 김삿갓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내일 아침에 내가 데리러 올 테니,
조반은 우리 집에서 먹세."
"고맙네."
친구들이 모두 가버리자,
김삿갓은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지나치게 흥분했던 탓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삼십년 전에 벌거숭이로 뛰놀던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게 꿈만 같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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